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사장

한경희생활과학은 국내 1호 생활가전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는 상호·제품명과 CEO의 브랜드가 일치한다. 한경희 스팀청소기와 스팀다리미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각각 73%, 60%에 이른다. 한경희 사장은 창업 오너다. 5년 전 만났을 때 그는 이 스팀청소기가 “미국 시장에서 ‘스팀의 다이슨(영국의 청소기 전문 브랜드)’ ‘스팀의 메르세데스 벤츠’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가전 브랜드 ‘한경희’는 지난해 수도권 30~40대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삼성, LG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웅진, 동양매직 같은 대기업보다 높다. 설립 14년 만에 거둔 성과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들이 한경희의 브랜드 가치를 1조원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 이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비결이 뭔가요?
“사람들이 10여년간 한결같이 세상에 필요한 제품, 그것도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을 내놓는 게 대단하다고 합니다. 두달 전에 내놓은 죽제조기(건강식마스터)는 없어서 못 파는데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제품이죠. 집에서 죽을 끓이려면 누군가 붙어서서 계속 저어야 하는데 이 제조기는 재료만 집어넣으면 저절로 죽이 됩니다. 유사품이 있지만 건더기가 있는 죽이 아니라 수프 정도만 끓일 수 있어요.”

✚ 대기업과는 어떻게 경쟁했나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최고의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객, 특히 주부 등 여성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려 의사결정 단계마다 소비자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반영했습니다. 우리는 제품 아이디어가 나오면 과연 고객이 필요로 하고 실제로 갖고 싶어하는지 조사해 일정한 점수가 돼야 개발에 들어갑니다. 개발 단계에서 디자인·사양 등을 결정할 때 또 조사를 하고, 개발하고 나서도 피드백을 받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고객이 이런 기능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 추가하기도 하고요. 이런 프로세스 내지 시스템이 품질 경쟁력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봐요.”

✚ 대기업들도 그렇게 하지 않나요? 소비자 조사는 기본 아닙니까?
“공급자 마인드랄까, 스스로 그 정도 노하우는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개발 일정이 지연되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고객 가치를 우위에 두지 않으면 시스템을 갖춰도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아요.”

✚ 혁신도 다들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혁신은 우리 회사 사람들의 DNA라고 할 수 있어요. 지속적으로 혁신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부서 사람들이 모여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신제품과 생산성 향상 아이디어를 놓고 수평적인 대화를 합니다.”

✚ 한경희생활과학의 전신인 한영전기 시절부터 따지면 내년에 창업 15돌을 맞습니다. 나름의 경영철학이 정립될 만도 합니다만.
“고객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삶의 질을 높임으로써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는 게 우리 회사의 목표이자 모토입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문제점을 찾아내 솔루션을 제공해 왔죠.”

그는 한달 전 출시한 보온히팅쿠커를 예로 들었다. 주부들은 몇시간 공들여 만든 음식이 다 식어 남편이나 아이가 맛없게 먹으면 속이 상한다고 그는 말했다. 데워서 먹으면 좀 나은데 여자가 집을 비웠을 때 한국 남자들은 자기 손으로 데워 먹는 법이 거의 없다는 것. 아이의 경우 가스레인지 조작이 위험해 데워 먹게 할 수 없다.
 
보온히팅쿠커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밥이건 국이건 전용 냄비에 음식을 만들어 냄비째 식탁 위의 보온통에 집어넣으면 5시간 동안 60도 이상으로 유지된다. 이 제품 덕에 가족에게 따스한 음식을 먹이려 외출을 제대로 못하는 주부들이 주방에서 해방될는지도 모른다. 10년 전 이 회사가 내놓은 스팀청소기 덕에 무릎 꿇고 하는 걸레질에서 주부들이 해방됐듯이.

고객가치 우선시해야 최고 가능

한경희를 제품명에 쓰자고 제안한 사람은 그의 남편(고남석 한경희생활과학 회장)이었다. 창업 초기 국내 최초로 한국형 스팀청소기를 ‘스티미’라는 브랜드로 출시하자 유사품이 쏟아져 나왔다. 광고할 돈은 없고 차별화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국내 최초로 제대로 만든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2002년 2세대 제품을 출시하면서 CEO의 이름을 붙였다. 미국 시장에서도 HAAN이란 브랜드로 팔린다.

✚ 한경희의 브랜드 전략이 뭔가요?
“브랜드는 하나의 유기체로 사람이 그렇듯이 태어나서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칩니다. 또 브랜드는 기업의 목표와 같이 가는 거라고 봐요. 우리는 설립 때부터 고객의 삶의 질을 높이는, 세상에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런 목표, 창업 정신이 있었기에 그에 상응해 브랜드 가치가 성장했다고 봅니다. 쿠쿠, 락앤락 같은 업체와 달리 한경희는 확장성이 아주 좋은 브랜드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카테고리별로 제품 라인업을 구성할 때 브랜드 이미지와 맞는 것만 고릅니다. 브랜드 전략은 회사에 따라 다릅니다. 예컨대 부자재 제조업체 등 B2B 업체 중엔 생산성·가격경쟁력이 브랜드력보다 더 중요한 회사도 있어요.”

✚ 중견기업으로서 겪는 애로가 뭔가요?
“세제 혜택 등 지원이 줄기는 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중견기업으로 행세하는 게 불리해 중소기업으로 남는 회사도 있습니다. 제조 중소기업 전반이 겪는 일이지만 홈쇼핑 등 유통업체가 높은 영업 마진을 요구해 제조업 기반이 약해지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중소 제조업체로서는 손해를 보고라도 물건을 넘기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면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제조업체가 최저가 관리를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미국도 싸구려 제품이 넘쳐나면서 제조업 기반이 붕괴하자 정책을 바꿨는데 우리나라가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어요.”

✚ 한경희 제품이 ‘스팀의 다이슨’ 자리를 굳혔나요?
“저는 품질과 브랜드력 면에서는 그렇다고 봅니다. 다만 가격은 다이슨급이 아니에요.”

▲ 올 5월 한경희 사장이 인천 남구 로드숍 오픈식에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이라면 가격도 프리미엄 급이라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의 비전은 꼭 필요한 제품을 빈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겁니다. 그런 만큼 가격 면에서는 다이슨류를 따라잡을 생각이 없습니다. 고품질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게 더 가치 있는 목표 아닌가요?”

✚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시대적 과제를 대통령이 화두로 던졌다고 봅니다. 꼭 가야 할 길이고, 어떻게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정부가 시스템적으로 노력해야죠.”

국내 제조업 기반 붕괴 우려

✚ 정부에 주문하고 싶은 게 뭔가요?
“강소기업, 히든 챔피언이 많은 나라가 돼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입니다. 대통령도 대기업을 손볼 듯했지만 경제를 회생시키려 대기업과 손잡고 대기업이 원하는 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으로 클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 한경희생활과학은 강중기업 아닌가요?
“강소기업이죠.”
한 사장은 KBS 1TV의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 '황금의 펜타곤'에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 등과 심사위원으로 출연 중이다.

✚ 청년실업, 스펙 경쟁 등으로 어깨가 처진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창업을 해보세요. 젊을 때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경험입니다. 창업 환경도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일단 창업하려는 분야의 직장에 들어가 최소한 2~3년 영업을 해 보세요. 막상 창업을 하고 나면 영업이 중요합니다. 자식이 창업하겠다면 말리고 삼성전자에 취직하거나 공무원, ‘사士’자 돌림 전문직 종사자가 되기를 바라는 기성세대의 인식도 문제가 있습니다. 살 만한 세상이 됐다는 건 위험을 감수할 힘이 생겼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도 그만한 힘은 생기지 않았을까요?”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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