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건설사 수장의 이상한 퇴진

여기 두 건설사 수장이 있다. 실적악화를 책임지겠다며 CEO 자리를 내놓고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쿨하게 책임지고 새로운 인물에게 배턴을 넘기겠다는 제스처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허창수 GS건설 사장과 최창원 SK건설 전 부회장의 얘기다.

▲ 허명수(왼쪽) GS건설 사장은 6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최창원 SK건설 부회장은 9월 부회장직을 사퇴했다.
같은 길을 가는 두 명의 오너 일가 경영인이 있다. 허명수 GS건설 사장과 최창원 SK건설 전 부회장이다. 허 사장은 6월 12일 대표이사(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창원 전 부회장도 9월 11일 SK건설 부회장직을 사퇴했다. 이사회 의장직도 함께 내놨다. 두 사람이 물러난 이유는 실적악화를 책임지기 위해서다. 회사 입장에선 분위기 쇄신을 위해 새 인물을 간판으로 세우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요약하면 ‘건설 불황→실적 악화→오너 일가 경영인 사퇴’로 정리할 수 있다.

허명수 사장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셋째 동생이다. GS건설 지분 3.62%를 보유한 3대 주주다. 2007년 GS건설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최고재무책임자(CFO), 경영지원본부장ㆍ사업총괄사장(COO) 등을 거친 ‘재무통’이다. 건설업 이해도도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허 사장의 발목을 잡았다.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건축ㆍ주택시장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GS건설은 올 상반기 69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2010년 이후 영업이익이 5940억원, 4310억원(2011), 1630억원(2012) 등으로 계속해서 줄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며 해외시장을 노린 허 사장의 전략은 GS건설에 더 큰 위기를 안겼다.

건설업계 한 전문가는 “GS건설은 2 008년 이후 국내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해외로 적극 진출했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며 말을 이었다. “해외에서 챙긴 이익으로 국내시장이 살아날 때까지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는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침체 상황이고, 해외부문에서는 부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칠 수가 없게 됐다. 이 때문에 허명수 사장이 대표이사에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허 사장은 ‘사원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회사가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판단, 사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허 사장은 여전히 사장 직함을 사용한다. 대외활동이 그의 역할이다. 등기이사도 유지하며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허명수, 대표 물러났지만 사장직은 유지

 
GS건설 관계자는 “회사 경영은 임병용 GS건설 신임 사장이 챙기고, 허명수 사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지만 임 사장과 함께 의논하며 뒤에서 밀어주는 형태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허명수 사장은 GS건설의 대외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허 사장은 9월 초 GS건설 사장이자 한국건설경영협회 회장 자격으로 박근혜 대통령 베트남 방문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했다.

이 때문에 한편에선 책임회피용으로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겉으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역할에는 크게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새롭게 대표이사에 오른 전문경영인이 허 사장이 벌여놓은 사업을 정리하고, 실적을 끌어올리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맥락에서 SK건설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최창원 전 부회장의 행보 역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 전 부회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최 회장이 통신ㆍ에너지를 비롯해 SK그룹 전반을 진두지휘했다면 최 전 부회장은 SK케미칼ㆍSK가스ㆍSK건설 3사를 전담했다. 계열분리 꿈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K케미칼을 지주사로 하고, 그 아래에 SK건설과 SK가스를 두는 게 유력한 시나리오였다. 최 전 부회장은 SK케미칼의 지분 10.1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SK건설은 9.6%, SK가스는 6.12%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꿈은 한낱 공염불에 그칠 위기에 몰렸다. 3사 중 한곳인 SK건설의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최 전 부회장의 입지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SK건설은 2008년부터 해외사업에 집중했지만 실적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SK건설의 영업이익은 2010년 2385억원, 2011년 1069억원, 2012년 999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는 플랜트와 주택 부문의 부진으로 26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SK건설의 경영은 최 전 부회장이 아니라 SK그룹 측으로 넘어갔다. 그룹 측 인사인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SK건설 이사회 의장에 오를 예정이다. SK건설 관계자는 “SK건설이 변하기 위해선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며 “지금껏 최창원 전 부회장이 SK건설의 경영을 맡았는데, 이제는 그룹이 맡아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최 전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SK건설 지분 5.6%(약 564억원)도 SK건설 법인에 무상증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최 전 부회장의 지분은 4%로 줄어든다.

최창원, SK케미칼ㆍSK가스 경영

이렇게 SK건설의 경영일선에선 완전히 물러났지만 최 전 부회장은 여전히 SK케미칼(부회장), SK가스(대표)의 경영을 맡고 있다. 최 전 부회장이 추진하던 계열분리 작업 역시 당분간 브레이크는 걸리겠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추진될 수 있다. 이 때문에 SK건설 지분 5.6%를 무상증여하겠다는 것도 ‘컴백’을 위한 밑밥 깔기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SK건설 후폭풍이 SK케미칼과 SK가스로 이어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허명수 사장과 최창원 전 부회장의 예에서 보듯 오너 일가 경영인은 큰 위기가 닥쳐도 솟아날 구멍이 많다. 실적이 악화되면 책임을 지는 척하면서 살짝 빠지면 그만이라서다. 어차피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과 ‘가문’이 있기 때문에 별 부담도 없다. 오너 일가 CEO가 전문경영인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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