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매핑의 세계

지도에 정보를 넣으면 어떨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진 않을까. 누군가는 ‘가능한 일’을 말하라며 핀잔을 줄 게다. 하지만 이 사람은 세상을 바꾸는 지도 ‘매핑’을 모르는 이다. 한 장의 지도가 수천마디의 말을 한다. 어떤 기사, 어떤 정보보다 무섭다.

▲ 커뮤니티 매핑 ‘트리네이션’에 가입해 10유로만 내면 사막에 나무 한그루를 심을 수 있다. 심은 나무는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 1만원으로 사막에 나무 심기 트리네이션(tree-nation)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사막화 현상이 심각하다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서는 단돈 10유로만 내면 사막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준다. 재미있는 건 위성사진으로 내가 심은 나무가 어떻게 숲을 만드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핑크트럼펫이라는 나무는 한 그루에 5유로, 스페인 삼나무는 14유로다. 코끼리 귀 모양의 잎이 달리는 엔테르올로비움 시클로카품이라는 나무는 50그루 패키지에 385유로다. 성장 속도가 빨라서 금방 숲을 이룬다. 아들 이름으로 나무를 심을 수도 있고 친구에게 선물도 할 수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붙여둘 수도 있고 연인끼리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 삼을 수도 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단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사하라 이남 지역에 8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게 이들의 목표인데, 10월 11일 기준으로 10만6660명과 217개 기업이 참여해서 21만2274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사막이었던 곳이 몇 년 뒤에 숲이 돼 있는 걸 인공위성 지도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단돈 1만원이면 된다.

 
#2. 1000원으로 40명의 어린이 살리기 유니세프(Unicefㆍ국제연합아동기금)에서 하는 탭 프로젝트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는 어느 음식점을 가나 물이 공짜지만 외국에서는 병에 담긴 생수를 따로 시키는 경우가 많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수돗물을 따라다 준다. 물론 수돗물은 공짜다. 탭 프로젝트는 이 수돗물을 1달러를 내고 사먹고 그 1달러를 모아서 물이 부족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 쓰자는 프로젝트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거나 그나마 깨끗하든 더럽든 아예 물을 마실 수 없는 나라의 사람들이 90여개국에 11억명이나 된다. 날마다 5000명의 어린이들이 물과 관련된 질병 때문에 죽는다. 1년이면 180만명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수돗물 한잔을 1달러를 내고 사마시면 40명의 어린이를 살릴 수 있다. 공짜로 마시는 물 한 잔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하는 프로젝트다. 단돈 1000원의 가치가 이보다 더 클 수 있을까.

#3. 우리 동네 오염물질 배출원은? 스코어카드는 채점표라는 의미다. 이 사이트는 환경오염과 관련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오염물질 배출기업에 대한 정보를 준다. 간단히 우편번호만 집어넣으면 분석 결과를 보여준다. 이사 갈 동네의 오염 정도를 확인할 수도 있고 각각의 오염물질의 분포 추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지역별로 환경지표를 상대 비교할 수 있는 지도 서비스도 있다.

 
스코어카드는 오염물질의 제조와 판매, 유통과정 전반에 걸쳐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정부기관의 환경 관련 데이터도 모두 포함한다. 이들 데이터는 사이트 안에서 확인할 수 있고 모두 원본 링크가 제공된다. 이 사이트 안에는 이들 데이터를 분석한 10억개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자동으로 수정된다.

스코어카드는 특히 지역 환경운동단체들에 유용하다. 이들은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업들과 맞서 싸울 수 있다. 각각의 오염물질의 배출 정도를 감시하면서 해당 기업에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4. 우리 동네 범죄 지도 만들어 볼까 시카고 크라임이라는 사이트에서는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그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 사건의 목록을 살펴볼 수 있다. 사건을 클릭하면 구글 지도에 정확한 위치가 표시된다. 날짜별로, 시간대별로, 지역별로, 범죄 유형별로 검색을 할 수 있다. 시카고 크라임은 시카고 지역의 모든 범죄 목록을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하고 이를 누구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는 90일이 지나면 데이터가 사라지지만 시카고 크라임은 데이터를 계속 축적한다.

집단지성 시대 열려

이 사이트를 만든 사람은 언론인 출신의 애드리언 홀로버티. 이 사이트는 100% 기부로 운영된다. 시카고 크라임은 공공 데이터베이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다. 90일이 지나면 폐기되는 데이터지만 이를 모으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이터베이스가 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범죄를 예방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스크린 스크래핑 방식의 데이터 수집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저지주에 허리케인 샌디가 엄청난 피해를 남겼을 때다. 임완수 미국 메힐대 교수는 마침 고등학생들과 커뮤니티 매핑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휘발유와 가스를 구하지 못해 쩔쩔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 전체가 정전이 돼서 주유소를 가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임 교수는 학생들을 풀어 어디 가면 기름을 구할 수 있는지 확인해서 지도에 표시하도록 했다. 그리고 3~4시간 만에 도시 전체의 주유소 지도가 완성됐다. 어느 주유소에 가스가 남아있고, 어디는 전기만 들어오면 당장 가동할 수 있고, 어디는 가스가 끊겼고 어디는 다시 들어왔고 등등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반영됐다. 어느 언론사도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고등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주변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편의 개선 커뮤니티 매핑 행사’에 참석한 모습.
정보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강한 결속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임 교수가 커뮤니티 매핑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2005년 공공 화장실 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는 공공 화장실이 많지 않다. 호텔이나 음식점은 고객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임 교수는 공공 화장실을 나타낸 지도가 있으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구글 맵스를 이용해 간단한 사이트를 만들어서 공개했다. 누구나 지도 위치를 업로드하고 설명을 추가하거나 평점을 매길 수 있다.

사이트 이름도 간단하다. 뉴욕 화장실(nyre stroom.com). 이 사이트에 가면 무려 453개의 화장실이 표시돼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간단히 이 주소만 집어넣어도 자기 주변에 있는 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이트가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임 교수는 사이트를 만들고 누구나 화장실 정보를 추가할 수 있도록 개방했을 뿐이다.

커뮤니티 매핑의 흥미로운 힘

남아프리카의 키베라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커뮤니티 매핑을 알려줬더니 주민들이 학교와 교회, 관공서, 병원 등의 위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신호등 고장이나 불법 쓰레기 투기, 시설물 고장 등을 커뮤니티 매핑 방식으로 신고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자동으로 위치가 입력된다.

미국 샌프랜시스코에서는 범죄발생 지도를 구축해 범죄 발생률을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도 있다. 커뮤니티 매핑은 별다른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구글 맵의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가 워낙 잘 돼 있기 때문에 여기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위치 정보와 설명을 붙이면 된다.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련의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아이디어는 잘 정리된 데이터베이스와 시각화한 정보,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행동을 끌어내고 변화를 추동한다는 사실이다. 한 장의 사진이 수많은 기사보다 더 정확히 현실을 웅변할 때가 있다. 잘 계획된 지도와 집적된 정보도 있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공유와 개방, 집단지성과 참여다.
이정환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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