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빵집 ‘서울연인’을 아십니까?

서울역 공항철도로 이어지는 곳에는 매일 출퇴근 시간에 진풍경이 펼쳐진다. 던킨도너츠는 썰렁한데 바로 옆 작은 빵집은 불난 호떡집 같다. 심지어 이곳에서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이들 때문에 던킨도너츠 매장 앞이 가려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 공항철도 역사 안 지하철 빵집이 인기몰이 중이다. 국내 800개가 넘는 대형 프렌차이즈 던킨도너츠도 맥을 못 출 정도다.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러 가는 길. 에스컬레이터로 곧장 이어지는 곳에 고소한 빵 냄새가 진동한다. 약 9.9㎡(3평) 규모의 ‘서울연인 단팥빵’이라 작은 빵집이 냄새의 진원지다. 이 빵집은 민폐(?)도 상당하다. 빵을 사려는 손님의 줄이 옆 가게인 던킨도너츠쪽으로 길게 늘어서있기 때문이다. 언뜻 던킨도너츠 앞에 줄을 선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쯤 되면 정체가 궁금하다. 맛이 특별한 건지 아니면 값이 저렴해서인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별거 없어 보이는 호두통단팥빵 하나가 무려 1800원이다. 보통 제과점과 비교하면 2배 정도 비싸다. 야채빵 가격은 2500원으로 패스트푸드 햄버거 값과 비슷한 수준이다. 메뉴도 단출하다. 호두단팥빵·야채빵·고구마앙금빵 등 6가지뿐이다. 수십가지 메뉴로 무장한 던킨도너츠가 9.9㎡ 규모의 지하철 빵집에 완전히 밀린 것이다.

 
서울연인 단팥빵 서울역점은 올 5월 처음 오픈했다. 이제 6개월차로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만드는 족족 날개 돋친 듯 빵이 팔려 나간다. 제빵사의 손이 잠시도 쉴 틈 없는 이유다. 폭발적인 인기 때문이었을까. 8월에는 공항철도 홍대역점, 최근 10월 3일에는 공덕역점까지 차례로 오픈했다. 서울역 매장과 달리 새로 오픈한 홍대역점과 공덕역점은 모두 공항철도와 개찰구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야만 빵을 살 수 있다. 지하철을 타는 이들에게만 구매 ‘특권’이 주어지는 셈이다. 그것도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이들에 한해서다. 가두점이 따로 없기 때문에 빵을 사먹기 위해 역무원에게 부탁해 개찰구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까지 등장한 이유다.
공덕점역은 오픈한 지 얼마 안됐는데 입소문이 퍼져 인기가 폭발적이다. 10월 14일 저녁 7시 50점에 방문한 공덕역점에는 단 한 개의 빵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곳 직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준비한 빵이 생각보다 빨리 떨어졌다”며 “보통 8시 30분 정도에 끝나는 데 오늘은 평소보다 빨리 팔렸다”고 말했다. 같은 날 공항철도를 타고 8시 5분쯤 도착한 홍대역점 사정도 별다르지 않았다. 총 6가지 메뉴 중 호두통단팥빵과 고구마앙금빵 두 가지만 남아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은빵도 기다렸단 듯 금세 팔려 나갔다. 25분여 만에 눈대중으로 100여개가 훨씬 넘어 보이던 빵이 모두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팔리는 걸까.

역무원에 부탁해 개찰구 통과하기도

홍대역점 직원에게 묻자 그는 “하루 3000개가 훨씬 넘는 빵을 만들어요. 세 매장 중에는 우리가 제일 잘 나가요.” 이곳 홍대역점의 겨우 하루 호두단팥빵을 100번 이상 구울 정도다.

 
박종열 공덕점 제과장은 “공덕역 매장은 하루 2000개 정도 굽는다”며 “서울역점의 경우 홍대역점과 공덕역점의 중간 정도 판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세 점포에서 하루 최소 7000개 이상의 빵을 굽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매장 모두 매주 일요일 쉰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 17만개가 넘는 빵이 팔린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가장 저렴한 호두단팥빵의 가격 1800원을 곱하면 월 3억원이 넘는 매출이 나온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것도 최소 가격을 곱했을 때 이야기다.

대체 비결이 뭘까. 첫째는 그날 만든 빵은 그날 소진한다. 당일 재고 소진을 원칙으로하는 것이다. 오전 7시에 오픈해 8시 30분에서 9시쯤 문을 닫는데 딱 팔만큼만 준비해 그날 모두 판다. 둘째 비결은 정직한 재료다.

보통 빵을 만들 때는 밀가루와 물 그리고 약간의 소금과 버터를 쓴다. 서울연인단팥방은 100% 유기농밀, 천일염, 식물성버터를 사용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별거 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비결은 따로 있다. 빵을 부풀리기 위해 이스트(효모) 대신 천연발효액종을 사용한다. 여기서 효모의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효모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야생 효모를 배양한 천연발효종과 빵에 적합한 균만 분리, 화학 물질을 사용해 배양한 이스트가 있다. 대부분 빵집이 이스트를 사용하는데 서울연인 단팥빵은 천연발효종을 사용한다. 천연발효종을 넣으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양이 많아 소화가 잘되고 촉감이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대부분 천연발효종을 사용하지 않는다. 발효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서다. 결정적인 이유는 비싼 가격이다. 시중가로 따지면 이스트와 천연발효종의 가격은 10배 정도 차이난다.

▲ 서울연인 단팥빵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신뢰다. 빵 반죽부터 굽는 과정을 모두 소비자가 볼 수 있다.
500g 기준 생이스트 가격은 3000원이 채 안되지만 천연발효종가격은 3만원 정도 한다. 냉동생지가 아닌 직접 반죽을 쳐서 빵을 만드는 데 거기에 10배 가까이 비싼 천연발효종을 사용해 빵을 부풀리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 들어가는 재료도 아낌없이 넣는다. 호두단팥빵의 경우 빵 속에 팥을 가득 넣어 빵이 씹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다. 한 블로거는 “이곳 단팥빵에는 팥이 95% 정도인 거 같다”며 “가격이 비싸다 싶었는데 왜 사람들이 줄 서는 지 먹어보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결은 또 있다. 오븐에 굽는 전 과정까지 소비자가 지켜볼 수 있게 했다. 서울역점의 경우 소비자와 오븐 사이가 1m가 채 될까 말까한 수준으로 빵 반죽과정부터 스팀기에 빵을 발효시키고 이를 오븐에 굽는 모습까지 모두 볼 수 있다. 전 과정은 3시간 정도 걸린다.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오픈 주방 콘셉트가 먹힌 셈이다.

이스트 대신 10배 비싼 천연발효액종

빵을 만드는 이들도 숨은 공신이다. 박종열 공덕점 제과장은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베이커리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베테랑이다. 박종열 제과장은 “나 말고도 여기 일하는 제빵사 대부분이 10~20년 경력을 갖고 있다”며 “대부분 경력자다 보니 빵맛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서울연인 단팥빵의 성공 비결은 진짜 ‘기본’에 충실해서다.

홍대역점 한 직원은 “빵값이 비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처음에는 마진이 남지 않아 사장님이 골머리를 앓았다”며 “처음부터 제대로 된 빵을 만들자고 시작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공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기본에 충실한 ‘맛’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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