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사망사고, 누가 책임지나

▲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가 터진지 3년째가 됐지만 책임지는 기업은 한곳도 없다. 사진은 올 7월 국회 환노위 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 공청회를 참관하는 피해 어린이. (사진=뉴시스)
3년 전 수많은 영유아와 임산부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평소 몸이 좋지 않았던 것도, 돌발사고가 발생했던 것도 아니었다. 가습기를 틀어놨을 뿐 특이한 건 없었다. 문제는 가습기에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영유아와 임산부의 폐부를 공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0월 15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국정감사 현장.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ㆍ판매해 100여명이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업체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사건의 당사자인 옥시, SK케미칼, 홈플러스 등 업체는 가습기 살균제에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들어 있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는 ‘동물실험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유해한 작용을 했다’는 질병관리본부의 결론을 반박하는 제스처였다. 특히 옥시가 문제였다. ‘소송책임도 없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동물실험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람을 상대로 독성실험을 하자는 것이냐”며 “보건당국이 공인한 과학자와 의학자에 의해 시행•검증한 조사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소송을 장기화화려는 시간끌기의 수법일 뿐”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도 “옥시가 한국 국민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한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의 책임을 밝힐 수 있는 ‘PHMG 함유량’을 공개하면서 제조업체를 압박했다. PHMG는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이다. 살균제나 부패방지제로 흔히 사용된다. 흡입하면 폐가 손상될 수 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동물흡입실험 최종결과, PHMG와 PGH(염화 에톡시에틸구아디닌) 2개 성분이 폐손상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성분인 CMIT(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와 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는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해당 성분 함유 제품에서 사망자가 발생해 유독물질로 지정됐다.

심 의원에 따르면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낳은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PHMG 함유량은 0.126~0.129%였다. 글로엔엠의 가습기 클린업은 0.673~0.704%,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는 0.127~0.133%, 홈클리닉 가습기메이트는 0.011~0.013%에 달했다. 심 의원은 “PHMG 함유량이 구체적으로 파악되면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이 어떤 기준에 의거해 PHMG를 넣었는지 밝혀야 할 의무가 생겼다”고 꼬집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지 올해로 3년째다. 사건이 터진 후 국정감사장에선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에 대한 책임추궁이 해마다 이뤄졌다. 하지만 해당 제조업체들은 정작 ‘무반응’이거나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책임을 피하려는 업체도 있다.

책임 회피하는 가습기 살균제 업체

이번 국감에서도 제조사들의 태도는 다르지 않았다. 증인으로 채택된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판매업체 가운데 국감에 모습을 드러낸 곳은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책임을 묻기 위해 증인으로 채택된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 샤시 쉐커라 파카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도 국감에 불출석했다. 특히 옥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국감을 외면했다.

‘증인채택→출석요구→불출석’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해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를 국감장에 불러들이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PHMG 성분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어서다. 일명 PL법이라 불리는 ‘제조물책임법(Product Liability Law)’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1차로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은 제조업체들이다. ‘가습기를 제조해 판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던 애경이 국정감사 증인명단에서 빠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경은 SK케미칼이 만든 가습기 살균제 완제품(가습기 메이트)을 제공받아 판매대행만 했다.

둘째 이유는 ‘거짓말’에 있다. 옥시는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에 PHMG 성분이 함유돼 있음에도 ‘안전하다’고 허위표시를 했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PHMG 성분의 유해성을 인지했음에도 모른 척했다. 심상정 의원이 올 7월 호주 정부기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PHMG를 생산한 SK케미칼은 2003년부터 이 원료의 유독성을 알고 있었다.

공정위의 심판례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SK케미칼이 제품의 주성분에 포함돼 있는 SKYBIO 1125(PHMG)를 유해물질로 분류하고, 이 제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흡연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는 내용을 작성해 옥시레킷벤키저 등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SK케미칼은 원료제공 업체고 옥시레킷벤커저는 제조업체다.

▲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제조사들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소비자에게 팔았다”고 주장했다.(사진=뉴시스)
이 내용은 기업들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의 유해성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 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제조사들은 ‘과학ㆍ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제조물책임법의 면책조항을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책임을 회피해 왔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문제의 가습기 제조업체들은 정부의 공식역학조사결과마저 부정하면서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하기는커녕 국정감사 참고인 소환에도 응하지 않는 등 일말의 책임감도 비치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 기업의 사회적 무책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들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정부가 직접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상정 의원은 “2011년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음에도 2년 넘도록 피해물질에 대한 호흡기 독성평가를 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허가과정 정비해야

3년 전 사건 직후 가습기 살균제 속에 독성흡입물질이 있을 것으로 의심한 질병관리본부는 동물실험을 실시해 폐손상 원인 물질이 PHMG와 PGH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여전히 이 물질들이 함유된 제품에 대한 독성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이 독성평가의 대상을 ‘완제품 형태의 공산품’으로 못 박았고 있어서다. PHMGㆍPGH는 공산품이 아닌 개별성분이기 때문에 독성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심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의 허가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결함 여부가 있는지 확인한 후 제품을 허가했어야 한다”며 “정부가 어떤 근거와 기준으로 제품허가를 내줬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품허가 과정만 까다로웠다면 애먼 소비자가 사망하는 사고는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정부도, 기업도 잘못했다. 
김은경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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