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새 OS 테스트 100일의 기록

▲ 애플이 iOS7 베타버전을 업그레이드했다. 하지만 애플 고유의 색깔이 사라졌다는 평가다.(사진: 뉴시스)
애플이 애플 같지 않다. iOS7 베타버전을 업그레이드했지만 실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애플 특유의 컬러도 사라졌고, 디자인도 후지다. 구글 안드로이드의 ‘짝퉁 같다’는 느낌까지 난다. 무엇 때문일까. 스티브 잡스가 없는 탓일까. 혁신 없는 애플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무려 99달러. iOS7 베타 테스트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애플 개발자 계정에 등록하느라 든 돈이다. 하루라도 빨리 애플의 새 운영체제(OS)를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일, 결론은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이다.

애플은 그동안 여섯 차례 iOS7 베타 버전을 업그레이드했지만 iOS7을 처음 설치하고 느꼈던 그 충격과 절망은 여전하다. 아이폰을 아이폰이게 했던 것들이 사라졌다. 현란한 컬러도 컬러지만 디자인도 후졌다. 말랑말랑 어딘가 20대 여성 취향에 애플 특유의 시크하고 쿨함이 사라졌다.

차기 모델인 아이폰5S는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고 속도가 조금 빨라지고 카메라 성능도 개선될 거라고 한다. 홈 버튼에 지문인식 기능이 들어간다고 한다. 애플이 혁신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소프트웨어는 오히려 후퇴했다. 애플이 6인치 아이폰을 출시할 거라는 소문도 있다. 아이폰5가 최적의 사이즈라더니 소비자들의 얄팍한 취향에 따라 최적이라는 기준이 자꾸 바뀐다.  애플이 조만간 보급형 모델로 아이폰5C을 공개할 거라는 루머도 들린다. 보급형 아이폰이라니. 비싸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스마트폰을 쓴다는 자부심이 무너졌다. 애플 입장에서는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선 가운데 중국과 인도 등의 보급형 스마트폰 수요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애플의 성장 전략이 이익(실속) 중심에서 매출(외형확대) 중심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구글이 구글 글래스와 크롬캐스트를 내놓고 삼성전자는 스마트 기어를 내놨는데 애플은 딱히 신제품도 없다. 아이워치는 내년 상반기에나 나올 거라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이런저런 콘셉트 디자인이 떠돌지만 스마트 시계라는 게 딱히 새로운 개념도 아니고 애초에 스마트폰과 충돌하는 기능이 많아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플이 올해 3분기10년 만에 첫 분기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성공한 많지 않은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애플은 자기네 하드웨어에 가장 맞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 맥이나 맥북, 맥북에어 등에도 애플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이폰5나 아이패드미니, iOS7 등 잡스 사후 나온 제품에는 2006년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의 충격, 2010년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불러왔던 엄청난 발상의 전환을 찾아보기 힘들다.

애플이 혁신을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에서 발 빠른 따라쟁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 변신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올 2분기 말 기준으로 스마트폰 운영체제 점유율은 구글이 79.0%, 애플이 14.2%다. 3.3%밖에 안 되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최근 노키아를 인수하면서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애플의 폐쇄적인 플랫폼 전략과 마니악한 디자인이 애초에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애플은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PC시장 점유율은 5%가 채 안 된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의 연대에 밀렸는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나온다. 구글이 스마트 디바이스 시장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애플은 여전히 폐쇄적인 앱스토어 플랫폼에 스스로를 고립하고 있다. 그게 애플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애플의 고집스러운 플랫폼 전략이 자칫 소수 마니아 그룹의 취향으로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iOS7 구석구석에서 잡스의 색깔을 빼려는 시도가 보인다. 애플의 디자인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조나단 아이브 수석 부사장은 잡스 시절 잡스의 아이디어를 충직하게 구현해 냈지만 이제는 잡스 없는 애플의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 내고 있다. 취향에 따라 선호가 엇갈릴 수는 있지만 분명한 건 잡스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보급형 아이폰? 무너지는 자존심

흔히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으로 설명한다. 스큐어모피즘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Skeuos’와 ‘morphe’를 더한 말이다. 스큐어스는 도구, 모프는 형태, 스큐어모피즘은 원래 도구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의미다. 아이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보던 조리개가 열렸다 닫히는 짧은 애니메이션 효과가 대표적인 스큐어모피즘의 구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박음질된 가죽의 느낌을 살린 캘린더나 카지노의 펠트 재질 테이블을 흉내낸 게임센터, 나무로된 서가의 느낌을 흉내내고 실제로 책장을 넘기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아이북스 등 어린아이들에게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쉽게 아이폰에 적응하는 건 아이폰의 인터페이스가 철저하게 현실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브는 iOS7에서 잡스의 스큐어모피즘을 배격했다. 음성 메모 애플리케이션(앱)을 열면 마이크 이미지가 뜨고 메모장을 열면 줄이 쳐진 노란 노트가 뜨던 친숙한 디자인이 사라졌다. 계산기도 진짜 계산기 같았지만 이제는 별다른 감동이 없는 사각의 버튼으로 바뀌었다.

▲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의 혁신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있다.(사진: 뉴시스)
원목으로 짠 서가를 둘러보는 듯했던 뉴스스탠드는 그냥 평범한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처럼 바뀌었다. 특별히 바뀐 데가 없는 아이북스와 디자인의 일관성도 깨졌다. 과도한 스큐어모피즘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차피 아날로그가 아닌데 아날로그를 흉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발상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달라진 디자인이 일관성도 없고 불친절하다는 데 있다.

‘밀어서 잠금해제(slide to unlock)’는 아이폰의 가장 대표적인 인터페이스였는데 바뀐 디자인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밀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됐다. 스큐어모피즘과 미니멀리즘이 뒤섞여 지저분한 느낌을 넘어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마저 준다.

iOS7에 추가된 컨트롤 센터 등의 기능도 그다지 새롭지 않다. 안드로이드에서는 진작부터 지원되는 기능인 데다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도 없고 뭔가 차별화된 아이폰만의 바로가기 기능을 기대했던 애플 마니아들에게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다. 개편된 캘린더에 대한 불만도 많다. 디자인은 산뜻해졌지만 정작 날짜를 터치하기 전에는 세부 일정을 확인할 수 없다. 디자인이 기능을 잠식한 최악의 개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이 ‘패스트 팔로워’인가

문제는 스큐어모피즘이 아니다. 아이폰은 애초에 미니멀리즘적 외형에 스큐어모피즘적 요소를 더한 디자인으로 출발했다. 스큐어모피즘적 요소를 좀 덜어냈다고 해서 이렇게 망가질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애플이 혁신의 방향을 잃고 있다는 데 있다.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어야 돼.” 잡스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직 베타버전이라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지금의 iOS7은 미니멀리즘의 철학조차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잡스의 공백이 아니라 이미 나올 만한 건 다 나왔다’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가 혁신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다. 애초에 기술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터치 스크린의 감도나 중앙처리장치의 속도, 하드웨어 사양 등은 애플이나 삼성전자나 다를 게 없다.

물론 애플의 혁신을 잡스 혼자서 이뤄낸 것도 아니고 잡스 역시 수없이 많은 실수를 거듭했지만 잡스 사후 애플이 혁신의 한계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게 잡스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잡스의 그늘에 있었던 아이브의 새로운 철학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iOS7 이후 더 이상 아이폰은 아이폰이 아니게 됐다는 사실이다. 아이폰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계속해서 잡스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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