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간이 정말」

▲ 성석제 저|문학동네
평범한 것에 집중하는 이야기

말이라는 게 참으로 묘하다. 같은 상황이라도 전하는 이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이야기라는 것도 희한해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해도 누군가는 수긍을 하고, 반문을 한다.

글도 그렇다. 한 장면의 묘사만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오만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말을 이야기로, 이야기를 글로, 글을 말로 자유자재로 쓰는 이야기꾼이 있다면, 작가 성석제일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가 5년 만에 소설집을 펴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한 단편 8편을 모았다. 성석제는 “이 책에 묶인 소설들은 격렬한 기후 변화와 세계화의 와중에 쓰였다”고 고백했다. ‘속도’가 중요해지고, 그것이 가지고 오는 ‘변화’에만 관심을 두는 오늘이 작품의 시점이고, 기후가 쉽게 훅훅 바뀌는 요즘이 작품의 배경인 것이다. 이렇게 울퉁불퉁해진 세상에서 소설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사소하고 평범한 것’을 주목한다. 여기에 집중하는 그의 능청스러운 입담은 무척 반갑다.

표제작 「이 인간이 정말」엔 백수가 나온다. 엄마의 주선으로 맞선 자리에 나온 그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말을 쏟아낸다. 주로 인터넷에서 습득한 잡다하고 불편한 정보다. 결국 여자는 질린 얼굴로 맞선을 끝내버린다.

‘론도’는 단순 접촉사고에서 시작된 차와 보험에 얽힌 사건이 이어진다. 입장에 따라 화자의 행동이 변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홀린 영혼’은 허풍과 거짓으로 일관된 삶을 산 ‘이주선’이라는 친구의 삶을 친구인 화자의 시선으로 쫓는다. ‘해설자’는 한 시골 외진 곳에 자리한 열녀각에서 문화재 해설을 하는 ‘김문일’의 이야기를 통해 블랙홀 같은 허구와 관계에 기생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 속 작품은 이런 식이다. 사건이 있지만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사소하고 미미하다. 그런데 지극히 평범해서 오히려 인간의 맛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렇다. 삶을 가리고 드러내는 건 무슨 거대한 폭풍이나 파도가 아닐지 모른다. 잔물결의 끊임없는 일렁임일 수도 있다. 일상을 파고드는 잔잔한 중력. 성석제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이다.

북 에디터 한마디
성석제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번쯤 생각했던 것을 교묘하게 파악한 이야기라서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크게 다치지 않은 교통사고. 상대의 실수가 분명하다면 ‘돈 안 들이고 차를 고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 말이다. 인터넷으로 우연히 본 한줄 정보를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떠들어댄 경험 말이다. 이런 것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무심코 지나쳐온 그 순간을 포착한 성석제의 이야기를 통해 웃고 안타까워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 인간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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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최인호 저 | 여백
가톨릭 신자인 소설가 최인호가 기록한 불가의 가르침. 구한말 선승들의 흔적을 찾아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그 흔적을 이야기로 형상화했다. 「길 없는 길」에서 경허와 세 수법제자의 이야기만 따로 뽑아 재구성해 세상에 내놓은 작품 속의 작품인 셈이다. 책 말미엔 부록ㆍ경허ㆍ수월ㆍ혜월ㆍ만공의 흔적을 다큐 형식으로 사진으로 담아 선승을 입체적으로 소개했다. 조선 말기 국운이 쓰러져가던 시대에 때로는 사자후와 같은 일갈로, 때로는 오묘한 이치를 담은 설법으로, 때론 경악할 경지의 파행과 기행으로 세속의 부조리를 꾸짖던 경허 선사를 통해 우리나라 근대 불교를 엿볼 수 있다. 종교ㆍ역사ㆍ사람에 대한 최인호의 탐구력이 잘 담겼다. 지리멸렬한 삶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강용자 저 | 지식공작소
일본의 황족 여성 나시모토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가 태어난 해는 1901년. 20세기가 시작하는 해였다. 마사코가 16세이던 1916년 8월 3일.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만난 적도 없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세번째 왕자 영친왕 이은과 자신이 약혼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난 것이다. 정략결혼을 위한 약혼이었다. 일본은 ‘내선일체론’을 내세우며 일본인과 조선인의 동화同化를 추진했고, 이 약혼은 그 본보기였다. 이 책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한국이름 이방자)의 회고록이다. 강용자 경향신문 편집위원이 1985년 5월 14일부터 10월 24일까지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일본인이자 한국인으로, 황족이자 평민으로, 아내이자 어머니로,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황태자비로 살아온 마사코의 삶을 진솔하게 담았다.

 

 

「국정원을 말한다」
신경민 저 | 메디치미디어
야당 초선 국회의원인 신경민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에 맞서 당의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조사 특위 위원장으로서 겪은 270일의 기록을 책으로 담아다. 군사정권의 출범과 함께 신설된 국가정보원. 국정원은 지난 대선부터 현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국가정보수집기관을 넘어 무소불위로 국가 정치를 주도하는 중심으로 변질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은 5부로 구성돼 있다. ‘역삼동 오피스텔 댓글녀 사건’(1부), ‘권은희 과장의 양심발언과 이후 국정조사 합의까지의 숨 가쁜 정국 상황’(2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발언을 공개하고 나선 국정원의 역습’(3부),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49일간의 국정조사와 비화’(4부), ‘국정원을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돌리기 위한 개혁방안’(5부) 등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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