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라운드 실전에서 새로운 도전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레밍’의 도전보다 공자말씀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따라야 한다. ‘되든 안 되든 해보자’는 게 아니라 ‘내 기량으로 틀림없이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해야한다.

축구는 11명, 야구는 9명, 농구는 5명이 경기를 한다. 다른 면에서 보면 위 모든 종목은 한 명이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헤드코치의 손가락 하나에 모든 선수가 한 명처럼 움직인다. 평소훈련에서 익힌 몇 가지의 작전을 선수들이 기억하고 경기 중에 수시로 헤드코치의 손가락이 몇 개인가를 보고 그대로 실천한다.

골프는 자신이 심판일 뿐만 아니라 선수요, 헤드코치다. 파 5 쇼트 홀(길이가 짧은 홀. ‘서비스 홀’이라고도 표현한다). 드라이버가 퍼펙트로 맞았다. 남은 거리는 불과 200야드. 그러나 그린 앞에 벙커가 에워싸고 있다. 곧바로 그린 위에 올리면 이글, 버디가 가능하다.

보기플레이어 정도면 주말 라운드에 이 같은 결정적인 버디 찬스를 한두 번 쯤 맞게 된다. 이때 골퍼는 선수가 아닌 헤드코치로서 결정을 내리게 된다. 프로수준의 장타자라면 아이언으로 깎아 쳐 그린에 세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주말골퍼는 아무래도 몽둥이를 잡아야 겨우 그린에 올릴 수 있고, 그나마 높이 떠서 구르는 거리가 최소화해주길 바라야 한다.

▲ 골프는 자신을 추스르고 ‘착실하게, 내 수준대로’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실건가. 만약 “몽둥이를 잡겠다”고 한다면 이 글을 읽지 않는 게 좋다. 화이트 칼라라면 기업조직 전문 컨설턴트 데이비드 허친스의 ‘레밍 딜레마’를 읽었을 것이다. 적지 않은 기업이 조직학습을 위한 교재로 채택하고 있는 우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서식하는 나그네쥐(레밍)는 개체수가 불어나면 집단으로 호수나 강에 뛰어들어 빠져 죽는다. 앞의 쥐를 따라가다 보니 수백 수천마리로 불어나고, ‘레밍 점프 대축제’의 현장인 호수가 있는 절벽까지 다다르게 된다. 선두가 뛰어내리니 나도 뛰어내린다.

모든 생물은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레밍의 이 희한한 현상을 허친스는 우화해 기업조직에 대입시켰다. 축제 무리 중 ‘에미’는 “우리는 왜 절벽에서 뛰어내리지?”란 의문을 갖는다. 에미는 뛰어내려 죽는 것을 거부하고 새총의 총알처럼 몸을 퉁겨 절벽을 건너뛴다. 이 우화에서 허친스는 ‘남들이 한다고 무조건 뒤따라 갈 게 아니라 에미처럼 되라’고 제시한다.

이 시대 대부분의 기업은 에미 같은 화이트 칼라를 요구하고 있다. 더 스쿠프의 편집위원인 구자홍 위원(전 동양그룹 부회장)의 화제작 ‘일단 저질러 봐’도 에미 같은 신조로 성공한 당신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골프에서만은 에미가 되려 한다면 다른 레밍보다 더욱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 ‘레밍 딜레마’의 에미는 성공한 예가 전혀 없는 도전을 하여 성공했지만, 골프는 성공확률이 50%가 넘더라도 접어야한다. ‘되든 안 되든 해보자’는 게 아니라 ‘내 기량으로는 틀림없이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골프 라운드에서 기쁨과 분노는 내 마음 안에 있다. 처음부터 더블, 트리플 보기로 마구 무너졌을 때 “에라~ 기왕 망친 라운드, 맘대로 해보자!”는 것보다, 자신을 추스르고 착실한 플레이로 후반 어느 홀에서 나이스 버디를 낚는다면 그동안의 쌓였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골프다.

축구나 농구도 상황마다 최고 수준의 나이스 플레이가 요구되는 작전을 지시하는 헤드코치가 있다면 아마 그는 얼마 못가 구단으로부터 잘려나갈 것이다. 자신이 헤드코치인 골퍼 역시 스스로에게 무리한 플레이를 하도록 판정을 내린다는 것은 자멸이다.

주말 라운드에서 나이스 샷은 한두 번으로 족하며, 그 한두 번만으로도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차라리 에미보다는 공자 말씀 ‘온고지신溫故知新’이 골프에선 더 어울린다. 옛것을 익히고 미루어 보면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상대방이 나이스 샷을 했다고 나도 나이스 샷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보다는 평소 내 수준대로 플레이를 하다가 “한때 무너지기도 했지만 오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가 스스로 내려졌다면 당신은 공자 말씀을 실천한 경지에 다다른 수준이다.
이병진 발행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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