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ㆍLIGㆍ웅진그룹의 공통점

‘CP 발행→법정관리→투자자 피해.’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그룹의 한결같은 행보다. 동양그룹을 비롯해 웅진, LIG가 그랬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CP를 발행하고, 법정관리를 통해 회사는 ‘쏙’ 빠져나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넘어갔다. CP의 위험성, 언제까지 꼬집어야 할까.

▲ 동양그룹의 불완전 CP 사태 이후 CP의 위험성이 또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어음(CP)의 위험성이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동양그룹은 9월 말 계열사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직전 수조원대의 CP를 발행했다. 문제는 투자자다. 동양그룹의 CP에 투자한 4만여명의 개미들의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피해액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동양그룹의 CP는 ‘불완전 판매(불충분한 설명)’ 상품이었다. 투자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내용이다. “원금 손실이 없는 안전한 상품이라며 높은 이율만 말해주고 가입을 권유했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 A)에 돈이 있다는 이유로 CP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입시켰다.” “투자부적격 기업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가입을 권유했다.”

사실 CP가 문제가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LIG건설은 2011년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1800억원에 달하는 ‘사기성 CP’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CP 발행과 관련 LIG그룹 관계자들은 검찰에 고발됐고, 그룹 총수인 구자원 회장과 아들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은 각각 실형 3년과 8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웅진그룹 역시 지난해 회사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도 웅진홀딩스 명의로 100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했다. 당시 웅진홀딩스는 재무 구조 악화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동양ㆍLIGㆍ웅진 3개 그룹의 CP 발행 구조는 똑같다. 불완전 또는 사기성 CP 발행 이후 법정관리 신청,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떠넘기는 형태다. 핵심은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기업들이 CP를 발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CP의 장점이자 문제점으로 꼽힌다. CP는 편리한 자금 조달 상품이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

CP는 발행이 쉽고 간편하다. CP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게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투자자에게 직접 팔아 돈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은행의 대출과 달리 담보나 보증없이 해당기업의 ‘신용’만으로 발행이 가능하다. 만기는 보통 3개월로 회사채(3년 이상)보다 짧다. 신속하게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에게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CP(만기 3개월)는 공시의무가 없다. 회사채처럼 발행기업의 재무 상태를 체크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재무 구조가 불안한 기업이 주로 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더욱이 CP는 신용평가사의 기업 신용등급에 의지하는데 이마저도 공신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는 동양시멘트에 올 8월까지 상환능력이 양호한 A등급을 부여했다. 믿고 투자해도 좋다는 의미다. 하지만 8월 말 법정관리 신청 한달을 앞두고 D(채무불이행) 등급으로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반복되는 CP 리스크

국내 신용평가사의 기업 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사건이 터지면 그제야 갑자기 신용등급을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신용평가사가 대기업으로부터 평가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대순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신용등급을 보고 기업을 판단하는 투자자를 위한 평가가 아니라 대기업 눈치 보기 평가, 뒷북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와 같이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CP 시장은 더욱 활발해진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CP발행 잔액(미상환 잔량)은 2010년 73조원에서 2011년 89조원, 지난해 127조원으로 증가했다. 올 9월까지 발행 잔액은 143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CP 문제는 왜 계속해서 반복되는 걸까. CP가 가진 매력 ‘고금리’ 때문이다. CP는 발행 기업과 증권사가 시장 상황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금리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자금이 급한 회사는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금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동양그룹의 CP 발행금리는 연 7%대로 은행 정기예금 평균 2%대에 비해 3배가량 높다.

고수익을 챙기려는 투자자와 유동성 위기를 안고 있는 기업이 쉽게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한 CP 사태가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금융전문가는 “자금난으로 고생하고 있는 기업이 CP 발행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며 “투자자 역시 높은 금리 유혹을 뿌리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원칙적으로 CP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는 투자자가 진다. 고수익을 바라본 투자에는 고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불완전 판매’ 부분을 확실하게 잡아줘야 한다. 불완전 판매란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 투자위험성 등에 대한 안내 없이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금융당국, 불완전 판매 규제 강화해야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대형 금융피해사건의 공통점은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와 금융기관의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비대칭이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며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소비자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위험성 등급제, 금융상품 판매자의 자격제, 금융피해사건의 사후적 구제 절차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양증권은 지난해 9월 계열사 CP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서면 동의를 받지 않는 등 불건전 영업행위를 한 혐의가 드러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기관경고조치를 받았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하며 관련 임직원에 대한 징계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그때뿐, 1회성 제재에 그쳤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CP 시장이 커지고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는데 금융감독원은 소극적인 조치로 투자자들의 폭탄피해를 유발했다”며 “현재도 금융감독원은 불완전판매 등의 적극적인 소비자보호 조치를 하기보다는 가입자의 자기투자책임을 부각시키며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동양증권 등 증권사의 비윤리적인 영업활동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동양증권은 소매금융 특화라는 강점을 이용해 금융지식이 부족한 주부나 개인 자산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나 투자위험을 알리지 않고 ‘안전하다’ ‘괜찮다’라는 말로 그룹 계열사의 부실기업에 대해 고객의 투자를 유도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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