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창업가의 엇갈린 운명

여기 ‘샐러리맨 신화’를 쓴 두 사람이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다. 이들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로 올랐다는 점 말고도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웠다는 점이 닮았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샐러리맨 신화는 몰락하지만 전통적인 재벌가문은 굳건하다는 점이다.

▲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었던 강덕수(왼쪽) STX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몰락했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인 1971년. ‘맨발의 윤석금’의 역사가 시작됐다. 사전으로 유명한 웅진 브리태니커사에 입사하면서다. 영업사원이었던 그에겐 특별한 영업비법이 있었는데, 물건을 팔기 전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윤 회장의 접근법은 시장에서 통했다. 입사 1년 만에 전세계 54개국 세일즈맨 중에 최고 실적을 올린 것이었다. ‘영업의 신’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윤 회장이 독립을 선언한 것은 1980년이었다. 자본금 7000만원으로 도서출판 ‘해임’을 창업했다. 오늘날 웅진그룹의 전신이었다. 1983년 강 회장은 웅진출판으로 사명을 바꾸고 사업을 다각화했다. 1988년 웅진식품, 1989년 한국코웨이를 설립해 교육출판에서 생활환경가전으로 무대를 넓혔다. 이후 골프장(렉스필드 컨트리클럽)ㆍ저축은행(서울저축은행) 등 꾸준한 사업 다각화로 작은 출판사였던 웅진은 8개의 사업군, 15개의 계열사, 매출 6조원 대의 3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놀라운 성장세였다.

윤 회장의 활약은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웅진그룹의 주력사업이었던 코리아나 화장품을 매각해 정수기와 식품사업에 투자한 것이었다. 이후 웅진은 국내에 생소했던 비데를 출시해 화장실 문화를 바꿨고, 곡류와 과일을 이용한 음료로 식품사업에서 입지를 다졌다. 잇따른 성공으로 윤 회장의 경영능력이 조명받았다.

 
윤 회장의 행보가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건설업에 진출하면서였다. 2007년 8월 론스타로부터 극동건설을 인수한 게 화근이었다. 웅진은 당시 예상가보다 2배 이상 높은 6600여억원에 사들였다. 태양광 사업을 확대하겠다면서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도 세웠다.

문어발식 확장은 웅진그룹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2009년부터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섬유와 태양광 사업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었다. 재계는 중구난방식 사업 확장과 특정 대학 출신의 인재 등용이 그룹의 실패를 불렀다고 본다. 웅진그룹은 올 연말까지 채무를 상환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대기업 총수로

고개를 숙인 신화의 주인공은 또 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다. 그는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1975년 쌍용양회 승진발표문이 붙은 어느날, 한 젊은이가 선배와 동료의 축하를 받았다. 입사 2년 만에 부장(정보시스템부)에 오른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었다. 고졸(동대문상고) 사원으로 입사한 강 회장은 끈기와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파격적인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이런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부지런함과 사업 수완은 대한민국에서 ‘강덕수’를 따라올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강 회장은 주말이면 옷과 신발을 한가득 메고 지방에 내려가 팔았다. 일요일 늦은 오후 서울로 올라올 때면 물건 대신 돈을 잔뜩 쥐었다.

 
사업가로서 끊임없이 훈련을 이어갔던 강 회장은 입사 20년 만인 1993년 쌍용중공업 대표이사에 올랐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기업의 CEO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그만하면 성공한 것이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조선회사를 세우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절한 바람은 힘을 갖기 마련이다. 1997년 외환위기 바람을 타고 기회가 왔다. 쌍용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었던 강 회장은 꿈에 그리던 조선사업에 진출했다.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쌍용중공업(STX)을 인수하기 위해 서울 강남에 있던 집을 팔고 전세살이를 하면서 20억원을 마련했다. 강 회장은 자신이 근무하던 기업의 오너이자 CEO가 됐다. 가세를 줄여 키운 회사는 나날이 번창했다.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의 사명을 STX로 바꾸고 2001년 법정관리를 밟고 있던 대동조선(STX조선)과 2002년 산단에너지(STX에너지)를 인수했다. 2004년에는 STX보다 매출이 큰 범양상선(STX팬오션)까지 손에 쥐었다.

해외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2006년 중국 동북부 다롄大連의 창싱다오長興島에 15억 달러(약 1조6248억원)를 투자해 조선소를 짓기로 결정했고, 2008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유럽 아커야즈(STX유럽)를 인수했다. 그에게 2008년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한해가 될 듯했다.

실제로 그랬다. STX그룹은 출범 6년 만에 재계 20위권에 진입했고, 2009년에는 재계 순위 12위까지 올랐다. 공격적인 M&A가 한몫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이 부실한 것도 아니었다. STX의 연매출은 5조원에 달했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였다. 불황으로 조선과 해운업계가 꽁꽁 얼어붙었고, STX조선해양과 STX팬오션 등의 매출이 급감했다. 채무를 갚을 길이 막히면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됐다. 무리한 M&A가 독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 6대 재벌가(범삼성·범현대·범LG·SK·롯데·범효성)의 자산 총액은 2007년 말 525조원에서 지난해 말 1054조원으로 2배(100.8%) 넘게 증가했다.
윤석금 회장과 강덕수 회장은 평범한 대기업 총수가 아니었다. 두사람은 대한민국 월급쟁이에게 희망과 같은 상징이었다. ‘열심히 하면 나도 가능하다’는 꿈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세대 오너 기업인의 잇따른 퇴장으로 대한민국 샐러리맨 신화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단순히 ‘신화’가 무너져서만은 아니다. 세일즈맨 신화는 몰락하는 반면 전통적인 재벌가의 뿌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9월 12일 기업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분석한 자료에 다르면 6대 재벌가의 자산 총액은 525조원(2007년 말)에서 1054조원(지난해 말)로 2배(100.8%) 넘게 불어났다. 이 조사는 CEO스코어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출자총액제한(출종제) 일반기업집단 내 6대 재벌가의 자산 총액 비중을 분석한 것이다. 6대 재벌가 가운데 자산총액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은 범삼성가였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이 358조원이다. 2007년 19.1%에서 3.9%포인트나 뛰었다.

범현대가의 자산은 273조원으로 17.5% 비중을 기록했다. 2007년 15.2%에서 2.3%포인트 끌어 올렸다.

리스크 관리가 기업 앞날 좌우

LGㆍGSㆍLS로 분화된 범LG가는 178조원으로 단일 그룹인 SK(141조원)를 제쳤다. 지난해 말 출총제 내 비중은 11.1%(2007년 말)에서 11.4%(지난해 말)로 소폭 상승했다.

반면 6대 재벌가를 제외한 나머지 출총제 기업집단의 자산증가율은 40.7%로 6대 재벌가의 절반에도 크게 못 미쳤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지난 5년간 중도 탈락한 그룹들은 하나같이 리스크 관리와 지속가능경영 체제 구축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고 변화와 혁신을 즐기는 것은 CEO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그 대표적인 CEO가 윤석금 회장과 강덕수 회장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때론 리스크를 부르기도 한다. 리스크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치명적이어서 안정장치가 없으면 고꾸라지고 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웅진그룹과 STX그룹이다.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하면 신화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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