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도 반한 세탁소 주인장의 손재주
제일모직도 반한 세탁소 주인장의 손재주
  • 김건희 기자
  • 호수 58
  • 승인 2014.03.0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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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The Scoop | 명사 찾는 삼익세탁소

시사경제지 더스쿠프가 독자들의 요구로 ‘Again The Scoop’를 주1회 연재합니다. 더스쿠프가 ‘네이버 뉴스스탠드’와 ‘기사검색 시스템’에 진입하기 전 기사들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특종과 단독도 있고, 읽을만한 ‘거리’도 있습니다. 그 3편 ‘어느 명품 세탁소’입니다. 유명 패션기업까지 홀려놨다는 세탁소 사장님의 세탁솜씨는 가히 장인급입니다. 더스쿠프 보도 이후 방송출연섭외가 쇄도했다는 후문입니다.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 백태현 사장과 그의 부인 정영숙씨는 40년 동안 옷과 동고동락했다. 삼익세탁소가 독특한 세탁비법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다.

‘명품세탁’으로 유명한 일산의 삼익세탁소. 분당ㆍ강남ㆍ마포에서 단골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다. 명품을 취급해서도, 값이 저렴해서도 아니다. 일반세탁소에는 없는 ‘세탁비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태현 사장과 그의 부인 정영숙씨. 40년 동안 옷과 동고동락한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 경기 일산 주엽2동 아파트단지에 위치한 33㎡(약 10평) 남짓한 세탁소. 손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블루와 골드 컬러가 섞인 실크 스카프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스카프 가장자리에 곰팡이가 피어 보기 흉했다. 손님이 울상을 지었다. “커피를 흘린 채 며칠간 방치했더니 곰팡이가 폈다. 동네세탁소는 못하겠다고 하더라. 이곳이라면 가능할까 싶어 분당에서 달려왔다.”

돋보기를 낀 세탁소 주인장이 스카프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촘촘하게 짜인 실크 위로 커피얼룩이 보였다. 이 자리에 곰팡이가 핀 것이었다. 주인장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100% 실크이기 때문에 드라이클리닝(기름세탁)을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곰팡이를 지우려면 물세탁을 해야 한다. 실크는 물에 약해서 물세탁을 하면 탈색하거나 변색된다. 그래서 방법이 없다고 했을 것이다. 나한테 좋은 수가 있다. 맡겨 달라.”

주인장의 아내가 이름 모를 약품을 꺼냈다. 약품을 떨어뜨린 물에 스카프를 넣고 물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세탁이 끝나자 이번엔 드라이클리닝을 했다. “자체 개발한 약품으로 물세탁을 하면 실크가 수축하거나 변색하지 않는다. 물세탁 후 남아있는 기름기를 제거하려면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한다.” 조언도 잊지 않았다. “주방용 포일이나 냅킨에 딸린 둥근 심에 스카프를 감아서 보관하면 주름방지에 효과적이다.” 손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세탁소 주인장 부부, 보통이 아니다. 원단만 보고도 제품의 브랜드와 특징을 척척 알아낸다. 전문가랍시고 폼을 잡는 일도 없다. 스카프 보관법과 세탁법을 상세하게 일러준다. 업계에서 ‘명품세탁’으로 유명세를 타는 백태현(58) 삼익세탁소 사장과 정영숙(52)씨가 바로 주인공이다. 분당ㆍ강남ㆍ송파ㆍ마포에서 단골손님이 찾아오는 이유가 있었다.

백 사장은 “23년 동안 옷을 만들었고, 17년 넘게 옷을 세탁해왔기 때문에 옷에 대해 잘 안다”며 “40년간 하루도 옷을 만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삼익세탁소가 세탁뿐만 아니라 수선도 같이 하는 이유다.
백 사장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꼼꼼했다. 그의 자취방은 항상 정리정돈돼 있었다. 차림새가 단정해 어딜 가나 정성스럽게 다린 양복을 입고 다녔다. 손재주도 좋아서 그림을 그리고 자르고 붙이는 걸 좋아했다. 이런 성격은 3만개의 원단 조각을 하나로 이어 옷을 만드는 양복사에 안성맞춤이었다.

 
40년 동안 의류와 동고동락

그의 타고난 꼼꼼함과 손재주는 양복을 만들면서 빛을 봤다. 1981년 맞춤옷의 격전지로 불린 명동에 양복점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을 열었다. 양복사가 된 지 7년 만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양복 한 벌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려면 최소 3~6년이 걸린다. 옷을 만들 줄 알아도 ‘미美’가 담기려면 10년은 있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그는 7년 만에 소화해낸 셈이다. 그만큼 기술력이 탁월했다는 것이다. 백 사장의 주무기는 또 있었다. 손님의 성격ㆍ취향ㆍ기호를 파악할 줄 알았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1988년 겨울. 브니엘 양복점으로 장년의 신사가 들어왔다. 작은 체구였지만 백발과 흰 눈썹의 외모가 범상치 않았다. 백 사장은 풍모를 보고 보통사람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의 눈은 정확했다. 조순 경제부총리(당시)였다. 주문이 까다로웠다. 바지ㆍ소매 길이부터 허리 치수까지 명확하게 말했다. 옷감과 색깔도 일일이 지목했다. 백 사장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옷을 만들었다. 며칠 후 조 부총리가 옷을 확인하러 왔다. 그가 갑자기 바지의 밑단을 뒤집어 안감을 살폈다. 박음질 상태를 보려는 것이었다. 원단과 동일한 감색 실이 깔끔하게 박혀 있었다. 그제야 조 부총리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옷이 정직하다.” 조 부총리는 브니엘 양복점의 단골손님이 됐다.

깐깐한 사회지도층만 백 사장의 손기술에 반한 게 아니다. 국내 패션계 양대산맥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1990년 패션기업 제일모직과 LG상사(LG패션 전신)가 그를 재단사로 영입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백 사장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회사체질’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모든 사람의 옷을 만드는 것이 양복사의 최고 행복이다.”

자부심으로 운영한 양복점은 손님으로 붐볐다. 명절이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을 새울 정도였다. 덕분에 매출은 껑충 뛰었다. 공무원의 한달 급여가 9만원, 집 한 채 값이 300만원이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보름 만에 공무원의 급여를 벌었고, 1년이면 집을 살 수 있는 돈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백 사장의 부인 정영숙씨의 눈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시류에 민감했던 그는 1990년대 패션계 흐름을 예의주시했다. ‘기성복’의 등장을 예감했던 것이다.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기성복 시장이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양복점이 문을 닫았다. 반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값싼 기성복은 불티나게 팔렸다. 위기였다. 정씨가 백 사장에게 “세탁소로 업종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백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 없었다. 손기술을 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남편이기 전에 양복사인 백 사장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러데 뜻밖의 기회가 두 사람의 인생 항로를 살짝 바꿨다. 경기도 일산의 새 아파트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1996년 두 사람은 양복점을 정리하고, 일산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상가에 세탁소를 차렸다. 아파트의 이름을 따서 ‘삼익세탁소’라고 지었다. 세탁소로 업종을 바꾼 것은 천운이었다. 1년 후 외환위기(IMF)가 터졌기 때문이다. 기업이 부도를 맞았고, 구조조정으로 퇴직자가 쏟아졌다.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세탁소만 호황을 누렸다. 수선업을 겸하자 ‘세탁 잘 하고 옷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났다.

양복점의 인기를 능가했다. 하지만 세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과학적인 지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세탁소는 기본적으로 원단별로 세탁을 한다. 그런데 종류가 같은 원단이라도 옷마다 얼룩이 지워지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었다. 며칠간 고민하던 정씨의 머리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같은 원단이라도 이물질별로 나눠서 세탁하면 어떨까.’ 이물질은 대개 물 아니면 기름이었는데, 물과 기름이 섞인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게 찌개나 커피얼룩이었다. 세탁법을 개발해야 했다.

두 사람은 실험에 돌입했다. 먼저 찌개얼룩의 기름(지용성)을 지우고 물(수용성)을 지웠다. 반대로 먼저 물을 지우고 기름을 지웠다. 결과는 놀라웠다. 전처리 순서에 따라 얼룩이 없어지는 차이가 컸다. 관건은 원단마다 경우의 수가 다양한 것이었다. 면으로 만든 원단이라도 면 100%와 혼방(면+폴리에스터)일 때 전처리가 달랐다. 가방지ㆍ후로킹 등 특수원단은 자체 개발한 약품을 사용해 얼룩을 뺀 후 세탁해야 했다. 두 사람은 17년에 걸쳐 세탁법을 재정립했다. 이런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23년 동안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원단을 학습한 덕분이었다. 삼익세탁소의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100년 전통 삼익세탁소 물려주고파”

옷을 만들고 세탁한 지 이제 40년. 삼익세탁소는 제2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세탁소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세탁법을 정립하면서 40년 간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2명의 지역주민에게 기술을 전수했다. 수거ㆍ세탁ㆍ보관ㆍ배달 등 세탁과정과 원단별 특징을 2개월 동안 가르친다. 두 사람의 꿈은 ‘100년 세탁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세탁소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기술은 영원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장인정신을 지킬 생각이다. 삼익세탁소, 소박하지만 특별한 가치가 있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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