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만 해도 가맹사업 안 접겠다더니…

올해 4월 중순. 크라운베이커리가 가맹사업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크라운베이커리 측은 펄쩍 뛰었다. 경영사정이 좋지 않을 뿐 가맹사업을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가맹점주들이 의혹을 제기해도 답변은 앵무새처럼 똑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 크라운베이커리가 문을 닫으면서 남아 있던 가맹점주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크라운베이커리가 경영적자로 9월 30일자로 폐업을 공식 발표했다. 크라운베이커리측은 “더 이상 정상적인 가맹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가맹사업을 중단한다”며 “9월 말까지 70개 가맹점 가운데 75%를 철수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그럼 크라운베이커리 본사를 불공정거래를 이유로 공정위에 신고한 가맹점주들이 순순히 받아들인 걸까.

익명을 원한 한 가맹점주 A씨는 “함께 매장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몸 상태가 나빠져 운영할 더 이상 하기 어려웠다”며 “적은 금액이지만 합의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올 1월 개인사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매장을 넘기길 바랐지만 본사 거부로 그러질 못했다.

또 다른 가맹점주 B씨는 “불만족스러운 조건이었지만 건물 임대차 계약이 거의 끝나가 어쩔 수 없이 합의서에 사인했다”며 “본사가 가맹사업을 접는다는 데 어쩌겠는가”라고 한탄했다. 본사의 제안을 목구멍이 포도청인 탓에 받아들인 셈이다. 가맹점주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없이 합의를 봤다는 얘기다. 크라운베이커리 측의 주장처럼 ‘대부분 가맹점주가 동의했기 때문에 철수를 결정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계추를 올 6월 20일로 되돌려보자. 그날 크라운베이커리 가맹점주 43명은 크라운제과를 가맹사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공동 제소했다. 당시 크라운베이커리 매장수는 100개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공정위에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신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 주문시스템 변경, 케이크 배달 서비스 중단, 제품 축소와 미출고, 가맹점 양도 불허, 가맹계약 갱신 거절….”

시스템 효율화? 가맹점주 고사 직전

가맹점주들이 뭉칠 만도 했다. 크라운베이커리 본사는 올 초부터 가맹점주들에게 점포 양도를 불허하고 가맹계약갱신을 거절했다. 본사 영업소장은 가맹점을 돌아다니며 폐업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크라운베이커리가 가맹사업을 그만두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돌았다. 일은 계속 커졌다.

올 5월 크라운베이커리는 파주공장을 폐쇄하고, 제품생산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돌렸다. 파주공장은 크라운베이커리의 주요 빵 생산지였다. 이 공장을 폐쇄한다는 건 더 이상 빵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문시스템에도 문제가 생겼다. 본사는 모든 제품의 주문시간을 ‘이틀 전 낮 12시’로 변경했다. 본사측은 “가맹점포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물류, 배송 시스템의 효율화를 위해 외주생산으로 돌렸던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문제도 변경으로 가맹점주들은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점주들은 이렇게 말했다. “말이 이틀 주문이지 오전 시간 매장을 치우고 빵을 구우려면 정신이 없어요. 사실상 3일 전 주문이라고 보면 되요. 힘들게 주문을 해도 제품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어요. 더구나 반품제도까지 수정돼 제품을 팔지 못하면 반품이 안 됐죠.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고선 이틀 전에 빵을 주문할 수 없는 상태였죠.”

크라운베이커리 가맹점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들어가면 당시 가맹점주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배송된 케이크(스위트 후르츠) 위 딸기에 곰팡이가 피었다.(가맹점주 C씨, 5월 16일)” “유통기간이 오늘까지인 봉지빵에 곰팡이 폈음. 유통기간이 판매를 허락하는 기한 맞나요(가맹점수 D씨, 6월 3일).” “예전에는 케이크가 남으면 단골들에게 나눠줬는데 폐기하고 있다. 팔아도 창피할 정도로 맛이 없어졌다(가맹점주 F씨, 6월 25일).”

▲ 크라운베이커리 문제가 불거진 건 올 5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재벌, 대기업불공정, 횡포 피해사례 발표회에서였다.
크라운베이커리 가맹점주들이 생계를 제쳐두고 공정위에 제소를 하기 위해 똘똘 뭉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정위 제소 당시 가맹점주들은 크라운베이커리를 상징하는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크라운해태제과 앞에서 “본사가 하루빨리 가맹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려놓든지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가맹사업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본사는 가맹사업을 철수할 계획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태수습을 위해 국회의원들까지 나섰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실례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크라운베이커리 문제 해결을 위해 가맹점주들과 면담 후 6월 28일과 7월 12일 두차례 걸쳐 크라운제과 본사를 방문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한번 바뀐 주문제도는 다시 바뀌지 않았고, 본사의 일방적인 케이크 배달 서비스 중단으로 이들 전문매장 점주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공정위 역시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가맹점주 G씨는 “공정위가 서류만 받아 갔지 단 한명의 가맹점주를 불러 조사한 적조차 없었다”며 “불공정행위를 조사해야 하는 공정위가 결국 본사에게 시간만 벌어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하루에도 10건이 넘는 사건이 접수될 정도로 처리할 게 많아 우리도 애로사항이 많다”며 “사건의 경중이나 처리 가능성 여부에 따라 유동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지친 점주들 합의서에 ‘도장’

실제로 공정위가 침묵하는 사이 크라운베이커리 본사는 가맹점주를 한명씩 만나 합의를 꾀했다. 본사가 제시한 합의금은 턱없이 낮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몇몇 가맹점주들의 합의금은 1000만~2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맹점주는 “울며 겨자 먹기,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계란이 이런 것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점주는 “2억~3억 투자해 누가 이런 결과를 원했겠느냐”며 “먹고 살길을 찾아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제 와서 이것저것 따져봤자 소용없다. 결국 크라운베이커리는 9월 30일 문을 닫기 때문이다. 크라운베이커리가 탄생한 지 25년 만이다. 한때 크라운베이커리는 ‘왕관(Crow n) 로고’로 명성을 떨쳤다. ‘화이트 초콜릿 케이크’ ‘우유 생크림 케이크’는 크라운베이커리의 히트제품이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치고 올라올 때도 크라운베이커리의 케이크는 나이든 할아버지들까지 팬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중독성이 있었다. 하지만 치열한 베이커리 시장에서 밀린 크라운베이커리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2006년까지만해도 1000억원을 넘던 매출은 2011년 42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2008년부터는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크라운베이커리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부인인 육명희씨가 대표로 나선 시점이다. 크라운베이커리의 족벌경영이 가맹사업을 망쳐놨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때부터 크라운베이커리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 점주는 “이때부터 TV광고 등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점점 경쟁에서 밀린 것 같다”며 “프리미엄 제빵 브랜드 딜리댈리를 설립하면서 적자폭이 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라운베이커리가 적자행진을 이어간 것이 이들의 방만 경영 때문이라는 것이다.

딜리댈리는 윤영달 회장의 차남인 윤성민씨가 야심차게 준비한 프리미엄 빵집 브랜드다. 2009년 10월 신촌에 1호점 오픈 후 강남·경희대 등지에 매장을 오픈하며 출사표를 던졌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다 결국 자취를 감췄다.

크라운베이커리 관계자는 “육명희 전 대표가 경영을 맡을 때부터 이미 경영상태가 많이 악화돼 있었다”며 “적자가 이어져 투자하기가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육 전 대표 취임 후 시장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대형 베이커리 업체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철수에까지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운베이커리가 몰락한 진짜 이유는 그 누구도 모른다. 문제는 최소 1억~2억을 들여 빵집 하나 갖겠다고 했던 소시민의 꿈이 속절없이 무너졌다는 거다. 한 가맹점주는 이렇게 말했다. “크라운베이커리를 하면서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손님들 보는 재미에 즐겁게 일했습니다. 이제까지 나쁜 짓 안하고 열심히 산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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