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태 막을 수 있었다

▲ 최근 부실기업 기업어음과 관련된 투자자 피해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경영난에 몰린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발행이 쉬운 ‘기업어음(CP)’을 통해 위기를 돌파해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부실기업이 CP를 발행하는지 관리ㆍ감독하는 금융당국은 대체 무얼 했느냐는 것이다. 부실한 CP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큰 홍역을 치른 것이 엊그제인데 최근 재벌 계열사 부도와 CP(기업어음) 관련 투자자 피해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2011년 LIG, 2012년 웅진 그리고 2013년 동양사태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CP 관련 금융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CP시장은 2003년 카드사태의 영향으로 위축된 이후 2005년부터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특히 최근 5년여 동안 CP 잔액은 29조원에서 73조원으로 2.5배 늘어났고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는 27조원에서 79조원으로 2.9배 증가했다.

이는 2009년 2월부터 시행된 자본시장통합법의 영향이 크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발행자 요건ㆍ신용평가등급ㆍ만기 등의 CP 발행 규제가 대거 폐지됐기 때문이다. 또한 계열사 지원을 목적으로 계열회사가 발행한 증권 취득을 금지하는 신탁업감독규정도 폐지됐다. 어음법상 어음은 신속하고 원활한 영업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간편한 발행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른바 쪼개기 금지 등 유통과정은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동양증권은 2006년 금융감독원이 어음법 위반으로 CP 분할 판매를 금지하자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계열회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어음법상 유통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만든 상품이 바로 특정금전신탁이다. 증권에 부과되는 발행ㆍ공시의무는 CP 발행규제 폐지로 어음에 부과되는 유통규제는 신탁업 감독규정 폐지로 대폭 완화됐다. 

특정금전신탁을 통한 무차별적인 계열사 CP 발행과 편입에 날개를 달아 준 규제완화가 바로 2009년 자본시장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동양과 동양시멘트는 부동산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2008년부터 영업적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2008~2009년 200% 수준이던 부채비율이 최근 1200%까지 급증한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회사와 CP로 자금을 조달해 계열사 주식매입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룹 지배구조가 취약했던 현재현 회장은 2001년 이후 재무구조가 부실한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을 통해 각각 3336억원과 3091억원에 달하는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다.

다음은 주채무계열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채와 CP를 발행해 은행 차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회사채와 CP 발행을 통해 동양그룹은 2010년부터 주채무계열 규제에서 벗어나게 됐다. 신용공여는 2008년말 1조3889억원에서 법정관리 당시 신용공여는 4762억원으로 66%가 줄었지만 부채총액은 2조6000억원에서 지난해말 4조4000억원으로 69% 증가했다.

제도상의 허점 이용한 동양그룹

▲ 동양사태 발생 이후 기업어음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주채무계열 신용공여 산정 대상 금융회사는 은행ㆍ보험사ㆍ종금사ㆍ여신전문금융회사로 한정된다. 동양그룹은 계열사인 증권사와 대부업체를 통한 회사채와 CP의 발행으로 은행 여신을 갚으면서 규제에서 벗어났다. 주채무계열규제에 증권사와 대부업체가 포함되지 않은 제도상의 허점을 교활하게 이용한 것이다.

자금조달과 운영상 여신전문금융업과 대부업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게다가 규제는 대부업이 더 허술하다. 여신전문금융업은 ‘대주주 거래제한’ 규제를 받지만 대부업체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파이낸셜대부(이하 동양대부)는 2002년 동양카드 기업분할에 따라 할부 금융업으로 등록한 다음 2004년 할부 금융업 등록을 반납하고 대부업체로 등록 전환했다.

동양대부는 2011년 3월 1600억원을 들여 동양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지분율 26.2%를 차지해 2대 지주가 됐다. 동양의 1대 지주는 현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동양레저(34.8%)다. 동양레저의 최대주주는 현 회장(30%)과 아들 현승담 동양네트웍스 대표이사(20%)다. 이를 통해 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증권→동양대부→동양으로 이어지는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해 현재현→동양레저→동양을 통한 그룹의 지배구조를 강화한 것이다.

티와이머니는 2010년 9월 동양대부의 채권추심을 부문을 분사해 설립한 또 다른 대부업체다. 현 회장이 자본금 10억원 가운데 8억원을 출자해 8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동양과 동양대부가 각각 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티와이머니는 2월 동양네트웍스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23.7%를 취득 최대주주가 됐다. 동양네트웍스는 동양온라인 등 5개 신사업의 지주회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상 2개의 대부업체가 동양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노릇을 한 것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장은 동양처럼 금융계열사를 통해 시장성 자금을 조달하는 대기업이 4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언제든지 제2의 동양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제2의 동양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은산분리를 넘어 실질적인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을 금융지주회사와 일반금융지주회사 분리 체계로 전환해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거나 산업자본의 증권사 등 제2금융권에 대한 소유와 거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현재 은행과 저축은행에만 실시하고 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모든 금융회사에 도입해 금융계열사가 대주주의 사금고 역할을 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피해 규모 키운 금융당국의 부실 관리

두번째로 비대칭적인 규제공백을 해소해야 한다. 회사채와 CP 등 시장성차입을 통한 자금조달이나 늘어나는 금융환경 변화를 고려해 주채무계열 신용공여 산정 대상 금융회사에 증권사와 대부업체를 포함해야 한다. 또한 동일기능, 동일규제의 원칙에 따라 현재 무풍지대에 놓여 있는 대부업체의 규제와 감독을 여신전문금융업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

또한 독립적인 금융소비자원을 설립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 산업 발전에 치우친 나머지 투자자 보호는 뒷전에 밀려나 있다. 금융상품 사전허가제, 투자 위험성 분류 강화, 입증책임 금융회사 전환 등 금융소비자 보호 제도가 조속히 실행됐다면 동양 사태와 같은 대규모의 소비자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실 규제와 감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금감원은 2008년 11월 동양증권 종합검사를 통해 신탁자금으로 계열사 지원 목적의 계열사 발행 CP 취득 문제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감원의 금융투자업 개정을 건의한 것은 4년이 지나서다.

금융위는 본래 올해초 개정이 완료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4월 말이 돼서야 규정 개정을 완료했다. 게다가 3개월의 유예기간을 6개월로 연장해 피해자 규모를 더욱 확대했다.
여경훈 새사연 연구원 norec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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