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에 숨은 경영권 욕심

국내 제약회사들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사업 효율성 제고지만 오너 일가의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강화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그러나 ‘지주사 전환 바람’에서 자유로운 제약업체도 있다. 유한양행이다. 오너가 없어 경영권 강화를 위해 꼼수를 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제약업계에 ‘지주사’ 바람이 불고 있지만 유한양행은 예외다.

제약업계에 ‘지주사’ 바람이 불고 있다. 종근당은 11월 2일 지주사 ‘종근당홀딩스’와 사업자회사 ‘종근당’으로 분할한다. 올 3월에는 동아제약이, 10월에는 일동제약이 지주사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녹십자ㆍ한미약품ㆍ대웅제약ㆍ동아제약ㆍJW중외제약 등 국내 10대 제약회사 중 7곳이 지주사 체제를 갖추게 된다.

시작은 ‘녹십자’였다. 녹십자는 2001년 지주사 ‘녹십자홀딩스’와 사업사 ‘녹십자’로 분할하고, 헬스케어와 제약 부분으로 사업을 나눴다. 이후 대웅제약(2002)ㆍJW중외제약(2007)ㆍ한미약품(2010)이 지주사로 전환했다.

제약업체들이 지주사 체제를 갖추는 이유는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 회사가 지주사와 사업 자회사 둘로 나눠지기 때문에 각각의 파트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주사는 신규투자, 인수합병(M&A) 등 신사업을 추진하고, 사업사는 제조ㆍ판매와 연구개발(R&D)을 맡는다. 투자와 생산이 분리되는 만큼 리스크 또한 분산할 수 있다. 동아제약의 사례를 보면,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가 R&D를 맡고, ‘동아ST’는 전문의약품 분야를, ‘동아제약’은 박카스를 포함한 일반의약품 사업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지주사 체제전환의 또 다른 이유는 대주주 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오너 2ㆍ3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회사를 분할하면 일반적으로 사업사 주가가 지주사보다 오른다. 이때 대주주는 기존에 보유한 사업사 주식을 지주사 주식으로 교환해 (지주사) 지분을 늘릴 수 있다.

김응현 신한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사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장과 효율성 추구”라면서도 “하지만 대주주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경영권 강화에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대웅제약은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이후 윤영환 회장 등 일가 지분이 13.2%에서 34.2%로 크게 늘어났다. JW중외제약은 이종호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이 지주사 전환 이후 46.6%까지 증가했다. 한미약품도 지주사 전환 이후 임성기 회장 등 오너 일가 지분이 26.63%에서 67.61%로 늘어났다. 종근당도 이장한 회장 등 일가 지분이 20.16%에서 40%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사업 효율성 높이고, 경영권 강화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상위권에 있는 제약업체 중 유한양행만은 지주사 전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오너가 없어서다.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유한재단(15.4%)이고, 유한학원이 2대 주주(7.57%)이다. 이 때문에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 유한재단은 유한양행 창립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남긴 유언에 따라 유한양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비영리단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오너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지주사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는 이 부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지주사 전환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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