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Part2]유통규제 무엇이 문제인가

새 정부 들어 대형유통채널을 규제하는 법안이 시행됐다. 그런데 대형유통채널은 물론 영세상인까지 ‘행복해졌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되레 외국계 기업만 콧노래를 부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왜일까. 유통전문가들은 갑을甲乙 프레임에 갇혀 진짜 해결책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꼬집고 있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 유통점이 급성장하면서 중소 유통점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는 대형마트보다 작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대도시에 이어 지방 중소도시로 확대되면서 골목상권과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 이유다. 하지만 18대 대선을 앞둔 2011년부터 경제민주화 논쟁이 본격화하면서 이 문제는 정책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흘러버렸다. 강자를 직접 규제해 약자를 상대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유통법을 통해 진입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했다. 상생법을 통해 사업조정제도를 강화했다.

그러나 규제 시행 후 1년이 지났지만 전통시장과 영세상인들이 실질적 혜택을 보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규제 전 시장에 진입한 중대형 규모의 점포 운영자들만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 국내 대형 점포들이 규제를 받는 동안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규제할 수 없는 외국계 업체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다.

애먼 소비자와 대형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던 영세 납품업자, 농민, 매장 직원 등의 또 다른 약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규제가 강화되자 대형 유통업체들은 신규채용계획을 철회하는 등 고용창출에 적극적이지 않고 민간소비만 위축시키고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의문이다. 물론 영세상인이 대형마트와 경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따
라 영세상인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지금처럼 ‘강자甲-약자乙 구도’의 이분법적인 방법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을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서 또 다른 병丙의 피해만 양산할 뿐이다.  영세유통점을 포함한 골목상권, 더 나아가 지역경제 전체의 활성화를 위한 ‘거시적 정책’이 필요하다. 다른 지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장소 마케팅(place mar keting) 전략 등이 필요하다. ‘장소’를 상품처럼 경쟁이 이뤄지는 기본단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장소가 상품화·소비화·마케팅이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되면서 장소자산(place asset)의 효율적 개발을 통한 마케팅 전략이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시적 정책’도 필요하다. 대형 유통점과는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중소유통업체의 조직화·협업화에 기반을 둔 공동구매, 상품개발, 판매촉진 등을 통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 소매점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급해 주고 수하·배송·보관·유통·가공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종합 도매업체를 육성해 중소유통업체 간의 자발적 체인형성 효과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직면한 유통산업의 문제는 대형유통업자와 영세유통업자의 이해관계만 해결하면 되는 2차 방정식이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3차·4차 방정식이다. 지금처럼 ‘규제’ 일변도의 해법으로는 2차방정식 조차 제대로 풀 수 없다. 3차·4차 방정식을 풀기 위한 냉철한 머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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