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네 금고가 텅 비었다
김과장네 금고가 텅 비었다
  • 김미선 기자
  • 호수 66
  • 승인 2013.11.13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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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유리지갑 갈수록 얇아져 전전긍긍

▲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이유다.
월급 빼곤 다 올랐다. 식료품 가격은 도미노 인상을 거듭하고 있고, 방과 후 수업 등의 정부 조치에도 사교육비의 부담은 어깨를 짓누른다. 주택담보 대출을 갚느라 허덕이는 하우스푸어들도 지천으로 널렸다. 대한민국 평균 ‘중소기업 김과장’의 삶은 어떨까. 그의 하루에 펜을 집어넣었다.

중소 전자제품제조업체의 해외영업팀 과장직을 맡고 있는 김영훈(43)씨. 월수입은 세후歲後 350만원 정도. 외벌이를 하는 그의 한달 포트폴리오는 빡빡하다 못해 ‘마이너스’다. 자녀는 초등학교 5학년 하나와 두살배기 딸 둘이 있다. 2013년 10월 28일. 김씨는 아내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김씨의 아내 박미현(41)씨는 최근 배달된 우유에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이런 내용이었다. “8월 1일 원유가격 인상으로 인해 10월 1일부터 소비자 가격을 부득이 인상하게 됐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올 9월, 서울우유(L당 220원·9.6%)를 시작으로 매일유업(L당 200원·7.8%)과 남양유업(L당 200원·8.5%)이 우유값 인상 조치를 단행했다. 대형마트 PB제품값도 죄다 인상됐다. 배달제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야흐로 우유 한잔 마시기도 버거운 시절이 왔다.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직장 생활

김씨의 출근 시간은 8시30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집에서 동대문에 있는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월요일이면 교통체증 때문에 10분 정도는 미리 나와야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김씨가 지하철역에 도착한 시간은 8시 25분. 회사까지는 도보로 7~8분. 자칫 잘못하다가 지각하기 딱 좋다. 제 시간에 도착할 자신은 없던 김씨는 택시를 타기로 결심한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흉흉해 1분이라도 늦으면 눈치가 여간 보이는 게 아니라서다. 김씨의 얼굴은 택시를 타자마자 금세 일그러진다. 2400원하던 기본요금이 3000원으로 올갔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아침부터 우유값에 택시값에 운수 한번 독하다.

택시 기사에게 “택시요금이 왜 이렇게 올랐냐”고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뭐 600원 같고 그래요. 1만원이나 1만600원이나 별 차이 있나. 다들 아무 말 않는데 유별나시네, 그려. 우리도 사납금 올라서 힘들어요.” 남의 속을 알고 말하는 건지 택시 기사가 야속하기만 하다. 10월 12일 오전 4시를 기점으로 서울시 택시 기본요금은 기존 2400원에서 3000원으로 거리 요금은 기존 144m당 100원에서 142m당 100원으로 올랐다.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의 시간. 최근 내놓은 신제품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인지 대표 표정이 좋지 않다. 최근 다녀온 중국 박람회 결과도 그저그렇다.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면 회사를 관둬야 할지 모르는데, 답이 없다. 회사 내부에서는 신제품 개발을 맡은 팀이 해체될 수 있다는 말까지 떠돈다. 불현 듯 중견 건설사에 다니다가 실직자가 된 친구 P씨 얼굴이 떠오른다. P씨는 3개월째 월급이 밀리다 결국 실직자가 됐다. 김씨의 사정도 특별히 나을 건 없어 보인다. 신제품 개발팀이 해체되면 부서를 옮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다.

 
김씨의 12살인 딸 나영이의 학원비를 내야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김씨는 빡빡한 살림에 나영이의 교육비로 50만원을 지출한다. ‘회화’ 전문영어학원에 보내는데 한달 학원비가 25만원이다. 학습지에 5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방과 후 수업에 학교 준비물이나 교재비용 등을 모두 합치면 50만원 정도를 교육비로 지출한다. 피아노학원·미술학원도 보내고 싶지만 여유가 안 돼 포기한 지 오래다. 같은 회사 인사팀 박 과장의 외동아들은 35만원짜리 종합반 수업을 공짜로 듣는다. 사교성이 좋은 부인을 둔 덕택이다. 그 부인은 무려 20명의 지인을 학원에 소개했다고 한다.

부럽긴 하지만 최 상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또 달라진다. 최 상무는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두 아이 교육비로 월 200만원을 쓴다. 월 500만원 조금 넘게 받는 최 상무지만 사교육비에 아파트 대출금까지 갚느라 저축은 엄두도 못낸다. 최 상무는 “아이들이 더 커서 대학에 입학할 때를 생각하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김씨는 앞으로 닥칠 일이 두렵기만 하다.

 
도미노처럼 오르는 물가

어느새 점심시간. 오랜만에 느끼한 것도 먹고 싶은 마음에 팀원들과 함께 맥도날드로 향했다. 메뉴판을 확인한 김씨는 흠칫하고 놀랐다.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 런치 세트 가격은 4400원,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런치 세트 가격은 4900원이다. 백반값보다는 저렴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런치세트 대부분이 3000원대였던 거 같은데 언제 이렇게 가격이 올랐나 싶다.

알고 보니 맥도날드는 올 2월 9일부터 버거류 5개 품목과 디저트류 3개 품목, 아침메뉴 5개 품목 등 13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2.3% 올렸단다. 대표 메뉴인 빅맥은 3700원에서 3900원으로 200원(5.4%) 올렸다. 상하이스파이스치킨버거도 3900원에서 4100원으로 5.1%(200원) 인상됐다.

점심을 먹고 나니 한동안 끊었던 담배 생각이 절로 난다. 6살이나 어린 구 대리의 담배를 뺏기 민망했던 그는 인사팀 박 과장에게 담배 한가치를 빌려 피웠다. 요즘 김씨에게는 2500원 정도 하는 담뱃값도 부담이다. 담배를 끊으면 좋겠지만 김씨 성격이 그 정도로 독하진 않다. 솔직히 30만원밖에 안 되는 용돈으로 담배를 피우는 건 사치에 가깝다.

 
김씨 가계의 포트폴리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식품비다. 그의 가족은 외식비용을 제외하고 월 80만원 정도 지출한다. 아이들 먹는 것만큼은 최고로 챙기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어서다. 아내 박씨는 아이들 먹거리를 위해서는 집에서 가까운 곳의 친환경 유기농 제품을 중심으로 파는 초록마을에서 유기농 쌀·고기·과자 등을 구매한다. 물론 매일 사먹는 가공식품은 대형마트, 과일·수산물은 재래시장에서 구매한다. 생수·라면 등은 배송비 무료 쿠폰이 있을 때만 온라인몰에서 구매한다.

그래도 아내는 불만가득이다. 월급은 안 오르는데 물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어서다. 회사가 어려워진 2011년부터 월급이 오르지 않은 김씨로선 할말이 별로 없다. 얼마 전엔 “애들은 뽀로로 캐릭터가 들어간 비싼 요구르트만 먹는다”며 “우유·요구르트값 모두 올랐는데 조만간 과자값도 오른다”며 불만을 늘어놨다. 아내는 “초록마을에서 구매하는 것도 이제는 망설여진다”며 “텃밭에 채소라도 길러야 할까 보다”고 말한다.

 
김씨는 지난 주말 아내와 대형마트에 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시리얼 코너에 갔는데 곡물이 조금 들어간 시리얼이 한박스에 7000원이 넘었다. 마트에 진열된 켈로그 480g짜리가 6950원, 포스트 그래놀라 크랜베리 아몬드 시리얼 570g이 7120원에 팔리고 있다. 최근 가격이 오른 1ℓ짜리 우유 대부분은 2500원 이상 한다. 시리얼 하나에 우유 하나만 장바구니에 담아도 금세 1만원이다. 과일값도 비싸다. 과일 한봉지에 1000원 하던 시절이 얼마 안 된거 같은데 바나나 한송이가 대형마트에서 무려 4000원이다. 비닐에 사과를 몇개를 담고 나니 만원이 훌쩍 넘는다. 과자는 더하다. 몇년전까지 500원 했던 거 같은 초코 다이제스티브는 2000원이 넘는다.

담보대출로 가계빚 심각

김씨는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1000원 코너에 가서 저렴한 과자 몇봉지를 카트에 담는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단팥빵, 소보로도 하나에 1000원씩 한다. 통신사의 20% 할인을 받아도 800원이다. 하긴, 요즘은 길거리에서 파는 계란빵조차 하나에 1000원이다. 그나마 싼지역에서 그렇다. 명동에서는 계란빵이 2000원에도 팔리기도 한다.

고물가 때문에 식료품비를 줄이기 힘드니 김씨 부부는 아이의 장난감이나 옷만큼은 구매를 덜하자는 방침을 세웠다. 그래서 온라인 중고몰 등에서 필요한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한다. 매주 뚝섬공원에서 열리는 벼룩시장도 정기적으로 찾는다. 옷이나 신발을 1000~2000원에 살 수 있다. 입던 옷이나 제품은 중고 장터에 되판다. 한푼이라도 아낄 수 있을까 해서다. 김씨 마음은 점점 처량해진다.

출출한 저녁. 김씨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치킨을 주문하기로 한다. 평소 즐겨 먹던 굽네치킨의 오리지널치킨을 주문했다. ‘띵동띵동’. 배달원이다. 그런데 영수증에 적힌 가격이 이상하다. 1만4000원이었던 치킨 가격이 1만5000원으로 표시돼 있다. 굽네치킨은 10월 1일부터 전 메뉴의 가격을 1000원씩 올렸다. 치킨과 함께 마실 맥주 구매를 위해 짚 앞 편의점으로 갔다. 아내가 즐겨 마시던 KGB 맥주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가격이 300원이나 올라 있다. KGB 캔(375mL)이 3200원에서 3500원으로 올랐다. 머드쉐이크도 3500원이었는데 3900원으로 400원이나 인상돼 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페트병에 들어 있는 국산 맥주 하나 집어 든다.

최근 식품 가격이 도미노처럼 인상하고 있다. 우유값뿐만 아니라 발효유·가공유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편의점에서 팔리는 롯데제과 일부 제품 가격은 11월 1일부터 10~ 20% 인상됐다. 2500원이었던 몽쉘카카오 한박스는 3000원으로 12개 들이 몽쉘통통 한 박스의 권장 소비자가격은 4800원에서 5300원, 마가렛트 12개 들이 한 박스의 권장 소비자가격은 36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 전문점의 경우에도 올초 맥도날드를 시작으로 6월에는 KFC가 일부 품목의 가격을 평균 5.05% 인상하며 가격을 줄줄이 올렸다. 사이다와 콜라 등 탄산음료 가격도 지난 3년간 40% 넘게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통 저축할 여력이 없다. 소비를 줄여봐야 ‘빚’이 앞을 가로막는다. 2003년 김씨는 1억2000만원의 부동산담보대출을 받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있는 아파트 한 채(24㎡)를 1억9800만원에 구매했다. 현재 원금과 이자를 모두 포함해 매달 67만원씩을 갚는다. 그나마 대기업에 다닐 때 신용이 좋아 4.2%의 고정금리를 적용받아 천만 다행이다.

김씨는 매달 정기예금으로 20만원씩을 지출하지만 자유불입식이라 여유가 없는 달에는 그냥 넘어간다. 사실 김씨가 올해 정기예금을 넣은 횟수는 3번밖에 되지 않는다. 경조사비 등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늘어서다. 마이너스 통장 1000만원짜리를 개설했는데 벌써 500만원 가까이 지출했다. 정기예금의 의미가 별반 없는 듯하다.

 
그나마 김씨가 저축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이유는 가계 포트폴리오를 조금 정비해서다. 기름값과 자동차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차를 아예 팔아버렸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아이 모두 합쳐 20만원 정도 들어가는 보험도 모두 정리했다. 몇년 동안 납부한 보험료 몇백만원이 아깝긴 했지만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휴대전화 비용도 확 줄였다. 예전에는 12살의 어린 딸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한달 기본 20만원 정도를 비용으로 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평상시에 전화사용량이 많은 김씨는 통신사 관계없이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요금제(기본 6만9000원)로 바꿨다. 스마트폰 구매 약정이 끝난 아내와 딸은 기본요금이 1만1000원짜리 표준요금제로 변경했다. 그러자 세가족이 쓰는 휴대전화 비용은 부가세까지 모두 포함해 12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아낀다고 아끼지만 여전히 불안한 김씨다. 혹시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생각지도 못한 비용이 나갈 일이 산적해 있어서다. 당장 보험을 정리하고 나니 찜찜한 게 사실이다. 실비 보험이라도 들까 싶지만 조금 여유를 가진 후에 가입할 예정이다. 요즘 같은 때는 결혼식이 특히 많다. 조문을 갈 일도 많다. 가늠할 수 없는 경조사비는 빡빡한 살림에 큰 부담이다. 겨울철이면 도시가스비가 20만원 정도 나올 텐데 그것도 걱정이다. 저축은커녕 마이너스 통장 잔고가 줄어들 게 뻔하다. 앞으로 큰애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둘째 자녀양육비가 끊기면 살림은 더욱 팍팍해 게 뻔하다. 월급이 오르면 좋겠지만 당장의 미래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씨가 요즘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 대리운전 기사들이 시위에 나섰다는 걸 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은가보다.

 
김씨 가족은 좋지 않은 형편이지만 분위기 전환을 위해 여행은 주기적으로 가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엔 소셜커머스에 나온 반값 할인을 활용해 테마파크에 놀러가기도 했다. 어린이대공원 같은 입장료가 없는 곳도 자주 찾는다. 놀러 가더라도 간식비를 줄이기 위해 도시락을 꼭 준비해간다.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서다. 김씨의 사례는 대한민국 40대 가장의 자화상이다. 김씨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지 오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95조3000억원으로, 전년(192조9000억원) 동기보다 1조4000억원 증가했다.

우울한 40대 가장의 자화상

가계소비를 줄이기 위해 김씨처럼 보험 계약의 중도해지하는 사례도 훌쩍 늘어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준(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손보사들이 판매한 보험상품의 중도해지건은 339만건으로 2011년(241만건)보다 40.6% 증가했다.

▲ 지난해 우리나라 저축률은 OECD 최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해지금액도 160조원으로 2011년(122조원)보다 30.9% 늘었다. 지난해 생명보험사의 보험해지율도 10%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생보사의 보험해지 건수는 454만건으로 2011년(398만건)보다 13.9% 증가했다. 금액도 119조원에서 136조원으로 14.5% 늘었다. 그만큼 살기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계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것은 ‘지출 줄이기’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보험설계사(FC)는 “상담을 하다 보면 본인은 열심히 허리띠를 졸라 맨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다”며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것도 결국 본인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 비용, 커피·담배 비용 등 줄이려고 하면 줄일 수 있는 게 너무 많다”며 “살기 힘들다면서 사교육비는 줄이지 않지 않는가”라고 꼬집었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 | @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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