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재정준칙 도입 가능할까

▲ 국가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페이고가 주목받고 있다. 안정적인 도입을 위한 연구와 검토가 시급하다.(사진=뉴시스)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다양한 재정건전성 확보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페이고 원칙’이다. 제도 자체의 효용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이 원칙을 제대로 쓸 수 있느냐인데, 아쉽게도 한국에선 도입하기 어려울 거라는 비관론이 많다. 깜냥 안 되는 국회 탓이다.

재정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재정수입은 줄어들고 있지만 재정지출은 날로 증가해서다. 특히 지출 기준이 법률로 정해진 의무지출의 규모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2017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재정지출계획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6.9%에 달한다. 2015년에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의무지출의 비중이 늘어나면 그만큼 재량지출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재정 규모가 감소한다는 의미다.

이런 의무지출을 관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페이고(pay as you go) 원칙’이다. 이 원칙은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정부가 1990년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10월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부각됐다. ‘이만우 법안(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페이고 원칙의 내용은 이렇다.
 
“의무지출 또는 재정수입감소가 뒤따르는 법률안을 제출하려면 지출이 증가하는 만큼 다른 지출을 감소시키거나 재정수입을 증가시키기 위한 법률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만약 이만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법률로 발생하는 지출과 수입이 통제된다. 재원이 필요한 법안 역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페이고 원칙이 시행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제도적 문제점이 있다. 미국은 모든 예산을 법률로 결정하는 예산법률주의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률은 대략적인 대상과 내용만 정하고 하위의 법령에서 지출규모를 정한다. 법안 심의 단계에서 지출규모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안개정으로 의무지출 규모를 조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미국은 법안을 자유롭게 제출하고 예산안을 의결할 때 총량 차원에서 페이고 원칙을 적용한다. 하지만 ‘이만우 법안’은 법안을 제출할 때마다 페이고 원칙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제출에 제약이 따를 공산이 크다.

페이고 도입 선제조건 ‘국회의 능력’

제도적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국회가 페이고 원칙을 도입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다. 페이고 원칙이 운영되면 정부부처별로 찬성과 반대가 부딪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때 국회가 법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중재역할을 해야 한다.

법안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루한 협의과정을 거쳐 합의점을 찾는 게 국회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회는 연말만 되면 선심성 법안과 지역구 챙기기 법안을 쏟아낸다. 정치적 쟁점이 발생하면 협의보단 장외투쟁을 선택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법안은 날치기로 통과시켜 버린다. 이런 국회가 ‘페이고 원칙’을 준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건 무리가 아니다.

최승필 한국외대(법학) 교수는 “페이고 도입에 있어서 무엇보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 진정한 페이고의 의미를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고 원칙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미 검증된 제도로 참조할 만한 가치가 충분해 사용에 동의 한다”며 “하지만 합의가 요구되는 장치인 만큼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 @ksg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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