스마트 섬유 기술 어디까지 왔나

▲ 스마트 섬유는 각종 산업과 결합해 시너지를 창출할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사진=뉴시스)
IT와의 융ㆍ복합이 대세다. 섬유도 예외는 아니다. IT와 섬유를 결합한 ‘스마트 섬유’가 각광을 받고 있다. 예상되는 시장규모만 수백조원에 달한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어 ‘블루오션’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IT와 섬유’를 융합하는 데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과학의 발달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공상과학은 더 이상 ‘공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실이 되고 있다. SF영화에 등장하는 첨단기술 중에는 이미 개발돼 상용화를 앞두고 있거나 1~2년 안에 현실화될 것들이 많다. 산업현장에서 쓰이고 있지만 아직 쓰임새가 넓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3차원 모니터는 마우스 하나만으로도 실현할 수 있다. 자동차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술은 꾸준히 개발 중이다.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에 나왔던 3차원 프린팅 가면 역시 개발이 완료된 기술이다. 영화 ‘아이언맨3’에서는 음성인식만으로 팔ㆍ다리 등에 부분적으로 착용할 수 있는 티타늄 슈트가 나오는데, 이 역시 이미 개발된 음성인식ㆍ자동제어기술이 합쳐진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첨단기술의 공통점은 ‘스마트’다. 컴퓨터ㆍ인터넷ㆍ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거의 모든 기술이 스마트와 직결되고 있다는 거다. 섬유도 다르지 않다. 스마트 섬유가 대세다. 스마트 섬유는 외부 환경이나 인체 상태를 감지해 다양한 기능을 발현한다. IT 등 첨단 신기술과 결합하면 새로운 기능을 갖춘 다기능성 섬유소재로 탈바꿈한다. 이런 면에서 일반 섬유에 비해 강도ㆍ탄성ㆍ내열성ㆍ내화학성ㆍ내후성 등이 우수한 고성능 섬유소재인 슈퍼섬유와는 다르다.

 
영화를 통해 보면 구분이 간단하다. 최근 막을 내린 영화 ‘에프터 어스’에 등장한 슈트가 바로 스마트 섬유로 제작된 옷이다. 위협적인 환경을 감지하면 슈트가 검은색으로 변하고, 독성이 있는 벌레에게 물려 몸이 병들면 슈트는 흰색으로 변한다. 위험이 사라지면 슈트는 원래 색깔을 되찾는다. 슈트의 색깔 변화를 통해 주변과 인체의 상황을 알려주는 거다.

이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스마트 섬유 분야는 ‘자율응답형 쾌적섬유’다. 방수와 동시에 땀을 배출하거나 자체 발열, 항균 등의 기능을 가진 섬유다. 코오롱글로텍이 2008년 개발해 2009년부터 판매한 자체발열 섬유 히텍스가 대표적인 예다. 히텍스는 전도성 고분자와 배터리 기능을 갖춘 전자회로를 섬유에 인쇄하듯 코팅한 것이다. 배터리에서 발생한 전기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꿔 자체 발열이 가능하다. 이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하면 사람의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섬유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다양한 분야에 접목 가능해

반면 2013년형 슈퍼맨을 다룬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이 입은 슈트는 슈퍼 섬유다. 슈퍼맨이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슈트는 다르다. 그런데도 슈퍼맨의 슈트는 흠집하나 나지 않는다. 섬유 자체는 굉장히 얇지만 자체에 방탄복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어서다. 불에 타지도 않는다. 환경 변화를 빠르게 반영해 정보를 제공하는 게 스마트 섬유라면 슈퍼 섬유는 환경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셈이다.

슈퍼 섬유도 그렇지만 첨단 기술의 융ㆍ복합과 함께 떠오른 스마트 섬유는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의료용으로 활용하면 전자기기와 연동해 인체 변화를 측정하고, 데이터를 의사에게 전송해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상상력을 불어넣는다면 자가 치료가 되는 스마트 섬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기술은 노령화 사회의 늘어나는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 국방용으로 쓰면 군인의 근육을 강화해 준다거나 별도의 장비가 없어도 옷에서 3D 영상을 출력해 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다. 옷을 입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업들이 스마트 섬유 개발에 관심을 갖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시장 규모도 상당히 크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IT기술을 융합한 스마트 섬유의 세계시장 규모는 2007년 1494억 달러(약 167조원)였다. 2015년에는 1964억 달러(약 220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 규모가 연간 약 600조원에 달한다는 걸 감안하면 황금시장인 셈이다.

문제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거창한 기술을 구현하기엔 현재의 스마트 섬유 관련 기술이 걸음마 단계라는 점이다. 이마저도 선진국이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첨단 의료용 스마트 섬유나 IT 혹은 나노기술을 융합하는 분야 시장은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의 사업화는 아직 미약하다”고 설명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더라도 따라갈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전반적인 기술 격차가 2~3년 정도밖에 나지 않고, IT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섬유 기술의 경우 부족한 점이 많아서다. 해외 선진 기업들의 기술을 보면 그렇다.

운동화나 티셔츠를 스마트 기기와 연동시켜 실시간으로 운동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나이키ㆍ아디다스의 기술, 혹은 MP3 기능과 생체신호감지기능을 탑재한 필립스의 티셔츠 등을 스마트 섬유기술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이런 것들은 스마트 섬유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전도사(전기가 흐를 수 있도록 한 섬유)에 각종 기기를 첨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티셔츠에 칩 형태의 센서를 내장해 병사들의 총탄 상처 감지나 생체징후 관찰이 가능하게 한 미국 센사텍스사의 ‘Smart Shirts’가 그나마 스마트 섬유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IT기기를 직접 부착하는 초기의 기술에서 벗어나 최근엔 섬유 자체에서 전기적 신호를 변환해 자동적으로 감지하는 기술로 옮겨가고 있다는 거다.

사실 스마트 섬유 개발이 다른 IT 융합산업의 기술 개발 속도보다 더딘 데엔 이유가 있다. 조광년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스마트 의류라면 옷을 입었을 때 몸의 움직임에 따라 비정형적으로 변형돼야 한다”며 “옷이 변하는 만큼 변형이 가능한 센서가 함께 개발돼야 하는데, IT기기 소재는 아직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 섬유를 주목하고 있는 업체들이 플랙시블 소재에 관심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말을 이었다. “아직은 일반 소비재 시장보다 산업용 시장이 더 크다. 게다가 업체들이 스마트 섬유를 개발하려면 기존 설비와는 전혀 다른 설비를 구축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 주요 원천기술이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스마트 섬유 개발에 힘 쏟는 해외 정부

세계 각국 정부는 스마트 섬유를 개발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 에너지성(DOE)은 10여개의 정부 직할 연구소와 섬유관련 연구기관, 150여개 기업이 참여하는 미국섬유제조업공동체(AMTEX)를 설립하고, 1993년부터 연간 5000만 달러를 들여 스마트 섬유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AMTEX는 각종 전투용 디지털 장비들을 병사의 군복 곳곳에 내장ㆍ부착하는 미래 병사체계 ‘Land Warrior’를 개발 중이다. 독일ㆍ일본도 섬유소재 기술과 의료기기를 융합하기 위해 ‘의료기기 개발혁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국내 섬유업계는 히텍스처럼 자체 발열이 가능한 소재도 내놨다. 하지만 첨단 스마트 섬유를 개발하려면 아직 멀었다.(사진=코오롱스포츠)
우리나라 역시 IT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투자를 벌이고 있지만 ‘IT+섬유’만을 놓고 보면 투자가 적은 편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홍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연구개발본부장은 “기업은 투자대비 수익에 대한 확신이 적어 투자를 꺼리고, 정부도 투자대비 사업화 성공사례가 적다 보니 지원에 소극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5~10년 내에 스마트 섬유 전체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 것”이라며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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