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열사를 규제하라

국내 29개 그룹은 100개가 넘는 금융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금산분리규제 탓에 증권ㆍ보험 등 제2금융회사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들 금융계열사가 그룹의 회사채ㆍ기업어음 발행창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대기업의 ‘사私금고’ 금융계열사를 해부했다.

▲ 삼성·현대차 등 6개 그룹 소속 증권사는 계열사의 회사채·CP를 발행하고 있다.
62개 그룹(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29개 그룹이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업 지배 차단)에 따라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증권ㆍ보험ㆍ저축은행ㆍ캐피탈 등 제2금융권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29개 그룹의 총 금융계열사는 113개에 이른다. 10년 전인 2004년 81개에 비해 33개 늘었다. 자산 규모는 199조7334억원에서 490조2245억원으로 증가했다.

제조업을 핵심으로 하는 그룹이 금융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뭘까. 재계엔 “그룹이 성장하기 위해선 금융업이 필수”라는 말이 있다. 그룹이 금융계열사를 통해 돈을 굴린다는 것이다. 물론 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다. 은행을 통해서만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옛말이다.

그룹 증권사를 통해 직접 회사채, 기업어음(CP)을 발행하거나 보험사ㆍ캐피탈을 통해 대출을 받는다. 금융 계열사가 그룹의 ‘사私금고’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계열사를 가지려는 그룹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은행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과거 재벌은 은행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모두 국유화됐다. 이후 그들은 은행을 만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고, 규제완화 바람을 틈타 증권사ㆍ보험사 등 제2금융회사를 만들었다.”

최근 터진 ‘동양사태’는 금융계열사가 그룹 ‘사금고’ 역할을 하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동양은 부실한 계열사 CP를 동양증권을 통해 판매했다. 9월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ㆍ동양레저ㆍ동양인터내셔널 3개사가 발행한 회사채와 CP는 총 1조9334억원에 달했다. 이 중 동양증권은 1조3311억원을 판매했다. 그룹 금융계열사인 동양증권이 아니었다면 3개사의 회사채와 CP 판매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동양그룹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증권사를 두고 있는 다른 그룹도 같은 방법으로 계열사 CP를 발행하고 있다.

이상직(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주요 그룹 증권사의 계열사 CPㆍ회사채 발행 현황’(2010년~2013년 9월)에 따르면, 삼성ㆍ현대차ㆍSK 등 6개 그룹 소속 증권사가 계열사의 회사채ㆍCP를 발행하고 있다. 이 증권사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41조1016억원(474건)이고, CP는 11조6626억원(1233건)에 달했다.

삼성증권은 삼성카드의 CP를 무려 11조1705억원 발행했다. HMC투자증권(현대차그룹)은 14조6166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현대차ㆍ기아차ㆍ현대제철ㆍ현대카드ㆍ현대캐피탈ㆍ현대건설 등 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HMC투자증권을 회사채 발행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SK증권은 회사채 7조2500억원과 1688억원의 계열사 CP를 발행했다.

장흥배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는 “동양증권이 부실 계열사의 회사채ㆍCP를 무리하게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계열사를 사금고처럼 여기는 총수 일가의 그릇된 시각에서 비롯됐다”며 “자격 없는 대주주가 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현재 은행과 저축은행에 도입된 금융기관 대주주에 대한 ‘동태적 적격성 심사’를 전 금융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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