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행복경영

그는 창업 당시 친족 배제를,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만들며
2세 배제를 약속했다.

 
김종훈(64) 한미글로벌 회장은 국내 건설사업관리(CM) 시장을 개척했다. 한미글로벌은 국내 1호 CM 전문기업으로 1996년 설립 이래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20~ 25%). 세계 CMㆍPM(프로젝트총괄관리) 업계 순위는 18위, 미국ㆍ호주ㆍ중국ㆍ헝가리ㆍ베트남ㆍ두바이 등 40개국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또 9년 연속 ‘일하기 좋은 기업(GWPㆍGreat Work Place)상’을 받았다. 직원들은 10년 근속하면 두달간 유급 안식휴가를 가고(임원은 5년 주기), 회사는 입양아를 포함해 직원의 전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한다. “기업문화가 최후의 경쟁력”이라고 말하는 김 회장과 만났다.

✚ 창업 당시 친족 배제 원칙을 세웠고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2년 반 전 후계자 후보도 뽑았습니다. 당초 구상대로 만 65세가 되는 내년에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겁니까?
“두가지 면에서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우선 건설업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후계자 후보가 경영권 승계에 대해 자신 없어 하고, 이분이 관리자 역할은 잘하지만 회사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비즈니스와 시장을 지속적으로 개척하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공감대가 회사 핵심 인력 사이에 생겼어요. 그래서 회사 안팎에서 다시 대안을 찾기로 했고 그 바람에 저의 은퇴를 1~2년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고요.”

✚ 결국 후계자 후보의 리더십 문제, 리더로서 깡이 부족한 거군요.
“(웃음) 당시 사내에서 가장 나은 사람을 발탁했고 회사 안팎에서 위촉한 CEO선정위원회가 최종 후보를 결정할 때 저는 빠졌어요. 어쨌거나 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경영권 승계라는 배턴터치를 잘해야 합니다.”

2년 전 만났을 때 김 회장은 타고난 끈기와 깡이 샐러리맨 시절 이래 자신의 자산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에 특강하러 가서도 그는 “인생에서 깡이 중요하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밀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왜군에 맞섰기에 13척의 배로 해상권을 회복했다.”

 
✚ 김 회장에게 은퇴란 어느 선을 말합니까?
“최대주주로서 이사회 의장을 맡아 최소한의 견제를 하는 한편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아예 다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보유지분율은 20.42%,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 등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율은 44.91%이다.

✚ 한미글로벌 홈페이지의 조직도를 보면 고객이 맨 꼭대기에, CEO가 맨 아래 있습니다. 이게 조직도 이상의 의미가 있나요?
“건설 쪽은 일을 진행하다 보면 당사자 간에 서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충성고객이 비교적 많아 기존 고객과의 재계약이 흔해요. 순추천고객지수(NPSㆍNet Promoter Scoreㆍ추천 의향 문항을 11점 척도로 측정한 후 추천고객비율에서 비추천고객비율을 빼 산출)가 55~60점인데 이 정도면 외국의 유명 명품업체 수준이죠. 우리는 고객가치를 굉장히 중시하는데 그래서 미션의 첫째 항목도 ‘최상의 품질과 신뢰를 통해 고객가치를 창출한다’입니다. 다섯가지 핵심가치 중에서도 맨 앞에 뒀었는데 몇년 전 정직을 그 앞에 재배치했죠.”

고객이 맨 위에 있는 특별한 조직도

✚ 재계약을 잘하는 비결이 뭔가요?
“기본적으로 서비스 품질 등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건설업을 하면서 안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주자 대신 건설 프로젝트를 총괄하면서 발주자를 안심시킬 만한 서비스를 하는 거죠. 시공사로 하여금 고품질 시공을 하게 하면서도 당초 일정을 준수케 함으로써 저희가 받는 용역비의 몇배에 달하는 기여를 합니다.”

CM은 기획ㆍ설계에서 시공ㆍ감리에 이르기까지 건설사업의 전 과정을 건축주를 대신해 관리ㆍ감독하는 일이다. CM 전문기업에 이 일을 맡기면 건설 프로젝트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공사비가 절감될뿐더러 공기가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

한미글로벌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의 CM을 맡아 34개월 만에 완공했다. 악취를 풍기던 거대한 쓰레기매립장은 그림 같은 녹색의 그라운드로 변모했다. 공기가 4개월 단축됐고 공사비는 40억원 절감됐다. 한미글로벌은 2년여 전 미국의 종합 엔지니어링 업체 오택을 인수했다. 신도시를 수출하는 비즈니스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 오택 인수 성과에 대해 자평을 한다면?
“재작년에 인수한 후 2년 연속 적자였지만 올해 250만 달러의 흑자를 낼 거로 예상합니다. 다만 해외에서 한미글로벌과의 시너지를 내는 게 핵심 목표였는데 중동에 분 민주화 바람 등으로 아직까지는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어요.”

✚ 올해 경영성과는 어떤가요?
“건설 시장이 굉장히 안 좋아 재무적 성과는 내세울 게 없고요. 중국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에의 참여, 리비아 사태로 중단됐던 리비아 공사의 재개 및 수금, 오택의 흑자 전환, 미국 LA 항만건설 프로젝트 수주 및 진행 등을 성과로 꼽고 싶습니다.”

✚ 위기의 건설 산업, 활로는 뭔가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국내 시장이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인데 세계 시장은 무려 8조 달러에 이릅니다. 특화된 능력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진출할 수 있고 사업 기회가 널려 있습니다. 중국만 해도 1조5000억~1조7000억 달러 시장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건설업체는 경쟁력도 잘 안 보이고 전략적으로도 잘하는 거 같지 않아요. 성과를 내고 있는 회사도 별로 없고요.”

✚ 그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뭡니까?
“건설 관련 제도와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수주 산업인 건설과 조선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처음부터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한 반면 건설은 내수형 체제에 안주했어요. 건설 관련법이 300개가 넘는데 대부분 글로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규제입니다.”

건설도 글로벌 스탠더드 필요해

✚ 결국 건설 쪽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우리 건설사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법과 제도의 선진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사실 건설 분야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나라 금융회사가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관치금융 내지 각종 규제 탓이듯 법과 제도의 선진화 없이는 일등 기업이 나오기 어려워요.”

✚ 행복경영에 이어 감사경영을 시도하던데요?
“그동안 외국에서 들여온 GWP 운동을 줄기차게 했는데 우리 현실에 잘 안 맞는 것도 있고 다소 오해도 있는 거 같습니다. 단적으로 GWP 운동을 복리후생 증진 프로그램으로 보는 시각은 제한적이에요. 그래서 행복한 직장을 추구하는 행복경영으로 방향을 바꿨고 그 한 축이 바로 감사경영입니다. 우리 회사가 사회공헌 활동의 의무화, 월급 1% 기부, 건설산업 선진화를 위한 노력 등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아 망설이다가 지난 10월 감사경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젊은 사람들로 조직문화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는데 얼마 전 그 이름을 행복경영 태스크포스로 바꿨습니다. 제가 팀장을 맡았고요. 한마디로 구성원의 행복에 경영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겁니다. 경영 환경이 안 좋아 자칫 공허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직원이 행복하면 성과가 창출된다는 가설을 믿습니다. 감사도 생활화하면 분명 성과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좋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멋진 활동을 벌이더라도 기업이 망하면 부질없습니다. 행복경영도 구성원이 행복해져 스스로 몰입을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기에 하는 거예요.”

직원이 행복하면 높은 성과 창출

✚ 건축사사무소 ‘따뜻한동행’의 설립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회사가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을 만들어 그동안 100개의 사회복지시설을 직접 리모델링하거나 새로 지었습니다. 이 일을 앞으로 독립적으로 할 주체가 건축사사무소 따뜻한 동행이고 장차 사회적기업으로 등록할 겁니다. 여기서 일할 분들은 50대 말에서 60대에 이르는 은퇴자입니다. 은퇴자의 재취업 모델이기도 하다는 거죠. 이분들은 인건비가 비싸지 않아 수요처로서도 부담이 작아요.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이분들이 활약할 분야는 넓어요. 여기서 수익이 나면 다시 사회공헌 활동에 환원할 겁니다. 복지의 선순환 모델이죠.”

한미글로벌의 신입사원과 젊은 사원은 입사할 때 자녀를 넷 낳겠다는 서약을 한다.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또는 예비 배우자)와 부모까지 서약을 하게 한다. 김 회장은 얼마 전 자녀 넷 낳기 정책을 환기하는 글을 개인 홈페이지(www.kimjonghoon.com)에 실었다.

✚ 저출산에 대한 문제의식엔 공감하지만 서약까지 하게 하는 건 좀 과격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구성원 몇이 ‘넷 출산은 자신이 없다’ ‘애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개인의 삶에 대해 회사가 강요할 수 없다’는 댓글을 달았더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는 국가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는 어젠다입니다. 산부인과, 유아복 업체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라 전 산업 전 업종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 경제의 활력을 빼앗아갈 거예요. 우리 회사는 친생자는 물론 입양아까지 자녀수에 관계없이 대학 학자금까지 지원합니다. 경영이 호전되면 우선적으로 육아 관련 지원을 확대할 거고요. 이런 특별한 회사의 구성원이라면 자신이 한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출산 해소에 누군가는 앞장을 서야 합니다. 사실 젊은 직원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저로서는 처벌할 생각이 없고, 실은 그럴 수단도 없어요.”

▲ 지난해 봄 송도에 근무하는 한미글로벌 직원들이 명심원을 찾아 장애우들과 인근 동춘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 한미글로벌에 잠재적인 ‘승자의 덫’이 있다면 뭔가요?
“우리가 국내에서 CM이라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냈고 줄곧 1등 회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1등에 안주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자기계발과 혁신의 노력을 좀 소홀히 했다고 봅니다. 어중간한 대기업에 불과한데 대기업병 같은 현상이 나타났고요. 우리 회사는 고급 인력이 모였고 삼성ㆍLG 같은 굴지의 대기업엔 미치지 못하지만 동업타사보다 보수가 상당히 높습니다. 그만큼 용역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데 그러면 분명히 차별화를 해야죠.”

✚ 정직을 최고의 핵심가치로 하는 기업의 오너로서 대기업 오너들이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를 어떻게 보나요?
“안타까운 일이고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한 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선진화돼 가는 과정이고 자정기능이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창업은 소유 경영자가 하는 거지만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죠. 선진국은 오너 경영인도 있지만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립돼 있습니다.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문경영인에게 단기 업적을 요구해선 안 돼요. 전문경영인에게 필요한 것도 장기적 리더십입니다.

저출산 해소, 기업이 앞장서야

✚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과거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지만 여전히 맞는 말 아닙니까? LH공사의 부채가 100조원이 넘는데 민간기업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는 할 일과 안 할 일을 구분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민간에 맡기고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야 돼요.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법과 제도, 시스템이 이제 안 맞는 옷이 돼 버렸습니다. 우리 사회의 인프라를 다시 구축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2만 달러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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