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없는 국감, 이번엔 다를까

재벌총수와 국정감사는 별 상관관계가 없었다. 국감 기간만 되면 대부분의 총수가 해외로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국감기간=총수 해외출장’이라는 등식이 성립됐을까. 하지만 올해는 이 등식이 깨질 것 같다. 정치권이 국감을 우습게 보는 총수를 잔뜩 벼르고 있어서다.

▲ 올해 국감에서 기업과 관련된 주요 쟁점은 ‘사기성 CP발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순위 50위(공정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기준) 안에 드는 오너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적은 별로 없다. 하나같이 업무상 출장을 핑계로 국회의 부름에 불응했다. 대신 전문경영인을 ‘국감 의자’에 앉혔다. 재계에서 ‘국감 기간엔 오너 해외 출장’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지 오래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오너 일가(16명) 중 국감에 출석한 이는 단 4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국감에 불출석하고, 해당 법률(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따라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경제민주화’를 부르짖던 지난해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유통업계 오너들(신동빈 롯데그룹 회장ㆍ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ㆍ정지선 현대그룹 회장)은 출장 등 회사 업무를 이유로 국감을 빠져나가려다 벌금을 냈고,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를 듯하다. 정치권이 재벌그룹 총수를 국감에 부르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갑작스런 해외 출장은 증인 불출석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구속되는 등 사법부의 ‘신상필벌’ 수사가 강해진 것도 국감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올해 국감에서 주요 쟁점은 사기성 기업어음(CP)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9월 ‘사기성 CP’를 발행한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현 회장은 그룹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CP를 발행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지난해 국감에서 기업과 관련된 주요 쟁점이 유통그룹의 골목상권 침해였다면 이번에는 사기성 CP 발행 논란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역시 ‘총수 불참 사태’가 재연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의 또 다른 인사는 “오너를 국감에 불러도 나오질 않으니 국감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다”며 “차라리 실무를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을 증인으로 채택해 관련 문제를 따지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번 국감 증인 중 일반인(기업인) 출석과 관련 그룹 총수보다는 전문경영인에 초점을 맞췄다.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을 국회로 불러 각각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와 ‘재계의 화학물질 관리 실태’를 따져 해결 방안을 촉구할 예정이었지만 여당과 갈등을 빚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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