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교수의 ‘기업용 전기요금 인상論’

▲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당장 기업을 힘들게 할지 모르지만 미래를 위해선 더 낫다고 주장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온다. 사용량이 많은 기업용(산업용+일반용) 전기요금은 올리고 주택용은 내려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기업은 늘 ‘원가경쟁력 약화’를 운운하며 앓는 소리를 한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전기요금 보조로 유지되는 것도 경쟁력인가”라고 꼬집었다.

기업용(산업용+일반용)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기업의 반응은 늘 ‘반기’였다. 대외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기업 입장에선 비용을 줄여야 이윤을 내고, 그래야 고용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기업 경쟁력을 위해 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는 게 옳은 걸까.

최근 전기요금 정상화에 관한 리포트 하나가 새로 나왔다. ‘기업용 전기요금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인상하면 당장은 기업에 악영향을 줄 것 같지만 기업의 미래를 위해선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게 요지다. 전기효율이 좋아지면 기업의 경쟁력은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내놓는 경제학자들 중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만나 논리적 근거를 들어봤다. 

유종일 교수는 기업이 값싼 전기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윤이 비용보다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가격 경쟁력을 운운하며 값싼 전기요금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업의 주장은 ‘싼 전기요금 덕분에 이윤을 내고 있다’는 말과 같다”며 “전기요금이 오르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만큼 경쟁력이 없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박창기 에카스 대표가 올 9월 발표한 자료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전기 사용량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이윤을 내는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무 경쟁력도 없이 전기요금 보조만으로 유지되는 기업은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사라지는 게 정상이다.”

한국전력공사의 2011년 자료를 가공해 만든 박창기 대표의 리포트에 따르면 전기사용량 상위 20개 기업 중 일부는 영업이익의 11배에 달하는 전기요금을 냈다. 비용 대비 생산성이 형편없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전기과소비 기업들을 놔둔 채 경쟁력 운운하는 건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이윤을 챙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적 비용 문제도 지적했다. 전기사용량이 매년 늘어나는 탓에 전력생산증가가 유발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거다. 실제로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려는 한전과 이를 반대하는 주민의 갈등으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의 전력수급 문제는 공급부족이 아니라 수요과다에서 오는 것”이라며 “수요과다를 해결하지 않고는 전력수급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다른 국가와의 전기사용량 비교하면 금세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기소비량은 독일ㆍ일본보다 높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높고, 전기요금이 저렴할수록 전기소비량은 늘어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독일ㆍ일본보다 소득수준은 낮은데, 전기소비량은 많다. 그만큼 전기요금이 싸다는 거다.

전기생산 효율성 올리는 게 급선무

유 교수는 전기생산업체가 한전에 비싼 값으로 전기를 팔고, 그 전기를 다른 기업이 싼값에 사다보니 시장경제에선 나타나기 어려운 ‘왜곡현상’도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SK E&S는 한전에 매년 4TWh의 전기를 6000억원에 판매한다. 같은 그룹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이를 4000억원에 구입해 사용한다. SK하이닉스가 2000억원을 덜 주고 산다는 얘기인데, 누군가 그만큼을 메워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돈을 메우고 손해를 보는 이들은 한전과 국민이다. 유 교수는 “이런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재계다. 재계는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물가가 오르고, 수출이 막히며, 공장들이 한국을 떠나고, 일자리가 줄어 국민이 더 많은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 교수는 “2011년 9월 대정전 이후 정부는 2012년 8월까지 세번에 걸쳐 18%의 요금인상을 단행했지만 공장이 멈추고 수출이 막힌 적은 없었다”며 “전기소비량은 소수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은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향후 5년간 매년 10%씩 61%(누적인상률)가량 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전력수요 감소와 에너지 효율성 향상, 일자리 창출, 복지재원 마련까지 일석사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기요금 정상화를 단순히 전력수급 문제나 한전의 적자해결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게 아니라는 얘기다.

기업용 전기요금 정상화가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는 가전에너지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의 공동연구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5년간 매년 10%씩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약 176조원의 생산유발효과, 약 52조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가 생긴다. 에너지효율 관련 연구개발과 전기장치, 전자표시장치, 공조ㆍ냉온장비 등 분야에선 76만여명의 취업유발효과도 창출된다.

효과는 더 있다. 현재 kWh 당 99원인 산업용 전기의 평균한계비용을 61%(160원) 인상하면 향후 5~6년간 60조~70조원 규모의 요금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증가된 정부재정으로 일반 국민이 사용하는 주택용 전기요금을 내려주면 가계부채를 줄일 수 있다. 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를 기업용 전기요금 정상화만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늘어난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전기생산 원료가격이 오른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부터라도 에너지효율을 높여 경쟁력을 쌓으면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주, 전기요금 인상으로 효과 톡톡

이런 맥락에서 호주의 사례는 벤치마킹할 만하다. 2007년에만 해도 호주는 우리나라와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전기요금이 가장 쌌다. 풍부한 석탄자원의 덕이었다. 하지만 호주는 현재 OECD 국가 가운데 전기요금이 높은 국가에 속한다. 지난 5년간 지역별로 50~70%까지 전기요금을 올려서다.

그 결과 연평균 3~5%씩 꾸준히 증가하던 전력수요는 2010년부터 빠르게 감소했다. 2만여개에 불과했던 태양광발전 시스템은 2012년 기준으로 100만여개로 늘었다. 관련 매출은 5조원이 넘는다. 호주 경제의 0.1%에 해당하는 수치다.

유종일 교수는 “전기요금 정상화 정책은 단기충격을 주더라도 과감하게 진행해야 효과가 있다”며 “2011년 9월부터 진행된 전기요금 인상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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