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외모지상주의

아파트가 아름다워지고 있다. 부동산 불황탈출을 위해서다. 부동산 호황기 때는 아파트가 분양시장에 나오자마자 완판이 되곤 했다. 디자인이 촌스럽건 허름하건 상관없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같은 값이면 좀 더 예쁘고 고급스러운 아파트를 선호하는 수요자가 늘었다.

▲ 프랑스 디자이너 장 필립 랑클로(Jean Philippe Lenclos)가 디자인한 힐스테이트는 형형색색의 외관이 눈길을 끈다.

8월 22일 오전 11시. 60-3번 시내버스가 김포시 평교다리를 지난다. 고촌정류장 인근에 이르자 눈앞에 대규모 아파트 숲이 펼쳐진다. 좌측 편에 눈에 띄는 단지가 있다. 붉은색과 파란색이 울긋불긋 뒤섞여 색채감이 더해진 아파트. 김포 고촌 힐스테이트의 모습이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니 강렬한 느낌의 레드톤과 시원한 느낌의 블루톤 건물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저층부의 진한 색상이 3층ㆍ5층ㆍ10층으로 올라갈수록 연해지면서 색감이 번진다. 마치 무지개를 보는 듯하다.
김포 고촌 힐스테이트 1단지는 붉은색 계열로 핫(Hot)한 느낌을 풍긴다. 2단지는 파란색 계통의 쿨(Cool)한 디자인을 채택해 차별화했다.

화려한 외벽만 존재해 눈을 피곤하게 하지도 않는다. 중간중간 베이지색 계열의 일반 아파트 디자인을 심었다. 쉽게 말해 10개 중 5개가 화려한 건물이라면, 나머지 5개는 차분한 색상의 아파트를 배치해 안정감을 줬다는 얘기다.

 

최근 건설사들은 디자인이 특화된 아파트를 속속 내놓고 있다. 외관 또한 획일화된 성냥갑 모양에서 벗어나 입체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 하얗거나 회색 일색이던 건물 외형도 컬러풀함과 모던함이 더해졌다. 아파트가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포 고촌 힐스테이트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색채 디자이너 장 필립 랑클로(Jean Phi lippe Lenclos)가 색채 매뉴얼을 처음 선보인 아파트로 유명하다.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우수디자인 상품으로도 선정됐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김포 고촌 힐스테이트 이후에 지어진 단지에는 장 필립 랑클로의 아트칼러를 많이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서울 삼성동ㆍ북한산ㆍ반포동 등에 지어진 힐스테이트 외벽에 랑클로의 아트컬러를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강서구 가양동에 건설 중인 ‘강서 힐스테이트’에도 아트칼러를 사용한다. 각 동마다 빨간색이나 녹색 등을 적용해 화려한 외관으로 꾸밀 계획이다. 강서 힐스테이트에는 내년 6월까지 총 2603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포스코건설도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손을 잡았다. 이탈리아 건축디자인의 대부로 불리는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와 함께 아파트 외관 디자인 개발에 착수했다. 입체감을 살리면서도 도심과 환경을 고려한 자연스러운 색상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아파트 외관 색채뿐 아니라 간판ㆍ표지판 등 사인물 디자인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브랜드 중심의 기존 주택시장에 디자인 경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어넣겠다는 각오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알레산드로 멘디니와의 디자인 개발 작업은 현재 중간단계 정도 진행됐다”며 “이르면 올 연말쯤 개발이 끝나 적절한 디자인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심상치 않은 아파트 디자인 특화

아파트 외관 가꾸기는 민간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구 대현3지구에 건설 중인 ‘대현3지구 LH아파트’는 도시 슬로건인 ‘컬러풀 대구’에 맞게끔 단지 외관을 꾸밀 계획이다. 대구의 시화市花인 목련의 순결함과 팔공산의 자연적 요소도 단지 내에 표현된다. ‘재도약 대구’를 형상화한 녹색ㆍ연두색ㆍ갈색ㆍ빨간색 등 줄무늬 패턴을 아파트 외벽마다 높낮이를 달리해 입힌다. 색채의 강약으로 원근감을 조절함으로써 단지전체에 리듬감도 살릴 계획이다.

▲ 최근 주택가에 디자인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은 부산 동구 좌천동 수정산 인근 마을 조감도.

아파트에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는 작업은 이전에도 있었다. 2001년 준공된 동부건설의 이촌 센트레빌은 특이한 아파트 외형으로 줄곧 화제가 됐다. 8월 21일 오후 3시 이촌역. 4번 출구로 나와 용산청소년 수련원을 지나니 대로가 나온다. 대로 우측으로 이동해 5분쯤 걷다 보니 한강 방향으로 이촌 센트레빌이 보인다. 4개동 309가구의 작은 규모지만 특이한 디자인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촌 센트레빌은 아파트의 절반 가량을 커다란 창모양 필로티로 설계했다. 필로티는 벽이 없는 기둥구조를 말하는데 앞뒤가 뚫려 있어 조망권 확보에 유리하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애초 설계는 특이한 디자인을 위해서였다라기보단 뒤에 위치한 아파트의 한강 조망권을 위한 것이었다”며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아파트의 개성을 살린 듯하다”고 설명했다.

102동 출입구에서 군용가방을 메고 나오는 미국 여자군인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 있던 60대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이곳엔 미군 외에 일반 외국인도 꽤 많이 산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지 입구에는 외국인전용 부동산임대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이촌센트레빌 40평, 전세가 6억5000만원’이라는 홍보문구가 인상적이다.

수요자 끌어들이는 적절한 수단

최근엔 한옥 디자인을 첨가한 아파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건설 중인 서울 용강동 ‘래미안 마포 리버웰’은 공동시설을 한옥으로 디자인했다. 이 아파트의 사업지 내에는 구한말 지어진 한옥 3채가 남아 있는데 삼성물산은 이를 헐지 않고 주민공동시설과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할 방침이다. 또한 아파트 단지 곳곳에 과거 궁궐 건축 때 쓰던 전돌로 조경시설을 만들고 주변에 느티나무를 심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할 예정이다.

 

대림산업도 한옥디자인 작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1월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의왕ㆍ내손 e편한세상’ 아파트 디자인에 한옥을 접목한 것이다. 아파트 현관 앞에 한옥 문양을 가미한 중문을 설치하고 한지 느낌의 벽지과 흙을 마감재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최근 건설사들이 아파트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업계에선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된 아파트시장’을 이유로 꼽는다. 부동산 호황기 때는 아파트가 분양시장에 나오자마자 완판이 되곤 했다. 디자인이 촌스럽건 허름하건 상관없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불황이 장기간 지속되다 보니 경향이 바뀌었다.

같은 값이면 좀 더 예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갖춘 아파트를 선호하는 수요자가 늘어난 것이다. 디자인 작업비용이 일반 건축설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건설사들이 아파트 외형꾸미기에 몰두하는 이유다. 적은 비용으로 경쟁사에 비해 차별성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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