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생활브랜드 ‘스웨거’ 추혜인 대표&오혜림 실장

여기 두명의 젊은 디자이너가 세운 디자인 회사가 있다. 아트앤디자인인터내셔날(ADI)이다. 디자인 회사이지만 브랜드를 론칭하고 상품을 개발하며 행사를 기획한다. ADI가 카카오의 파티를 기획하고, 오리온의 광고를 만든 이유다. 국내 최초 남자생활브랜드 ‘스웨거(Swagger)’를 론칭한 ADI는 급기야 YG엔터테인먼트까지 홀렸다.

# 2010년 겨울, 일본 JR 야마노테선과 게이큐선 지하철 안에 국내 유통기업의 지면광고가 걸렸다. 제과기업 오리온의 초콜릿 브랜드 ‘마켓오’였다. 핑크색 하트와 촉촉한 브라우니가 초콜릿의 달콤함과 사랑스러움을 배가시켰다. 리얼 브라우니를 표방한 마켓오 광고는 단번에 일본인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다. 오리온은 일본시장 진출 6개월 만에 쿠키ㆍ비스킷 부문에서 판매량 1위에 올랐다.

# 2011년 여름, 벤처기업 카카오의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국민메신저 카카오톡 2000만 유저 돌파 기념 사내파티였다. 이날 파티의 대미를 장식한 프로그램은 스티커 붙이기 게임. 수식어와 이미지가 맞아떨어지는 동료에게 스티커를 붙이는 거였다. 순식간에 ‘칼퇴 사수 직원’ ‘스마일 카톡맨’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밤 카카오 사옥에서는 오래도록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 토털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트앤디자인인터내셔날(ADI)을 설립한 추혜인 대표(오른쪽)과 오혜림 실장.
오리온의 광고와 카카오의 기념행사를 진행한 곳은 오리온과 카카오가 아니다. 두명의 젊은 디자이너가 설립한 아트앤디자인인터내셔날(ADI)이다. ADI는 디자인 회사이지만 네이밍ㆍ브랜드 론칭ㆍ상품개발ㆍ패키지 디자인ㆍ웹사이트ㆍ광고 캠페인ㆍ카피라이딩 등 토털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굴지 기업이 ADI에 상품 기획을 의뢰하고, 브랜드 마케팅을 맡기는 이유다.

ADI의 탄생은 200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혜인(30) 디자이너는 지인의 소개로 오혜림(29) 디자이너를 만났다. 첫 대면이었지만 오 디자이너가 마음에 쏙 들었다. 차분한 인상과 정갈한 태도가 신뢰감을 줬기 때문이다. 추 디자이너는 망설이지 않고 제안했다. “ADI는 디자인만 하는 디자인 회사가 아니다. 브랜드를 론칭하고 상품을 기획하고 광고를 진행한다. 처음엔 어렵겠지만 반드시 ADI를 전천후 기업으로 키울 것이다. 같이 회사를 이끌어가고 싶다.”

마주 앉은 오 디자이너의 눈빛이 반짝였다. 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디자인과 기획은 대학 입학할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고생할 각오는 돼있습니다.” 이튿날. 추 디자이너는 ADI 대표로, 오 디자이너는 ADI 실장으로 다시 만났다.

창업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가진 게 없었던 이들의 현실은 냉혹했다.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지인의 사무실 한편에 책상 2개와 컴퓨터 2대를 갖다놓고 시작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할 것이라 믿었다. ADI가 국내 디자인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첫 프로젝트는 두 사람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첫 클라이언트는 아이메이크업 전문브랜드를 출시하고 싶어 했다.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관건은 경쟁이 치열한 색조화장품 시장에서 어떻게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것이냐였다.

두 사람은 거리로 달려 나갔다. 시장조사에서 얻은 결과는 간단했다. 여성 메이크업 제품의 콘셉트는 내추럴하거나 혹은 화려하거나였다. 색다른 콘셉트를 찾아야 했다. 그때 추 대표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게 있었다. 펑크 록 음악 ‘브리티시(British)’였다.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추 대표는 펑크 록 음악을 자주 접했는데 알고 있던 과격하고 반항적인 펑크와는 달랐다. 밝고 경쾌했다. 영국 귀족이 갖고 있는 고급스러운 트래디셔널 감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추 대표가 아이디어를 내놓자 오 실장이 기발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블랙 바탕에 레드ㆍ옐로ㆍ그린ㆍ블루ㆍ퍼플 그래픽을 그려 펑키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이메이크업 전문브랜드 ‘브리티’는 그렇게 탄생했다. 클라이언트는 ADI에 2년 동안 브리티 마케팅을 의뢰했다. 두 사람의 첫 프로젝트가 합격점을 받은 순간이었다.

20대 디자이너, 전천후 ADI 세워

 
첫 단추를 잘 끼웠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일거리를 찾아나서야 했다. 추 대표가 또 한번 아이디어를 냈다.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추 대표는 일어를 능숙하게 하는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곧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영어와 일어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광고를 냈다. 외국인 사업가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뜻밖에도 연락이 온 곳은 국내 제과기업 ‘오리온’이었다. 일본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던 오리온은 일본어와 영어가 가능한 디자인 회사를 찾고 있었다. ADI가 제격이었다. 2010년 2월, 오리온의 일본 마켓오 발렌타인 광고 캠페인을 선보였다.

오리온과의 프로젝트는 ADI가 회사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업계에서 기획ㆍ마케팅ㆍ광고가 가능한 디자인 회사라고 소문이 나면서 대기업으로부터 일거리가 밀려든 것이다. ‘현대중공업 사내 심리 상담 브로셔 제작’ ‘KT&G 레종 패키지 리뉴얼’ ‘카카오 2000만명 돌파 기념파티 기획’이 모두 ADI의 손에서 탄생했다.

기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ADI가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ADI는 주로 코스메틱 브랜드 기획ㆍ마케팅ㆍ홍보ㆍ브랜딩을 도맡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국내 남성을 위한 생활브랜드가 없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은 “유레카”를 외쳤다.

 
두 사람이 주목한 것은 일반 남성의 니즈였다. 이를테면 ‘남자의 자취방에서 필요한 것’을 찾는 거였다. 다시 거리로 뛰쳐나갔다. 20~30대 남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나왔다. 남성 소비자는 간편하고 단순한 제품을 좋아했다.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 사용하면 꾸준하게 구입하는 특징을 보였다. 아울러 제품을 고를 때 전체의 46%는 ‘향’을 중시했다. 추 대표의 눈이 번뜩였다. 브랜드 충성도가 강하다는 얘기인 동시에 냄새를 신경 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보디워시이면서 보디로션인 ‘샤워젤’을 떠올렸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남성을 위해 기능을 합한 것이다. 여기에 추 대표는 자체 개발한 ‘향’을 첨가했다. 일반 바디워시나 향수보다 10배가량 지속되는 향이었다. 오 실장은 ‘사용자 경험’을 반영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남성에게 친숙한 위스키 술병 모양을 따서 샤워젤 용기를 디자인한 것이다. 여성의 미스트 구조를 본떠 젤이 나오는 입구를 스프레이 형태로 만들었다. 휴대성과 간편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샤워젤 4종이 개발됐지만 문제는 남아있었다. 브랜드 이름이었다. 이때 추 대표가 또한번 기지를 발휘했다. 즐겨 듣던 팝송에서 ‘스웨거(Swagger)’로 브랜드명을 지은 것이다. 스웨거는 ‘뽐내며 걷다’ ‘으스대다’는 뜻이지만 ‘느낌 있다’ ‘태가 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1년 9월 국내 최초 남성생활브랜드 스웨거가 탄생했다.

 
“아시아에 스웨거 향 뿌릴 것”

 
스웨거는 입소문을 타고 남성 소비자의 아이템이 됐다. 마케팅 비용 없이 6개월 만에 샤워젤 2만개가 팔려나간 것이다. 스웨거가 시장에서 통했다는 얘기다.

스웨거를 주목한 눈은 또 있었다. 국내 대표 연예기획사인 YG엔터테인먼트(YG)였다. 양현석 YG 대표가 ADI에 투자하겠다고 제안했다. 남성 생활브랜드를 준비하던 YG가 ADI의 스웨거 성장가능성과 경쟁력을 높이 평가한 셈이다. 올 1월 YG는 ADI의 지분을 인수, YG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회사 소유주는 바뀌었지만 경영은 계속해서 추혜인 대표가 맡는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추 대표와 오 실장은 다시 신발 끈을 조이고 있다. 해외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어서다. 두 사람은 “내년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한다”며 “스웨거의 기획ㆍ제조ㆍ유통ㆍ마케팅 등 전 과정이 ‘메이드 인 ADI’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있다”고 말했다. 스웨거의 향이 아시아로 퍼질 날이 멀지 않았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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