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낙하산 인사, 배임의혹 등 숱한 구설에 휘말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2008년 11월, 남중수 KT 전 사장이 사퇴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11월, 이석채 KT 회장은 자진사퇴했다.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까. KT는 민영기업이지만 여전히 정권의 낙하산 인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검찰의 압수수색과 국회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 등에도 개의치 않고 아프리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출장길에 올랐던 이석채 KT 회장이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진사퇴했다. 
2008년 11월. 남중수 KT 사장(당시)의 후임 하마평이 나돌았다. 정관계 인사 10여명이 거론됐다. 삼성전자 출신 인사도 오르내렸다. 당시 남중수 사장은 납품비리 의혹으로 구속된 상태였다. 노무현 정부 인사로 분류된 남중수 사장은 정권이 바뀐 후 줄곧 사퇴설에 시달렸다.

논란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뜬금없이 KT 정관의 해석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경쟁사에 몸담았던 인물은 KT의 이사가 될 수 없다’였다. 설령 KT의 이사가 됐더라도 이후 직職을 상실하는 내용도 있었다.

곧바로 KT 사장 후보들의 부적격 논란이 일었다. 특히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SK C&C 사외이사 경력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통신업계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업계에는 이석채 전 장관이 사실상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의 낙점을 받았다는 설이 파다했다. 이석채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당시)의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 활동 경력을 갖고 있었다. KT 정관 논란 이면에 낙하산 인사가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언론과 시민사회가 발끈했다. 특정 후보를 위해 정관을 손보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편에서는 정관에 맞는 인물을 선임하고, 정관에 문제가 있다면 이후에 손보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정부는 귀를 막았다. 후임 사장 선임 작업은 착착 이뤄졌다.

그해 12월. KT 사추위는 이석채 전 장관을 사장 후보로 일찌감치 선정했다. 사유는 그럴듯했다. 급변하는 방송통신 융합환경에서 KT의 경영공백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KT는 상용서비스를 개시한 IPTV 사업과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제도 실시로 인해 주요 사업이 부진에 빠졌다.

무엇보다 KT와 KTF가 납품비리 사태로 수장을 잃으면서 연말부터 추진해온 합병작업이 지연됐다. KT 내부에서는 이 때문에 KT그룹의 유무선 통합 작업이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다.

2009년 1월 14일. 이석채 전 장관은 KT 신임 사장으로 취임했다. 정관 변경 등을 거치며 자격 논란과 낙하산 인사 파문을 뒤로 하고, 국내 통신시장의 맏형인 KT를 이끌게 된 것이다. 숱한 논란에도 이석채 회장을 KT 수장에 앉힌 것은 ‘낙하산 인사’였다. 한국통신(KT 전신) 주식회사로 시작한 KT는 2002년 정부의 지분 매각으로 민영화됐다. 민영화된 지 올해로 11년. KT는 여전히 정권의 낙하산 인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KT 사장 인사에 정치적 고려가 반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KT 입성을 이런 측면에서 본다. 그가 새로운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신이었다는 점과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점이 사장 선임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정권 등에 업고 KT 무혈입성

그렇다고 이 회장의 개인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통신업계에서 전략가로 통한다. 강한 추진력을 겸비해 주변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이런 그의 성향은 역동성이 부족한 KT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많다. 기존 사업이 축소되고 있던 KT에 성장동력을 심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잡음은 많았지만 이 회장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취임 첫날. 그는 KT의 모든 것을 바꾸겠다며 캐치프레이즈로 ‘All New KT’를 외쳤다. 실제로 이 회장은 부임 이후 강도 높은 개혁을 이어갔다. KT와 KTF 통합, 애플 아이폰 국내 도입 결정, 대규모 구조조정 등이다. 거침없는 그의 행보 때문에 이 회장의 영향력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능가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이 회장이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외부 인사를 데려온 것이 발단이었다. 전문성보다는 정치권과의 연계가 부각된 인물들이었다. 일부 외부 인사가 기존 조직과 마찰을 빚으며 구성원이 분열되는 상황이 나타났다. 기존 KT 직원을 뜻한 ‘원래KT’와 외부에서 온 ‘올레KT’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도 이쯤이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고위 인사들이 조직에 배치되다 보니 실적도 뚝뚝 떨어졌다. 문제는 KT의 통신사업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KT는 이 회장 취임 이후 유선사업의 위기를 무선사업으로 극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 KTF와 합병했다. 그런데 합병 4년이 지난 지금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 KT의 무선 매출은 올 3분기 1조693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3% 떨어졌다. 롱텀에볼루션(LTE) 가입자는 전체 41.8%로 전년보다 682만명이 증가했다. LTE 가입자가 증가했는데도 매출이 떨어진 것은 LTE 가입자 확대가 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KT의 3분기 ARPU는 3만1332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5% 늘었지만 전분기 대비 0.9% 떨어졌다.

본연의 통신사업이 부진에 빠지면서 계열사의 실적 기여도는 높아지고 있다. BC카드ㆍKT스카이라이프ㆍKT렌탈 등 연결회사의 연결기준 영업이익 기여도는 지난해 3분기 12.8%에서 올 2분기 44.5%로 크게 증가했다. 올 3분기에는 52.5%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통신사 본연의 경쟁력이 하락했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국민기업 KT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임직원들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KT그룹 내의 이해관계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노사 갈등의 골도 갈수록 깊어졌다. 올해까지 8명의 KT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진 사퇴설은 최근 들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올 3월에는 와병설, 4월에는 입원설, 5월에는 퇴진 기자간담회설까지 나왔다. 급기야 올 5월 KT는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사실관계 설명회를 열었다. 민영화 11년을 맞은 KT의 경영권 흔들기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상황은 심각해졌다.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이 이 회장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참여연대는 올 2월과 10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이 회장을 고발했고, 올 10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KT의 노무관리 문제와 관련 이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여기에 검찰이 전방위로 압수수색을 이어갔다.

낙하산 인사의 최후…

이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찰의 압수수색과 국회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 등에도 개의치 않고 아프리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출장길에 올랐다. 그랬던 이 회장이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 12일 자진사퇴했다. 정치권에서 보낸 낙하산 인사의 최후 말로였다.

이 회장의 예에서 보듯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입성은 결국 정치적인 이유로 떠난다. 그렇다고 낙하산 경영자가 경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낙산한 인사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과 회사 정체성이 흔들린다. 눈물을 삼키고 자존심을 구기는 것은 4만2000명의 KT 직원들이다. 이번에는 KT의 고질적인 CEO 리스크를 청산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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