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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16

진린 ‘순신 없는 승리’ 탐하다

2016. 06. 03 by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진린은 이순신의 병위를 보고 크게 놀랐다. 13척의 병선으로 300여척의 적을 격파한 명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병선이 13척이 아니고 온 바다를 덮은 대함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진린은 이순신에게 전공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고금도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전투에서도 진린은 ‘나홀로 공격’을 감행했다.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이 5000 이상의 수군과 병선 70여척을 끌고 강화도로부터 내려온다고 소식이 왔다. 명목은 청병請兵이었지만 실제로는 이순신의 행동을 견제 또는 간섭하는 게 목적이었다.

진린은 한양을 떠날 때부터 온갖 행패를 부렸다. 이를 본 유성룡은 한탄했다. “가석하다. 이순신이 또 낭패하겠군. 순신은 혼자라도 일본 수군을 넉넉히 이기거든 무엇 하러 명나라에 또 청병을 한단 말이오? 순신이 진린과 한 군중에 있게 되면 순신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될 것이요, 도리어 순신에게 원치 아니하는 일을 시킬 것이요, 순신이 만일에 거스르면 노할 것이니, 이러고야 아니 패하고 어찌하오?”

이 무렵, 이순신은 나주 밖 섬 무인도에 들짐승 사냥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李純信, 안위, 이응표, 우치적, 이정충 등 이하 8000명의 장사들은 호랑이를 때려잡거나 곰과 멧돼지를 쏘아 맞히거나 사슴과 노루를 잡기 위해 종일 사냥을 하였다. 이순신도 뿔사슴 서너 마리를 손수 활을 쏘아 잡았다. 들짐승 수천 마리를 잡은 뒤에 잡은 수를 계산하여 포상하였다. 이때에 영의정 유성룡의 서간이 왔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溽暑海中 不審孝履支勝否 懸仰懸仰 陳提督璘 又將合陣於其處 凡百策應調度之事 專恃令善處 望須協心同力 以成大勳 都監炮手百名下去 憑候動靜 伏惟爲國保重

“무더운 날씨에 바다에서 효리(상중에 있는 사람)께선 잘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하며 우러러 생각하오. 진린 제독이 곧 그곳에서 군진을 합하고자 하는데, 갖가지 책응과 조치 등은 잘 처리하실 것으로 믿소. 바라건대 모름지기 협심 동력하여 큰 공훈을 이룩하시오. 훈련도감의 포수 100명이 내려가는 편에 보내오니 부디 나라를 위하여 몸을 보중하기 바라오.”

▲ 명나라 장군 진린을 이순신은 술과 안주를 베풀면서 맞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유성룡은 훈련도감 포수 100명을 순신에게 보내어 주었다. 한양을 지키기 위해 유성룡이 육성한 도감포수 5700명 중 일부였다. 이순신은 진린을 환영하기 위해 200여척으로 결성한 대함대에 오색 기치를 달고 환영하는 예포 수백방을 놓았다. 위의를 갖추어 멀리 바다에 나아가 학익진을 벌리고 진린의 배를 맞았다. 때는 1598년 7월 16일이었다.

이순신의 위세에 놀란 진린

진린은 이순신의 병위를 보고 크게 놀랐다. 13척의 병선으로 300여척의 적을 격파한 명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병선이 13척이 아니고 온 바다를 덮은 대함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빠르게 병선을 늘린 건 놀라운 일이었다.
 
진린의 군사가 고금도 새 선창에 하륙하자 이순신이 몸소 진린 이하 총병 등자룡鄧子龍, 유격장군 계금季金, 양천윤梁天胤, 복일승福日昇, 왕원주王元周, 이천상李天常, 강린약江鱗躍의 무리를 새로 건축한 아문으로 인도했다. 또 부하를 시켜 모든 장병을 계급을 따라 각기 병영 내로 인도하게 하였다. 명나라 장병들도 이름이 높은 조선의 명장 이순신을 보자고 다투어 앞을 나서는데 순신의 풍채는 팔척장신에 용 수염 범 눈썹으로 의기가 헌앙하였다.

명나라 장병들이 자리를 잡을 만한 때에 이순신은 미리 준비하였던 산해진미의 성찬을 내놨다. 또한 1000독의 좋은 술로 병과 잔을 풍성하게 해줬다. 그 많은 명나라 장졸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어 준 것이다.

진린은 자기네 나라 북경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더할 수 없이 만족하였다. 그 말뜻은 북경을 떠난 뒤로 이때껏 이렇게 유쾌하고 풍족한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다는 거였다. 성품이 오만하고 사나운 진린은 고금도에 도착하면 책을 잡아 이순신을 혼낼 생각이었지만 잔칫상을 받고선 그러질 못했다.

주육을 배 터지도록 먹은 명나라 장졸들도 취중에 이순신을 두고 “과연 어진 장수다”고 칭찬했다. 혹자는 “우리가 세상에 나서 처음 먹는 성찬이다. 한양에서도 이렇게는 못 먹었다” 했다. 말끝에는 “참 동국東國의 영웅이다” “한신 제갈량이라도 이렇게는 못한다”라고 떠들었다. 조금이라도 책을 잡혔더라면 이순신은 아마도 모욕을 당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겼다. 진린이 고금도에 온 지 이틀 만에 적의 수군 일대가 고금도에서 멀지 않은 녹도를 습격했다. 또한 선봉선 2척이 절이도에까지 들어왔다는 경보를 받았다.

이순신은 ‘모든 군무를 진린의 절제를 받으라’는 선조의 밀령을 받았으므로 그 경보를 진린에게 보고했다. 이때야말로 명나라 수군의 무위를 보일 첫 번째 기회라고 여긴 진린은 이순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유격장군 내조흡來祖歙 왕원주, 천총千總 강린약 정문린丁文麟, 파총把總, 공진龔璡, 진국경陳國敬 등에게 병선 50척을 주고 적을 무찌르라고 하였다.

이순신이 진린을 보고 “먼 길을 왔을 뿐만 아니라 이곳의 수세水勢 형편을 잘 알지 못하니 소인의 병선으로 돕게 함이 어떠하올지”라고 말했다. 진린은 이순신에게 공을 뺏길까 하여 길만 가르쳐 달라고 했다.

진린의 욕심과 순신의 지혜

진린의 병선 50척은 보무당당하게 녹도를 향하여 달리고 이순신의 병선은 멀찌감치 떨어져 그 뒤를 따랐다. 이순신은 우수사 안위에게 병선 20척을, 녹도만호 송여종에게 병선 8척을 주면서 각기 밀계密計를 내렸다. 명군과 일본군이 접전을 해 포연이 자욱하거든 그 연기를 틈타 싸움터로 돌진해 명병을 구원하라는 거였다.

이윽고 전투가 벌어졌다. 명나라 함선이 먼저 방포하고 도전하였다. 적의 함대는 잠시 관망하는 모양을 하더니 곧바로 응전하였다. 가장 두려워하는 이순신의 함대가 아니고 명나라 함대인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격전이 벌어진 약 1시간, 두 함대는 점점 서로 전진 접근하여 단병전이 일어났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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