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가중시키는 증권사 보고서의 세계

▲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야하는 증권사 보고서가 오히려 투자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3분기 실적발표와 함께 국내 증권사의 수많은 보고서가 쏟아졌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하는 보고서가 투자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투자의견과 목표주가가 발표하는 보고서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자에게 있어 증권사에 발표하는 보고서는 투자의 향방을 정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다. 애널리스트라 불리는 증권 전문가가 기업의 실적 전망과 주가 관련 정보, 재무자료 등을 분석해 작성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자세한 사정을 알기 어려운 투자자는 증권사가 발표하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투자종목을 선정하고 투자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증권사 보고서를 100%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 투자자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별게 아니다. 실제보다 기업의 상황을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고 전망이 좋지 못한 종목에 대해서 부정적인 투자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증권사 보고서의 이러한 문제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기업 관계자와 해당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증권사는 주식거래를 통한 수수료로 운영된다. 결국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쉽게 내지 못하게 됐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도 ‘중립’ 의견을 내거나 저가매수의 기회라며 ‘매수’ 의견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예전부터 증권사에 전해 오는 속설이 있다”며 “내일 전쟁이 나거나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주식이 오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증권맨의 운명이다”고 말했다. 주식 거래를 통한 수익을 올리기 위해 투자자보다는 증권사와 발행기업 이익을 중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증권사 보고서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투자를 유치하고 거래를 활성화하는 것만큼 고객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도 증권사의 의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자성의 목소리는 아직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다.

코스피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10월 18일 2년만에 2050선을 돌파하며 장을 마감했다. 지난 31일에는 2060선을 돌파하며 연중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삼성전자의 실적발표를 시작으로 국내 주요기업이 3분기 어닝시즌(실적발표 시기)에 돌입했다. 실적발표 시기는 증권가 보고서가 가장 많이 나오는 기간 중 하나다. 실적에 따라 어닝서프라이즈나 어닝쇼크가 일어날 경우 주가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어닝시즌이 시작된 지난 10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국내 증권사가 발표한 보고서는 총 2924건이었다. 이 가운데 매수의견을 낸 보고서는 2328건으로 79.6%를 차지해 여전히 매수 의견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립(유지)을 제시한 보고서는 269건이었다. 비중축소는 2건이고 매도의견은 1건에 불과했다. 투자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보고서는 324건에 달했다. 증권사 보고서가 ‘매수’ 의견 위주의 보고서를 발표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 매수 추천 위주의 증권사 보고서가 투자자의 신뢰를 잃고 있다.
매수 의견이 대다수인 증권사 보고서

특이한 점은 한 기업에 대한 보고서지만 증권사마다 투자의견과 목표주가가 제각각 이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10월 한달 동안 발표된 증권사 보고서는 18건이다. 이 가운데 11건이 매수의견을 제시했고 중립의견이 4건, 단기매매가 3건이었다.
 
목표주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목표주가를 제시하지 않은 증권사에서부터 최대 5만원을 제시한 증권사까지 있었다. 목표주가를 제시한 증권사의 최저가격은 3만4000원으로 최대가격과 1만6000원가량 차이가 났고 10월 31일 종가였던 3만4050원과는 불과 50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증권사 보고서는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지원을 두고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매수를 제시한 증권사는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을 지원할 경우에 지원 규모가 20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보유를 투자 의견으로 제시한 증권사는 추가지원 가능성이 주주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증권업계의 반응도 엇갈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매도 의견이 없는 국내 증권사 보고서에서 보유는 매도의견에 가까운 것이다”며 “아직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소신 있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의 의견도 있었다. 다른 관계자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보고서가 나온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며 “앞으로의 결과를 떠나 상반된 투자의견은 투자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여전히 기업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3분기 실적발표에서 어닝쇼크를 겪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3분기 매출 1조9445억원, 영업손실 7468억원을 기록했다. 어닝쇼크에 빠진 회사의 주가는 급락했다. 18일 8만100원으로 장을 마친 주가는 보고서가 쏟아진 21일 7만1400원으로 폭락했다.

10월 발표된 삼성엔지니어링 증권 보고서는 모두 26건이다. 매수 의견이 5건 보유 이하에 해당하는 의견이 20건, 매도가 1건 이었다. 부정적인 보고서가 더 많이 나왔다는 얘기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은 금요일인 10월 18일 발표됐다. 부정적인 보고서가 나온 것은 다음주 월요일인 10월 21일이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보고서 총 26건 가운데 17건이 21일에 쏟아졌다.

각 증권사는 매수, 매도, 보유, 중립, 축소, 시장수익률, 시장수익률 하회 등의 투자의견이 제시됐다. 목표주가에도 변화가 있었다. 최저 목표주가 5만5000원에서 9만4200원까지 목표주가에서만 4만원 가까이 차이를 보였다. 심지어 11월 1일 종가 7만4100원보다 낮은 목표주가를 제시한 증권사도 6곳에 달했다.

제각각인 투자의견과 목표주가

같은날 하나의 기업에 대해 8가지 투자의견과 10가지가 넘는 목표주가가 제시됐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발생했다. 한국신용평가사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의 기업 신용등급을 ‘AA-’(안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강등한 22일 이후에는 단 한건의 보고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투자의견을 제시해 투자자를 혼란에 빠뜨리곤 신용등급이 강등되자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얘기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기업의 눈치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의 신용등급 강등과 같은 중대한 사항에 대해 합리적인 평가와 의견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권 시장의 요구는 정확하고 균형 있는 보고서를 내놓는 것에 있다”며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