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맛집 유치전쟁

▲ 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점이 지난해 10월 식품관을 고메이 494로 리뉴얼하면서 동네 맛집을 대거 입점시켰다.
콧대 센 백화점이 ‘동네맛집 유치전쟁’을 벌이고 있다. 식품매장에 ‘새바람’을 불어넣어 사상 전례 없는 경기침체를 돌파하겠다는 계산에서다. 백화점 1층 식품매장에 방문한 고객이 늘어나면 백화점 전체 매출이 증가할 공산이 커서다. 이른바 ‘분수효과’를 노리고 동네맛집에 러브콜을 보내는 셈이다.

#평일 오후 3시 신세계 강남점 지하 식품관. 한 디저트 전문점 매장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다. 도지마롤로 유명한 몽슈슈 매장이다. 10시 30분부터 몰려든 손님들로 이날 준비한 도지마롤은 오후 3시가 되자 흔적없이 사라지고 없다.

몽슈슈 신세계 강남점 점장은 “일반 케이크 포함해 400개가량을 만들어 파는데 3시쯤이면 모두 팔린다”며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인천에 거주한다는 한 소비자는 “신세계 강남점과 현대백화점 압구정 두곳에 몽슈슈가 입점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강남까지 왔는데 허탕을 쳤다”며 “기왕 방문했으니 추석선물로 살 만한 게 있나 봐야겠다”고 말했다.

이태원, 서래마을 맛집 한자리에

몽슈슈(일본명 몽쉐르)는 제일동포 김미화씨가 오사카大版에 처음 오픈한 빵집이다. 홋카이도北海道산 우유크림을 넣어 만든 롤케이크 ‘도지마롤’은 오사카 여행객 사이에서 필수 구매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오사카 현지인도 줄을 서야 살 수 있을 정도다. 일본 전역에 27개 매장을 두고 있는데, 하루 1만여개가 팔려 나간다. 이런 몽쉐르 열풍이 8월말부터 한국에 불고 있다. 몽슈슈라는 이름으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현대백화점 두곳에 입점했기 때문이다.

▲ 올 8월 말 오사카의 명물로 불리는 도지마롤(롤케이크)의 몽슈슈가 국내에 상륙했다. 사진은 신세계 강남점의 몽슈슈 매장. 오후 3시에 가도 빵이 없을 정도로 인기다.
#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점(갤러리아) 지하 1층의 식품관 고메이 494. 이름이 독특하다. 미식가라는 뜻의 구어메(gourmet)를 라틴식으로 발음한 ‘고메이’에 갤러리아가 위치한 494번지를 결합한 이름이다. 고메이 494에는 서울 한남동 이태원, 방배동 서래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 맛집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태원 화덕 피자 맛집부터 서래마을 수제버거 맛집, 용인 수지 지역의 냉면 맛집까지 줄을 서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들이다. 이름처럼 미식가를 위한 공간이다. 주목할 점은 고메이 494의 규모가 식품관의 70%에 달한다는 것이다. 식품관 절반 이상을 외식공간으로 꾸민 것은 파격적일 수밖에 없다.
 

한 소비자는 “예전부터 버거 조인트의 치즈스커트(치즈버거)를 맛보고 싶었는데 교통편이 불편해 매장에 방문하지 못했다”며 “고메이 494에 오니 버거조인트의 수제버거뿐만 아니라 멕시코 맛집 바토스의 퀘사디아와 카페마마스의 리코타치즈샐러드를 한번에 주문할 수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백화점이 길거리 맛집을 유치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갤러리아는 지난해 10월 고메이 494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식품관을 리뉴얼하고 이태원의 멕시칸 요리 맛집인 바토스와 화덕피자 맛집인 핏제리아 디부자(부자피자), 젊은 여성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청계천 맛집 카페마마스 등 총 19개의 맛집을 들여왔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4월 문을 연 의정부점에 ‘발재반점’ ‘오뎅식당’ 등 숨은 고수들을 연이어 모셨다. ‘발재반점’은 동부이촌동에서 소문난 중국음식점이고, ‘오뎅식당’은 의정부의 명물인 부대찌개로 유명한 집이다. 올 8월에는 오사카 명물로 유명한 도지마롤의 몽슈슈를 강남점에 입점시켰다.

현대백화점도 맛집 사냥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백화점은 올 1월부터 20명으로 구성된 ‘제왕의 귀환’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 중이다. 상품본부 생활사업부 소속인 이들의 주요 업무는 가로수길, 홍대, 이태원 등에 있는 핫 플레이스 맛집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 결과, 올 5월부터 7월까지 새롭게 리뉴얼한 현대백화점 무역점의 델리매장에는 이탈리아 베이커리 브랜드 카라멜, 베이커스 필드 등 총 10여개의 내로라하는 디저트 맛집이 입점했다. 전주의 유명 빵집 풍년제과는 현대백화점 목동점과 압구정점에 둥지를 틀었다. 오사카 유명 빵집 몽슈슈를 들여온 것도 괄목할 만한 성과다(현재 몽슈슈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두곳에만 들어와 있다).

롯데백화점은 길거리에서나 볼 수 있던 아딸 떡볶이를 푸드코트에 들여왔다. 영등포점·김포공항점을 비롯 7개 점포에 입점시켰다. 잠실점에는 이태원·홍대 등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멕시칸 패스트푸드점 타코벨이 들어와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트렌디한 먹거리를 발굴해 들여옴으로써 젊은 고객의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 업계가 길거리 맛집을 경쟁적으로 입점시키는 이유는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다. 소비계층을 늘려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려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분수효과를 노린 포석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백화점 식품매장은 지하에 있다. 식품매장을 찾은 고객은 ‘분수’처럼 위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경향이 있다. 갤러리아 1층 화장품 매장의 매출이 지하에 있는 고메이 494 덕에 늘어난 것은 분수효과를 잘 보여주는 예다.

분수효과 노린 리뉴얼

 
갤러리아의 올 상반기 식품관 매출은 전년 대비 35% 늘어났는데, 고메이 494의 바로 위층에 있는 화장품 매장(1층) 매출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올 8월까지 1층 화장품 매장 매출이 전년 대비 8% 늘어났다”며 “지난해 10월 고메이 494로 식품관을 리뉴얼한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백화점의 화장품 매출은 감소 추세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메이 494를 찾는 신규고객이 화장품 매장까지 방문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백화점 매출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인지 유명맛집을 입점시키기 위한 백화점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맛집 주인장을 찾아가 삼고초려를 하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실제로 갤러리아는 맛집을 일일이 찾아다닌 끝에 지금의 고메이 494를 완성할 수 있었다. 화덕피자 맛집인 핏제리아 디부자(부자피자)의 경우 담당 F&B 바이어가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가 수차례 설득한 끝에 입점시켰다. 이태원 멕시칸 레스토랑 맛집 바토스에는 갤러리아 상무급까지 레스토랑을 찾아가 입점을 설득했다.

 
김주원 바토스 대표는 “백화점 입점을 두고 고민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남해로 내려갔는데 이곳까지 내려오겠다고 하더라”며 “10번 정도 거절했는데 우리를 꼭 입점시키겠다는 확신과 열정이 보여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아닌 우리 같은 작은 맛집들로만 구성한 발상이 좋았다”며 “대부분 교포로 이뤄진 이곳 맛집 사장님들과 자체 커뮤니티를 형성해 좋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무작정 찾아가기보다 이들 맛집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 청사진을 제안한 게 비결인 거 같다”며 “처음부터 레스토랑을 통한 수익을 노리지 않고 업계 최저로 입점 수수료를 받은 것도 이유”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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