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부실ㆍ비리 사태 원인분석

▲ KB국민은행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 부실‧비리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다.

잘나가던 국내 1등 은행 ‘KB국민은행’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대형 부실ㆍ비리사건이 고구마 줄기 따라오듯 줄줄이 터지고 있어서다. 금융 금융전문가들은 KB국민은행이 ‘세가지 화살’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최대의 고객기반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 ‘2013 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NCSI)’ 은행부문 7년 연속 1위, ‘2013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조사(K-BPI)’ 은행부문 15년 연속 1위, 금융소비연맹이 조사하는 ‘가장 믿음직한 금융사’ 은행부문 3년 연속 1위 은행. KB국민은행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수식어다.

 
여기까진 빙산의 일각이다. KB국민은행은 올 9월말 자산규모 270조원, 원화예수금 점유비율 21.1%, 원화대출금 점유비율 19.9%로 시중은행 중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대출잔액은 9월말 기준 203조원에 달한다. 이런 국민은행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바깥에서 불어온 바람 때문에 위기에 몰린 게 아니다. 내부비리ㆍ부실문제가 곪아 터졌기 때문이다.

포문을 연 것은 일본 도쿄東京지점의 부당대출 사건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자체조사를 통해 도쿄지점장과 직원 2명이 연루된 부당대출 사건을 적발했는데, 2008년부터 5년 동안 20개 이상의 현지 법인에 1700억원대의 부당대출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한 기업이 받을 수 있는 대출금액이 제한돼 있다는 점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명의까지 도용해 부당대출을 했다. 그 과정에서 챙긴 수수료는 비자금 조성에 사용됐고, 이 가운데 20여억원의 돈이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그 금액 중 일부가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확인돼 비자금을 로비에 사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문제가 된 도쿄지점장은 2006년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적이 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해외 지점장과 같은 주요 요직에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던 인물을 선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은행 핵심 인물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인사를 결정할 때 영업실적만 중요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전제한 뒤 “다른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실적만 좋으면 된다는 실적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부실투자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BCC의 부실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BCC의 부실이 심각하기 때문에 영업정지 조취를 취할 수 있다’는 검사결과를 금융감독원에 보내면서 재점화됐다. 국민은행은 BCC의 2대 주주다.
 
2008년 9392억원을 투자해 BCC 지분의 41.9%를 사들였지만 투자실패로 4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BCC 부실투자를 이유로 2010년 9월 13일 강정원 전 은행장이 문책경고의 징계를, 감사위원ㆍ부행장ㆍ사외이사 등 5명은 주의적 경고의 징계를 받았다.

부실ㆍ비리사건으로 무너지는 1등 은행


국민은행 관계자는 “BCC 부실투자 의혹은 이미 공개된 내용”이라며 “부실투자와 지분부당취득을 내용으로 징계를 받은 사안이다”고 말했다. 그는 “BCC 장부가에 대한 평가가 삼정KPMG와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이뤄졌다”며 “두 회계법인의 장부가 평가액에서 차이가 나타난 것이지 분식회계가 있었던 건 아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이 보유한 BCC 장부가에 대해 삼일회계법인은 2800여억원(2012년 기준)으로 평가했고, 삼정KPMG는 1400여억원(올 5월 기준)으로 평가해 1400여억원의 차이가 있었지만 협의를 거쳐 1202억원의 손실을 2분기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은행은 ‘현지 법인의 잦은 인사교체를 자제하고 해외지점 인력의 임기를 보장하라’는 중국 금융당국의 요청을 무시하고 법인장ㆍ부법인장을 동시에 교체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이 국민은행을 직접 제제하진 않았지만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27일 예정됐던 기업은행의 베이징지점 개소식이 중국 금융당국의 요구로 무기한 연기됐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법인장과 부법인장의 임기가 내년 1월까지였다”며 “인수인계를 위해 인사발령이 임기보다 빨리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국민은행의 실무선이 중국정부의 요청을 경영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은행의 내부 보고시스템에 구멍이 뚫렸음을 의미한다. 올 3월 카자흐스탄 금융당국이 자금세탁 혐의로 BCC의 일부업무를 1개월간 정지하고 이를 통보했지만 이 역시 보고가 누락됐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융당국의 요청이 주요 경영진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며 “국민은행의 내부기강이 얼마나 해이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통합 과정에서 파벌이 형성됐다”며 “이런 파벌이 업무 보고 과정에 작용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구멍 뚫린 내부 보고시스템

국민은행 비리 가운데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국민주택채권 위조 사건이다. 본점 주택기금 직원이 2010년부터 최근까지 만기가 다가오는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90여억원을 횡령했다. 이 과정에서 영업점 직원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조직적 범행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범죄에 이용된 국민주택채권은 2003년 이전에 발행된 물량이다.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한 직원은 소멸시효가 다가오는 채권을 잘 찾아가지 않는다는 점도 교묘하게 악용했다.

부당 이자 환급 사건도 발생했다. 국민은행이 2010년부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보증부대출을 해주고 받은 부장 이자 환급액을 허위 보고했다. 국민은행은 부당 이자 55억원을 환급하겠다고 6월에 보고 했지만 실제로 환급된 금액은 10여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 이건호 국민은행장은“철저한 반성과 근본적 쇄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KB국민은행의 비리ㆍ부실 사건은 고구마 줄기 따라나오듯 줄줄이 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과 안일한 금융감독의 관리ㆍ감독시스템, 관치금융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꼬집고 있다.

강형구 금소연 금융국장은 “관치금융에서 비롯된 인사시스템과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문제”라며 “금융당국의 사후 수습적인 관리ㆍ감독도 비리를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성장시대엔 내부통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내부통제 시스템의 개혁과 직업 정신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관치금융을 하루빨리 근절해야 한다”며 “인사시스템의 자율권이 보장되고 내부인사와 능력인사 위주의 인사정책이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형구 금소연 금융국장은 “금융당국이 정기검사와 수시검사를 철저히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며 “동양증권 사태에서 실추된 금융당국의 체면을 살리려는 만회기회로 삼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11월 27일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쇄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요 은행의 인사를 쥐락펴락하는 관치금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국민은행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게 금융업계 전문가의 의견이다. 이제 문제를 일으킨 가지가 아닌 뿌리를 뽑아야 한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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