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저축은행 인수 허용 논란

▲ 금융당국이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했다. 하지만 파장이 크다.

금융당국이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했다. 부실저축은행을 인수할 금융회사가 나타나지 않자 대부업체에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저축은행을 대부업체가 인수하면 고리대금이 합법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대부업체들도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인수조건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9월 22일 ‘대부업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했다. 저축은행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이에 따라 대부업체는 예금보험공사 산하의 가교저축은행(부실 정리가 진행중인 저축은행) 매각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이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은 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대부업체의 고금리 정책과 불법 추심문제를 제도권 금융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대부업체 시장은 지난해까지 8조7000억 규모로 성장하면서 서민금융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대부업체를 금융기관으로 육성해 문제점을 해결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계산이다.

다른 이유는 더 이상 저축은행을 인수할 매수자가 없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여파로 예금보험공사가 관리하는 매각대상 저축은행은 예성ㆍ예주ㆍ예신ㆍ예나래ㆍ예스ㆍ해솔ㆍ한울저축은행 등 7개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와 증권사 등 기존 금융회사는 인수여력이 충분치 않다. 실제로 2011년 이후 매각된 저축은행 19개 중 18개를 금융지주회사와 증권사가 사들였지만 최근 매물로 나온 가교저축은행의 입찰에는 금융기관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 이유는 예보 산하 저축은행의 적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매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매각대상 저축은행 가운데 1곳인 해솔저축은행의 경우, 올해 6월말 기준 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연체율은 50%를 넘어섰다. 다른 6곳의 저축은행도 20억~136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부실률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부실저축은행을 정리하는 과정이 힘에 부치자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라며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 자체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지만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 허용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저축은행 활성화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주장과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저축은행을 대부업체가 인수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저축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국민의 혈세로 만든 것”이라며 “약탈적 대출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대부업체에 저축은행을 넘기는 것을 국민이 수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커지는 저축은행 인수 허용 논란

대부업체의 저축은행을 인수하면 더 큰 부실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영우 우리금융연구소 연구원은 “관리감독의 부재로 대부업체의 투명성이 결여돼 있는 상황에서 저축은행 인수할 경우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부업체는 펀드와 보험 등 금융상품 판매 전문성이 떨어져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조인숙 민생연대 실장은 “인식이 좋지 않은 대부업체는 저축은행 인수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할 수 있다”며 “저축은행 역시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마당에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면 대내외적으로 합법적인 고리대 영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저축은행 인수에 적극적이던 대부업체가 신중한 입장을 보고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승인‧감독 기준이 까다로워서다.
저축은행 업계의 분위기도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결정한 사안이라 반대한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하지만 대부업계에서 저축은행을 인수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식금융기관이 아닌 곳에서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겠지만 대부업계의 인수로 저축은행의 이미지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물론 찬성하는 입장도 있다. 대부업계의 신용심사시스템과 신용대출 부문의 영업력을 도입하면 저축은행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이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소득ㆍ저신용 고객의 대출을 꺼리는 동안 대부업체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저소득ㆍ저신용자 신용대출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대부업계가 29.5%로 저축행의 14.1%보다 두배 이상 높다. 하지만 연체율은 대부업체가 되레 낮다. 대부업체의 연체율은 9.4%에 불과하지만 저축은행은 15%에 달한다. 이는 저축은행의 경쟁력이 대부업체보다 약하다는 걸 잘 보여주는 통계다.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 허용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대부업체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저축은행 인수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제시한 승인ㆍ감독 기준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인수주체는 저축은행의 자본적정성(BIS비율) 요건과 향후 증자 수요를 감안해 자본력이 충분한 대부업체로 한정했다. 금융당국은 인수를 원하는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운영하고 내부통제를 할 수 있는지를 심사할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자기자본 1000억원 이상 에이앤피파이낸셜ㆍ산와대부ㆍ웰컴크레디라인ㆍ리드코프ㆍ동양파이낸셜 6개 대부업체와 자기자본 500억원 이상인 대부업체 10개 등만이 조건을 충족한다.

 
또한 신용등급별 신용대출 금리체계를 마련해 운용(연 20%대)하고 개인신용대출에 편중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중기대출을 포함한 여신포트폴리오를 적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현재 대부업체의 평균 가계신용대출 금리는 38.1%, 저축은행은 29.9%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금리를 10% 이상 낮춰야 한다는 얘기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 인수 가능성을 시큰둥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규제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을 인수한 대부업체의 경우 신규영업은 최소화하고 대부잔액을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저축은행이 대부업체의 자금조달 창구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축은행의 대부업체 대상 대출을 금지할 계획이다.

계열 대부업체에 채권을 매각해 추심하는 일이 없도록 저축은행의 대출채권을 계열 대부업체로 매각하는 것도 불허할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 고객을 대부업체로 알선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저축은행이 대부업의 영업수단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대부업체도 시큰둥 “규제 너무 많아”

대부업계 관계자는 “규제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저축은행을 인수해도 대부업체와 연계영업이 차단돼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 인수에 적극 나서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편에선 ‘신규대출 최소화’‘대부잔액 축소’가 결국 대부업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냐는 반응까지 보인다. 저축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인 대부업체가 이번 기준안 발표 이후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업체 관계자는 “금융위의 인수방향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법적 근거도 아직 마련되지 않아 상황을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정부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후에 저축은행 인수의 방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매물이 나오느냐에 따라 인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인수목적에 맞는 매물이 있다면 인수에 나서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리해서 인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 @ksg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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