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가계에 미치는 영향

▲ 가계부채 980조원, 한국 경제의 최대 불안요인이다.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 빚 많은 가계는 흔들린다. 부담해야 할 이자가 그만큼 커지는 탓이다. 이제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릴 조짐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전환점이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가계부채 시한폭탄의 초침은 빨라질 수밖에 없다. 한 중산층 맞벌이 부부의 가계에 금리 상승 시나리오를 적용했다.

중견기업 과장인 박진선(가명ㆍ37)씨의 연봉은 4500만원(세후 3750만원)이다. 동년배와 비교했을 때 많지도 적지도 않다. 아내 김지영(가명ㆍ35)씨는 전업주부다. 지금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첫 아이(딸ㆍ5)를 낳았을 땐 직장을 다녔지만 둘째(아들ㆍ2)를 출산한 이후엔 살림만 하고 있다. 아이 둘을 키우는 데 여간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은 그렇다 치고 직장상사 눈치도 그만 보고 싶었다. 김씨는 아들이 세 살이 되는 내년 재취업을 목표로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남편 월급으로 살림을 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경력이 단절된 탓에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아이 둘을 키우는 애엄마를 받아줄 직장도 많지 않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박씨는 요즘 심기가 편치 않다. 그는 지금껏 월급이 적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소득으로 따지면 중산층 가정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박씨 혼자 버는 월급으로 네식구가 살아가기엔 빠듯하기만 하다. 박씨는 조금이라도 지출을 아끼기 위해 담배까지 끊었다. 하지만 월 생활비는 요지부동이다. 줄인만큼 더 지출하는 것도 문제지만 한껏 치솟은 물가가 살림을 압박한다. 박씨 가정의 한달 생활비를 대략 살펴보면 이렇다.

2010년 구입한 배기량 1500cc 준ㆍ중형차에는 월 30만원이 들어간다. 차량유지비용이다. 지난해까지 납부하던 자동차 할부금 35만원을 모두 갚아 부담이 많이 줄었다. 가족과 함께 이동하거나 급한 일이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유지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식생활비에는 월 80만원가량을 쓴다. 주거관리비, 각종 세금(25만원), 교통ㆍ통신비(20만원) 등으로 월 125만원을 지출한다. 노후를 대비한 각종 보험료가 월 25만원이다. 큰 아이의 교육비에 지출되는 금액도 만만치 않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지만 아내의 교육열이 대단한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매달 15만원을 지출한다. 영어ㆍ피아노ㆍ미술 학원ㆍ유아 학습지 등 사교육비는 추가로 35만원이 더 든다. 이 가정의 총 지출액은 월 230만원이다.

이제 남은 돈은 97만원(327만원-230만원). 남은 금액을 모두 저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이 가정의 저축과 투자액은 한달에 고작 36만원에 불과하다. 낭비를 해서가 아니다. 갚아야 할 빚이 있기 때문이다. 36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61만원(97만원-36만원)은 주택담보대출 원리금(51만원), 가계신용대출 이자(10만원)이다.

 
박씨는 2010년 20년 만기로 주택담보대출 7000만원을 받았다. 현재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3.77%(7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주택담보대출 기준)이다. 월 22만원의 이자를 낸다. 원금(29만원)을 합치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만 월 51만원이 나간다. 가계신용대출 2000만원도 받았다. 박씨가 매월 납부해야 하는 이자는 10만원(가계대출평균금리 6.25%)이다.

금리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원리금

적지 않은 금액의 빚을 갚고 있지만 박씨 가정은 그래도 흑자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줄인 덕분에 저축과 투자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씨의 근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만간 금리가 오를 것 같은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올 5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처음으로 언급된 뒤 금리가 꿈틀댔다. 3월말 연 2.73%를 기록했던 10년만기 국채금리는 6월 중순 연 3.19%까지 올랐다. 그 영향으로 국채금리에 연동한 적격대출금리도 출렁였다. 시장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각종 가계신용대출의 기준금리로 사용된다. 그래서 시장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도 함께 상승한다.

이런 현상은 2010년 이전까지 각종 가계신용대출의 기준으로 상용된 CD(양도예금성증서)금리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02년 이후 기준금리(2008년 2월까지는 콜금리 목표치)는 모두 17번 변동했다. 이 가운데 7번의 기준금리 인상이 있었다. CD금리는 그때마다 크게 움직였다. 대출금리도 그 영향을 받았다.
▲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채로 인해 가계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례로 기준금리가 2004년 11월 11일 3.25%에서 2008년 5.25%로 2.00%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CD금리ㆍ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각각 2.37%포인트, 1.69%포인트 상승했다.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당연히 빚이 있는 가계의 이자부담이 커진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정과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7조2000억원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 금리가 오르면 박씨 가정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이 가정의 가계대출이 금리별로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봤다. 시기는 2007년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이 터졌을 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로 정했다.

참고로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계산방식은 원금균등 상황방식을 따랐다. 금리에는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예금은행 가중평균금리를 적용했다.

 
[※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코픽스(COFIXㆍ자금조달비용지수)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이에 따라 금리상승기의 대출 원리금을 비교하려면 코픽스금리를 적용하는 게 옳다. 그런데 2010년까지만 해도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으로 CD연동금리가 더 많이 사용됐다. 하지만 CD금리가 은행의 실제 조달 금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발견됐다. 더구나 지난해 터진 은행ㆍ증권사의 CD금리 담합 파문으로 그 사용이 크게 줄었다. 그래서 지금은 코픽스나 코리보(KORIBOR•은행간단기대차금리)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2009년 이전 금리 상승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예금은행 가중평균금리를 이용했다.]

예금은행 가중평균금리중 기준으로 사용한 금리는 신규취급액 기준 금리에서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신용대출금리를 사용했다. 신규취급액 기준 금리는 시중 은행이 해당월중 신규로 취급한 수신•대출에 적용한 금리를 가중평균한 통계로 최근의 금리동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가정1 | 2009년 1월 수준
2009년 1월 9일 당시 기준금리는 2.50%였다. 2.00%로 떨어지기 바로 직전의 금리다. 2009년 1월 신규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일반신용대출 금리는 각각 5.63%와 7.01%였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지금보다 1.86% 높고, 신용대출금리는 0.76% 높다. 금리 안상에 따라 박씨 가정이 부담해야할 원리금 상환액은 월 72만원 연 864만원이다. 현재보다 주택담보대출은 10만원 신용대출은 1만원이 늘어난다. 금액이 줄어들긴 했지만 흑자재정을 유지할 수는 있다.
 
가정2 | 2007년 서브프라임 직전 수준
하지만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7년 7월 12일 미국 서브프라임 직전 수준으로 금리가 상승했을 때를 가정해보자. 당시 기준금리는 4.75%였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6.24%에 달했고 신용대출금리도 7.33%였다. 주택담보대출은 2%이상, 대출금리는 1%이상 높다. 그렇다면 이자부담액은 얼마나 늘어났을까.

박씨 가정은 이 금리가 적용되면 월 77만원, 연 924만원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현재 보다 각각 14만원과 2만원 늘어난다. 월 16만원을 1년으로 계산하면 192만원 많은 금액이다. 박씨 가정의 흑자재정이 깨진다. 아이들 사교육비를 줄여야 현상유지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 금리가 그렇게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정3 |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수준
2008년 8월 7일 글로벌 금융위기가 임박했을 당시 기준금리는 5.25%였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신용대출 금리는 각각 7.16%, 8.76%에 달했다. 이 금리가 적용될 경우 박씨 부부가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은 월 84만원 연 1008만원으로 증가한다. 현재보다 월 23만원 연 276만원이 증가한 액수다.

노후를 위해 준비하던 각종 보험을 모두 해지하거나 딸아이의 학원을 거의 모두 관둬야 손실을 막을 수 있는 규모다. 연간으로 따지면 박씨의 세후 월 소득 327만원의 26.8%가 원리금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금리가 인상되면 이처럼 대출이 있는 가정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다. 특히 올 2분기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980조원이 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서민가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채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부담 증가는 가계경제를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이 본격적인 출구전략으로 이어질 경우 금리인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면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가계가 속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본격적인 출구전략 시행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시간이 지나 부실화된 가계부채가 한꺼번에 무너질 경우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원리금 상환부담 소비위축 불러

걱정스러운 부분은 또 있다. 소비가 위축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적자 재정, 가계 붕괴를 모면하기 위해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것은 소비성 지출 항목이다. 박씨 가정처럼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소득이 증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아질수록 민간소비가 위축된다는 견해도 있다.
 
금리 인상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불황의 끝자락을 통과하고 있는 대한민국호(號)로선 치명상을 입는다. 한국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기를 순조롭게 탈출하는 원동력은 정부의 확장 재정정책 덕이다. 정부가 막대한 돈을 푼 결과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언젠가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한다. 더 풀 돈도 사실 많지 않다.

정부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곳은 다름 아닌 민간이다. 민간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또 다른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시장금리의 상승으로 늘어나는 가계 원리금 또는 이자부담액을 눈여겨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계가 보내는 경고 시그널을 허투루 읽어, 가계부채 뇌관이 터지면…. 한국경제는 또 다른 위기를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 @ksg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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