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쫓던 이사람 헌옷의 가치 팔다
명품 쫓던 이사람 헌옷의 가치 팔다
  • 김건희 기자
  • 호수 58
  • 승인 2013.09.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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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윤 아뜨레미술관 대표

그는 ‘명품팔이’였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패션경영을 공부한 그는 루이뷔통ㆍ샤넬ㆍ페라가모 등 명품 브랜드를 국내에 파는 일을 했다. 그런 그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헌옷을 팔고 있다. 그는 “헌옷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정병윤 아뜨레미술관 대표의 이야기다.

▲ 정병윤 아뜰게미술관 대표는 유통단계를 줄여 저렴한 가격으로 새옷 못지않은 헌옷을 판매한다.
그림과 옷…. 그의 작업실엔 온통 이것뿐이었다. 작업실 벽에는 유화팝아트판화 등 미술작품이 걸려 있었고, 방안에는 헌옷이 한 가득이었다. 정체성을 알기 힘든 이 작업실의 주인은 30대 청년 CEO 정병윤(32) 아뜨레미술관 대표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패션경영’을 공부했다.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친 그가 헌옷과 인연을 맺은 것은 ‘명품’ 때문이다. 정 대표는 2006년 삼성물산 밀라노법인 섬유사업부에서 명품을 ‘바잉’(현지에서 제품을 주문하는 것)하는 업무를 맡았다. 할머니의 루이뷔통을 손녀가 들고 다니는 광경을 보면서 “명품이란 쓰면 쓸수록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품을 ‘히스토리’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이런 가치관이 흔들린 건 한국에 들어와 명품사업을 시작하면서다. 2010년 소셜커머스 업체인 ‘위메이크프라이스’에 입사한 정 대표는 화들짝 놀랐다. 한국에서 명품은 히스토리가 아니라 부의 척도였기 때문이다. 더 놀란 것은 새 명품이 나올 때마다 불티나게 팔린다는 점이었다. 한국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명품을 샀다. 이를 간파한 유통업체는 경쟁하듯 가격을 인상했다. “명품의 가치를 가치 있게 만들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그를 흔들었다.

그는 가치를 팔고 싶었다. 수개월 동안 사업을 구상하던 그의 뇌리를 스친 아이템이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헌옷’이었다. 중고의류 시장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고 경쟁이 치열했다. 이미 많은 업체가 헌옷을 팔고 있었다. 업체를 둘러보던 정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눈에는 중고의류가 ‘헌옷’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구겨지고 때가 낀 채로 옷을 팔고 있었던 것이었다. ‘헌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다리면 어떨까.’ 곧장 전문세탁소로 달려갔다. 헌옷을 세탁하니 새옷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곤 세탁한 헌옷을 사업의 콘셉트로 삼았다.

 
그는 위메이크프라이스를 나와 ‘닥터 빠꾸미’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정병윤 대표는 먼저 아뜨레미술관을 설립했다. 이 미술관의 수익사업을 위해 만든 게 닥터 빠꾸미다.] 빠꾸미는 달인이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헌옷사업의 관건은 세탁법이었다. 헌옷은 얼룩이나 탈색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울 소재의 양복은 드라이클리닝(기름세탁)을 하는 게 맞지만 기름만으로는 찌든 때를 제거할 수 없었다. 물세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물세탁을 하게 되면 원단이 수축하기 때문에 전문세탁법이 필요했다. 정 대표는 전문세탁이 가능한 세탁소를 찾았다. 수소문 끝에 명품세탁이라고 소문난 한 세탁소와 협약을 맺었다. 세탁법은 과학적이고 전문적이었다. 울이 물에 닿더라도 원단이 수축되지 않도록 자체 개발한 약품을 넣어 물세탁을 했다. 그리고 실 사이에 끼어 있는 얼룩을 없애기 위해 방망이로 두드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얼룩이 깨끗하게 없어졌다. 이런 세탁법이라면 새옷 못지않은 헌옷을 팔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 대표는 헌옷이라고 밝히고, 헌옷이 좋다는 걸 홍보할 참이다. 헌옷에 숨어 있는 가치를 팔겠다는 것이다. 그에게 헌옷은 명품 이상의 가치가 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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