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문 효성 전 부사장의 수상한 ‘My Way’

그는 탈脫재벌 인사로 꼽혔다. 오너 가문을 벗어나 ‘마이 웨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던 지분도 털어냈다. 조현문 전 부사장. 그는 그렇게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조 전 부사장의 얼굴에 씌워진 탈을 벗겼더니 역시나 재벌의 후예일 뿐이었다. 그는 탈세와 비자금 조성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 후계자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탈세·비자금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법무법인 ‘현’ 고문변호사).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이다. 오너의 후손이지만 다른 오너 일가와는 다르다는 평을 받았다. 올 3월 효성 지분 대부분을 매각하고 회사경영에서 물러나면서다. 1999년 효성에 입사한 지 14년 만에 회사를 떠난 것이다.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오너 일가 가운데 지분을 털고 ‘마이웨이’를 선언한 이는 조 전 부사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효성 지분은 현재 0.34%에 불과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벌가 자제 중 ‘경영 승계’ 대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며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탈재벌 인사의 예고된 추락

조 전 부사장은 법무법인 ‘현’의 고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미국 하버드대 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조 전 부사장은 효성 입사 전 미국 뉴욕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때문에 조 전 부사장은 ‘스스로 삶’을 위해 재벌이라는 타이틀을 벗은 ‘탈脫재벌’ 인물 중 한명으로 꼽혔다.

 
조 전 부사장이 경영능력이 없어서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도 아니다. 2006년 효성그룹의 중공업부문 PG장을 맡으면서 경영 일선에 나선 그는 수익성 개선과 글로벌 시장 확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효성은 중동ㆍ남미ㆍ중국 등 신흥시장은 물론 미국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타이어기업 미쉐린에 타이어코드(타이어고무에 들어가는 보강재) 장기공급계약 체결(2002), 중국 남통우방 변압기(현 남통효성변압기 유한공사ㆍ2006) 인수를 주도한 이도 그였다. 조 전 부사장은 그룹의 ‘브레인’이었고, 효성에서 차지하던 비중도 컸다. 그래서인지 조 전 부사장은 ‘형제간 갈등설’에 휩싸이곤 했다.

효성의 ‘3형제 후계자’ 경쟁은 널리 알려져 있다. 경쟁을 통해 3형제의 경영능력을 키우고, 미래 효성을 이끌 인물을 정한다는 게 아버지 조석래 회장의 계획이었지만 3형제간 협업이 여의치 않아 그룹성장을 막는 요인으로 지적받기도 했다.

 
이런 조 전 부사장이 효성을 떠난 지 9개월 만인 11월 15일,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첫째 혐의는 효성캐피탈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은 경위와 그 대출금을 어디에 썼느냐다. 효성캐피탈은 조석래 회장 일가와 임직원 11명에게 2004년부터 최근까지 4292억원을 대출해줬다. 이 중 조 전 부사장 앞으로 대출된 금액은 1394억원에 달한다. 조 전 부사장은 ‘동의 없는 도명대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혐의는 탈세와 비자금 조성이다. 효성그룹의 탈세ㆍ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이 해외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조 전 부사장이 페이퍼컴퍼니에 은닉한 비자금으로 주식거래 등을 통해 시세 차익을 거둔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이 조세피난처인 바하마에 페이퍼컴퍼니 ‘L’사를 설립하고, 2003년 10월, 2005년 4월 두차례에 걸쳐 725만 달러(약 77억원)를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자금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분석 중이다. 조 전 부사장은 페이퍼컴퍼니 L사를 ‘S’사 등 자회사 2곳으로 분리하고, 이를 형 조현준 사장 명의를 빌려 자회사 4개로 분리ㆍ설립했다. 이런 해외 법인 ‘쪼개기’는 국내 재벌의 전형적인 자금세탁 수법이다.

탈세 혐의로 조사 받은 조현문

사정당국은 효성 오너 일가가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해외법인 쪼개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쪼개진 해외 페이퍼컴퍼니는 국내주식투자에 동원됐다.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을 가장한 국내주식 거래로 770만 달러(약 82억원) 상당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은 조현준 사장과도 은밀히 거래했다. 검찰은 조현준 사장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고가의 부동산을 거래한 정황을 포착했다. 조 사장은 미국에 설립한 부동산 업체 ‘A’사를 통해 2002년 8월~2005년 4월 미국의 고급주택 5채를 550만 달러(약 58억원)에 구입했다. 자금송금은 조현문 전 부사장이 맡은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부사장이 설립한 4개의 자회사가 ‘A’사 법인 계좌에 주택매매자금을 보냈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은 검찰조사에서 탈세와 비자금에 관련된 혐의를 대체로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페이퍼컴퍼니 설립자금은 조석래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고령의 조석래 회장이 이런 형태의 탈세나 비자금 조성을 적극적으로 주도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 조 회장 자녀들의 재산증식 방법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법조계는 조 전 부사장이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검찰이 역외탈세에 대해선 엄중하게 처벌을 하고 있어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이 조석래 회장의 재산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면 증여세 과세대상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자금을 해외로 돈을 빼돌렸기 때문에 국외재산 도피죄가 성립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이 모든 혐의가 사실이라면 조 전 부사장 역시 다른 재벌과 다를 게 없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겠다며 지분까지 탈탈 털어버렸던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하지만 그의 몸엔 ‘재벌의 피’가 흐르고 있었을 지 모른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Issue in Issue 효성, 검찰 수사 속 실적은 …
효성에 오너 리스크는 없었다

효성이 검찰의 탈세ㆍ비자금 수사로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3분기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다. 효성은 2013년 3분기 매출 3조1993억원, 영업이익 1538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3.9% 하락했고, 영업이익은 41.9% 증가했다. 부문별로는 산업자재 부문의 이익이 전 분기 대비 감소하며 부진했다. 반면 중공업 부문은 흑자를 기록, 당초 적자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양호했다. 섬유 부문은 전방산업의 수요 부진에도 영업이익률 13%로 양호한 실적을 유지했다.

세금 탈루에 대한 국세청의 법인세 추징금(3652억원)이 3분기에 손실충당 처리되며 당기순손실은 2417억원을 기록, 대규모 적자 전환했다. 곽진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법인세 관련 과징금과 세무조사에 따라 시장의 우려가 컸으나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효성은 3분기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지적된 사항에 대해 현재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와 금융감독원의 감리, 검찰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실적 공시 없이 분기보고서를 통해 3분기 실적을 11월 14일 공시했다. 효성의 주가는 1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전일 대비 4.03% 상승한 7만4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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