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물살 타는 김우중 추징법

▲ 약 18조원의 추징금을 미납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추징금 회수를 위한 검찰의 압박이 강해질 전망이다.(사진=뉴시스)
법무부가 최근 이른바 ‘김우중 추징법’을 입법예고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전액환수를 가능하게 한 ‘공무원 범죄에 대한 몰수특례법(일명 전두환 추징법)’의 민간 버전이다. 김 전 회장 측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억울하다”고 말했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9월 10일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도서출판 시공사 대표는 “미납추징금 1672억원을 자진납부하겠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국민과 검찰의 압박에 백기를 든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도 전액환수가 이뤄짐에 따라 정치권을 향한 검찰의 ‘추징금 칼날’은 다소 무뎌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칼집에 칼을 집어넣는 건 아니다. 보다 날카롭게 날을 세워 또 다른 대상을 겨냥할 공산도 있다. 이번엔 재계 쪽이다.

현재 추징금 대상으로 거론되는 유력 인물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우중 전 회장은 분식회계, 사기대출, 횡령, 국외 재산도피 등의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00억원을 선고받았다(2006년 11월). 추징금만 따지면 전 전 대통령의 100배가 넘는 금액이다. 분식회계에 가담한 전직 대우 임직원 5명의 추징금까지 합치면 액수는 23조300억원으로 늘어난다.

검찰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납된 우리나라 전체 추징금 규모는 25조3800억원이다. 23조원에 달하는 대우관련 추징금은 전체 추징금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 전 회장으로부터 거둬들인 추징금은 840억원에 불과하다. 그에게 추징금을 독촉해 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전성기 시절 김 전 회장이 경영하던 대우는 계열사 41개, 국내 종업원 10만5000명, 해외사업장 종업원 21만9000명, 해외법인 396개사를 거느린 거대기업이었다. 1990년대 말에는 자산기준으로 삼성을 제치고 재계 2위에 등극했다. 이런 공룡기업을 경영하던 김 전 회장의 현재 재산은 얼마일까. 실망스럽게도 공식적인 재산은 ‘제로’상태다. 대우그룹이 자구대책을 마련할 당시인 1999년 7월, 전 재산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해 남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추징금 징수 여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김 전 회장 측은 ‘빈털터리’임을 강조해 왔다. 이는 ‘전 재산 29만원뿐’이라며 추징금을 거부하던 전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추징 당사자는 재산이 없는데 자녀는 수백억대 자산가라는 점도 김 전 회장과 전 전 대통령이 닮은꼴이다.

최근 한 비영리 독립언론사는 “김 전 회장의 셋째아들 선용씨가 베트남 하노이 중심부에 약 600억원 규모의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탐사보도 언론인협회(ICIJ)가 확보한 페이퍼컴퍼니 설립대행업체 ‘포트컬리스트러스트넷(PTN)’의 내부 문서와 싱가포르 기업회계청 기록을 분석한 결과다. 골프장의 이름은 ‘반트리 골프장’으로 회원권 가격이 1억5000만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인 재산은 ‘무일푼’

김 전 회장과 관련한 추징금은 영국의 대우그룹 비밀금융조직인 BFC(British Finan ce Center)에서 관리하던 자금이 200억 달러 규모(당시 환율 기준 25조원)로 파악되면서 산출된 금액이다. 대우 관련 추징금 규모는 서울시 한해 예산(23조5069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추징금이 정상적으로 회수된다면 박근혜 정부의 복지예산 확보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현재 박 대통령은 복지공약 실천에 필요한 재원 135조원의 확보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적자산 처분, 담뱃값 인상, 공무원 임금동결 등의 해결방안이 나오고 있으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만약 대우로부터 추징금을 전액 환수하면 복지공약에 필요한 재원의 약 17%가 해결된다.

그러나 김 전 회장 측은 추징금과 관련한 상황이 왜곡돼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인 전 대우그룹 임원은 최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기업을 경영하다가 생긴 일일 뿐 개인착복은 아니었다”며 “추징금도 안 내고 해외에서 호화 생활을 한다는 둥 자꾸 매도를 하니까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김 전 회장의 근황은 어떨까. 김 전 회장은 2007년 12월 특별사면을 받은 이후 줄곧 베트남에 머물렀다. 현재 그는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반트리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 전 회장은 공개석상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대우그룹 창립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관계자들을 격려했으며, 해외 청년 취업프로그램 ‘YBM(Global Young Businessman for Vietnam)’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기도 하다.

YBM은 옛 대우맨들의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자금을 지원한다. 김 전 회장은 현역시절 ‘세계 경영’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쌓은 명성을 발판으로 김 전 회장이 재기를 도모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재기를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그가 은닉재산의 일부를 꺼낼 것인지도 관심사다.

 
언급했듯 김 전 회장의 공식재산은 파악이 힘들다. 하지만 일가족의 재산은 어느 정도 모습이 드러난 상태다. 선용씨의 베트남 골프장 외에, 둘째 아들 선엽씨는 경기 포천시 아도니스골프장의 대주주다.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는 아트선재미술관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각된 경주힐튼호텔도 김우중 일가의 차명재산이었다.
 
입법예고된 김우중 추징법

이처럼 가족의 재산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김 전 회장에 대한 미납 추징금 회수는 쉽지 않다. 현행법상 추징대상이 당사자로 한정돼 있어서다. 집행을 위한 압수수색 영장 제도 또한 마련돼 있지 않다. 금융거래 내역이나 과세정보에 대한 접근도 제한돼 은닉재산을 추적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도 없다.

하지만 상황이 급반전 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른바 ‘김우중 추징법’이다. 쉽게 말해 ‘공무원 범죄에 대한 몰수특례법(일명 전두환 추징법)’의 민간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김 전 회장 본인은 물론 가족 및 은닉혐의자에 대한 계좌추적ㆍ압수수색ㆍ소환조사 등이 가능해진다.

제3자의 재산일지라도 범죄수익인 것으로 확인되면 곧바로 압류와 추징도 진행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개정안의 입법예고는 9월 29일까지 할 예정”이라며 “입법예고 이후 정부안이 최종 확정되면 금년 하반기까지 입법이 이뤄지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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