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인사의 이상한 두 시각

▲ 낙하산 인사문제는 낙하산의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일어난다.(사진=뉴시스)
집권세력은 이렇게 주장한다.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국정철학 공유다.” 이들이 정권을 잃었을 땐 이렇게 꼬집었다. “국정철학 공유는 포장일 뿐이고 낙하산 인사다.” 집권 여부에 따라 입장을 능수능란하게 바꾸는 데 낙하산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결국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18대 대선이 끝난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인으로서의 첫 일정은 ‘자원봉사활동’이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이는 국민에게도 큰 부담이 되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권 막바지에 자행된 MB정부의 낙하산 인사 행태를 꼬집은 것이었다.

많은 국민은 박 대통령의 말에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이 말은 립서비스일 뿐이었다. 정부 출범 후인 올 3월 11일 박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이런 주문을 넣었다. “모든 공무원이 국정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정부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해 달라.” ‘낙하산 인사’라는 용어가 ‘국정철학 공유인사’로 포장됐을 뿐 그 의미는 다르지 않았다. ‘내 사람을 심어라’는 영令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그럴싸한 ‘포장’까지 걷어내 버렸다. 여당이 청와대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 달라’고 대놓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10월 14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당청 만찬회동에서 “박근혜 정부를 수립하는데 열심히 뛰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도 같은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주요 인사는 국정 철학을 이해하고 대선에서 힘을 합쳐 집권을 위해 함께 노력한 분으로 임명하는 게 당연하다”며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전문성을 갖춘 분이라면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는 ‘국정철학을 이해하는 사람’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등용해 달라는 것이지만 실은 논공행상을 요구한 셈이다.

 
사실 낙하산 인사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야권도 집권세력일 땐 낙하산을 수시로 내려 보냈다. 정치인들 스스로 낙하산 인사방지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지키지 않았다. 입장만 바뀌면 ‘낙하산 인사’만큼 좋은 제도도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집권당에서 국정운영을 이끌어 나갈 때 공공기관에서 정책의 목적이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속도감 있게 정책을 실천해 주기를 바란다. 머리로 생각만 하고 손발이 안 따라주면 당연히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06년 12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참여정부의 코드인사를 막겠다며 만든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이 무용지물로 전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국정철학공유’라고 포장하면 그만이라서다.

채원호 가톨릭대(행정학) 교수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공직에 ‘내 사람’을 일부 채우는 건 어느 정도 필요하다”며 “문제는 전리품을 챙기듯 국정철학과 전혀 무관한 공공기관에까지 낙하산 인사를 투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T의 낙하산 인사 폐해

실제로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심각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수많은 낙하산 인사로 지적을 받은 KT의 사례를 보자. 최민희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석채 KT 회장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직원수가 10%(약 3000명)가량 줄어드는 동안 임원수는 150%(현재 133명) 늘었다. 이런 낙하산 임원은 총 36명, 평균연봉은 7000만원이었다. 이 중엔 10억원의 연봉을 받는 임원도 있었다. 보은인사 때문에 애먼 직원들만 해고됐다는 얘기다.

 
최 의원은 “김영삼 정부 때 북풍사건을 주도한 안기부 출신 인사들이 LTE시대에 KT에서 뭘 하면서 억대연봉을 받아가는지 모르겠다”며 “KT에서 평사원이 임원이 되려면 최소 20년 이상 근무해야 하는데, 통신은커녕 인터넷도 잘 모르는 낙하산 인사들은 억대 연봉에 대형차에 기사와 비서까지 제공받으니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낙하산 인사를 막으려면 대통령부터 바로 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석 성균관대(행정학) 교수는 “낙하산 인사가 옳다 그르다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전문성과 같은 자격요건과 관계없이 공공기관 개혁을 위해서라도 낙하산 인사는 완전히 근절돼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공공기관장 인사는 법으로 규정된 절차와 기준에 의해 정치적 고려 없이 이뤄지지 않으면 전문성의 유무와 관계 없이 낙하산 인사로 규정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절차에 따라 임용하려는 정치적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운영법 30조 개정안이 통과돼도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거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공공기관장이 될 인물의 전문자격요건을 강화하고, 임원 후보자의 추천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채원호 교수도 “제도를 준수하려는 정치인의 노력이 중요하다”며 “지금껏 정치인들이 제 식구 챙기기를 위해 제도를 무력화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기가 보장된 자리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야 할 자리에도 외압을 행사해 낙하산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 교수는 또 “보은 인사는 금전적 거래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언론이나 시민사회에 의한 감시와 비판은 물론 공공기관을 통한 부정한 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일명 김영란법ㆍ2013년 8월 국회제출)’ 같은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집권자의 의지만큼 시스템 개선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도 역량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창원 한성대(행정학) 교수는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돌리는 건 문제가 있다”며 “그것보다 중요한 건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경영평가를 어떻게 하느냐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평가제도부터 바꿔야

▲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철학 공유 인사’를 강조한 건 결국 낙하산 인사를 하겠단 얘기다.(사진=뉴시스)
이 교수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낙하산 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엿볼 수 있어서다. “공기업 혹은 공공기관에 정치권력을 가진 기관장이 부임하면 정부와 소통이 원활해진다. 바람막이 역할도 잘 해낸다. 힘이 있으니 좋은 실적을 내는 건 당연하다.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예산도 많이 확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노조가 처음엔 출근저지투쟁을 하지만 나중엔 그 기관장에 붙는 것이다. 그렇게 뭔가 바라는 이들이 있으니 낙하산 인사 문화를 없애려 해도 잘 없어지지 않는 거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기관장과 공공기관 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력만 있으면 전문성이 전혀 없어도 실적을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기관장과 공공기관이 설립 목적에 맞는 사업을 했느냐,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사업을 얼마나 뿌리쳤는가 등으로 평가하는 게 옳다”며 “그러면 누가 함부로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낙하산 인사문제를 ‘시스템’으로 바로잡자는 것이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