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바꾸는 기업들

사명社名을 바꾸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문제를 일으킨 기업들이 그렇다. 웅진코웨이는 사명에서 ‘웅진’을 뺐다. 동양생명도 ‘동양’을 빼고 싶어 한다. 경영실패, 부정부패 등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겠다는 것이다. ‘과거를 세탁하는’ 기업을 살펴봤다.

▲ 경기침체 장기화로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사명을 바꾸고 있다.
기업들이 ‘사명 바꾸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회사 이름을 변경하는 건 지금까지 축적한 브랜드를 버린다는 이야기. 자칫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ㆍ비리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한 번에 지울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그룹 이름 지우기’다.

웅진코웨이는 올해 초 사명에서 ‘웅진’이라는 글자를 뺐다. 코웨이는 지난해까지 웅진그룹 계열사였다. 하지만 올초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됐다. 현재 웅진은 법정관리 중으로 ‘무너진 그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코웨이 입장에선 더 이상 웅진이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 코웨이는 바로 웅진을 지웠다.

동양생명도 비슷한 상황이다. 동양그룹은 현재 유동성 위기와 검찰 수사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ㆍ보험사인 동양생명으로선 치명적이다. 동양생명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명에서 ‘동양’을 지우는 것을 검토 중이다. 동양 사태로 불신이 커진 계약자들의 이탈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동양생명은 10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동양과 계열 분리를 신청했고, 보유하고 있던 동양 지분 1.67%도 매각했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1월 계열분리에 대한 공정위 심사가 발표된다”며 “3월에는 동양에게 주어진 콜옵션이 만료되기 때문에 이때까지는 정확한 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양은 2011년 보고펀드에 동양생명 지분 46.5%를 매각하면서 3월까지 콜옵션(지분을 일정 가격에 되살 수 있는 권리)을 부여 받았다. 현재 동양증권만이 동양생명의 지분 3%를 보유하고 있다.

쌍용차도 25년 만에 ‘쌍용’ 이미지 제거에 나서고 있다. 쌍용차는 10월 초 사명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은 “쌍용차는 과거 여러 차례 회사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쌍용차는 쌍용그룹 계열사로 시작했지만 이후 대우, 중국 상하이자동차, 인도 마힌드라 등 주인이 자주 바뀌었다.

현재는 인도 마힌드라가 최대주주(69.63%)다. 이 사장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하기 위해 한국적이면서도 새로운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사명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명 변경해 이미지 개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초부터 10월까지 회사명을 변경한 상장기업은 60곳이다.(유가증권, 코스닥 상장사 기준) 그중 절반가량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사명을 바꿨다. 한국거래소 공시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사명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며 “보통 회사명 제일 앞에 붙는 그룹명은 바꾸지 않는데, 코웨이의 경우 웅진그룹이 와해돼 바뀐 특이한 경우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유가증권 시장에선 합병 또는 분할 과정에서 사명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상호 자체를 바꾸는 건 코스닥 상장사 사이에서 흔히 일어난다. 기업의 역사와 전통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사명을 변경하는 데에도 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한 사명변경은 경기가 악화될수록 잦아진다. 기업이 무너지고, 인수되고, 새로운 사업 전략을 짜는 등의 경영전략에 맞춰 사명이 변경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인 2010년 사명 변경이 113건으로 가장 많았고, 2011년 78건, 2012년 71건, 2013년 60건으로 줄고 있는 추세다.

이미지 개선 차원이 아닌 신규 사업 진출, 주력사업 변경을 이유로 사명을 바꾸기도 한다. 한라건설은 10월 사명을 ‘한라’로 바꿨다. ‘탈脫건설’을 위해서다. 부동산 장기 불황 속에서 건설업에 치우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한라는 미래사업본부를 신설, 주택을 대체할 신규 사업으로 환경ㆍ에너지ㆍ해외 플랜트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삼성그룹 모태기업 중 하나인 제일모직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제일모직은 9월 패션사업을 접었다. 대신 전자재료ㆍ케미칼 등 소재사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현재 제일모직은 사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패션사업을 하지 않는데 ‘모직’이 들어간 사명이 회사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전자재료ㆍ케미칼과 관련된 이름을 예상하는데 사실 제일모직은 해외에서 삼성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사명이 전자ㆍ케미칼과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룹에서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사업부문) 또는 자회사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NHN은 8월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로 회사를 분할하면서 사명을 핵심 사업인 인터넷 포털 ‘네이버’로 변경했다. NHN보다 네이버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는 게 작용했다. 시장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8월 29일 재상장된 네이버의 주가는 9월 1일 44만9500원에서 10월 21일(66만5000원) 고점을 찍은 후 11월 8일 56만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나우콤도 마찬가지다. 나우콤은 3월 인기가 많은 아프리카TV로 사명을 변경했다. 아프리카 TV는 나우콤이 운영하는 인터넷방송 서비스로, PC와 모바일 등 다양한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는 미디어 플랫폼이다. 나우콤은 몰라도 아프리카 TV를 모르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 아프리카 TV는 이를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기업 얼굴 자주 바꾸면 문제

하지만 상습적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기업은 조심해야 한다. 실적이 부진한 기업이 과거 이름을 지우고, 투자자를 유혹하기 위한 ‘꼼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코스닥 상장사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사명을 바꾼 지 5개월 만에 또다시 사명을 변경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의 얼굴인 이름을 이렇게 쉽게 바꾸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또 실적 부진으로 관리ㆍ거래정지 종목으로 지정된 기업들이 사명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가 한 전문가는 “단순하게 보면 사명 변경은 법인 등재만 하면 되기 때문에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없다”며 “좋은 말로 이미지 개선이지 과거를 숨기기 위한 ‘세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삼성을 예로 들면 삼성이라는 고유 그룹 브랜드명은 유지한 채 나머지 이름을 변경한다”며 “이런 식의 사명 변경은 괜찮지만 과거 어떤 기업인지 전혀 모르게 사명을 바꾸는 기업은 투자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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