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누리 촌철살인

▲ 한국사학계 원로교수들이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개입을 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을 겪으면서 한국사 교과서 내용이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시대적 분위기에 눌려 큰 논란 없이 진보적 역사 해석이 자리를 잡았다. 그에 대한 반발인지 이번 교학사 교과서는 우파적인 경향이 짙다는 평가다.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뜨겁다. 한 출판사 교과서가 발단이 됐지만 역사 교과서 문제는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 어른들(교과서 집필자)의 ‘욕심’이 애꿎은 고교생 교과서에서 부딪치고 있다. 학자라면 논문을 통해 전문연구지나 학술대회에서 싸우는 게 맞지 상대도 없는 교과서에서 부딪치는 꼴이 볼썽사납다.
 
어른 욕심이 교과서에 투영

이들 학자 때문에 사회단체, 정치권까지 이념 분쟁이 번졌다. 교과서는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학문적 소신이야 어떻든, 대다수 학계 공감을 얻지 못한 내용이라면 교과서 서술은 자제하는 게 학자적 본분이다. 독자가 아직 역사적 사건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청소년일 때 더욱 그렇다.

한국사학자가 한국사 전 시대를 아우르는 통사를 쓰는 건 거의 ‘말년’에나 가능한 일이다. 고 이기백ㆍ김철준 교수와 한영우ㆍ이태진 교수 등도 그랬다. 그들도 자신이 전공한 시대 밖의 한국사는 다른 전공 학자의 논문, 저술 등을 두루 읽고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설通說을 소개했다. 혹 관심이 가는 새 의견도 신설新說로 내비치는 선에서 멈췄다. 개설서의 목적은 어떤 한 시대, 사건에 집착해 강조하기보다 전반적인 한국사 흐름을 짚어 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교과서 집필자들은 고등학교 한국사 개설서에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임하는 것 같다. 비판적 수용력이 떨어지는 청소년을 상대로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주입해 어찌하겠다는 얘기인지….

41년 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10월 유신 사태를 중학생 시절에 겪었다. 사회 시간에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조국 근대화’ 등의 유신 찬양 단어들을 딸딸 외워야만 했다. 고교 땐 국가검정 한국사 교과서를 배웠다.

그렇지만 그후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지식을 접하면서 역사에 대한 안목은 넓어졌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우리 역사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게 바뀌는 걸 봤다. 그 때문인지 근현대사에 대한 전체적 평가 및 대통령을 포함한 인물 평가를 섣불리 하지 못한다.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묻고 싶다. “논란을 일으키는 한국사 서술에서 학자적 생명을 걸 정도로 확신이 있는가?”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을 겪으면서 한국사 교과서 내용이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시대적 분위기에 눌려 큰 논란 없이 진보적 역사 해석이 자리를 잡았다. 그에 대한 반발인지 이번 교학사 교과서는 우파적인 경향이 짙다는 평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왜 학자들이 교과서 갖고 쌈박질인지 모르겠다. 학자답게 논문으로 다퉜으면 한다. 교과서를 읽는 이가 아직은 여러 측면을 살필 수 있는 나이가 아닌 중학생ㆍ고교생이다. 민주화 투쟁 차원의 ‘의식화’ 작업이 필요한 시대도 아니고, 일제시대처럼 역사 책 지어 독립운동하던 때도 아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근대화론과 친일, 6ㆍ 25, 이승만ㆍ박정희 등 전 대통령, 유신,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새 평가는 우리와 또 다른 시대를 살아갈 미래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하도록 하자. 학자답게 진지하게 임하자는 얘기다. TV에 나와 티격태격하는 것도 더 보고 싶지 않다.
 
학자는 논문으로 다퉈야

교과서가 이 모양이니 믿을 곳은 일선 교사들뿐이다. 학생들은 역사 교사를 존경한다. 자랑스럽거나 혹은 부끄럽지만 우리 역사는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겐 소중하다. 교과서야 어떻든 선생님들이 중심을 잡고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의 역사 지식을 ‘무책임한’ 교과서에 떠맡기지 말자. 후일 성인이 된 제자가 ‘아~ 나는 편향되지 않은 좋은 선생님에게 역사를 배웠구나’ 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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