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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17

“이순신을 소국의 장수로 보지 마라”

2016. 06. 10 by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안위는 몸소 선봉이 되어 대포와 화전을 퍼부으면서 맹렬히 쳐들어갔다. 적은 사력을 다하여 격전하였지만 감당해 내지를 못했다. 송여종의 복병선 8척도 적선의 앞뒤를 공격했다. 낭패를 당한 적선은 어지럽게 혈로를 뚫고 빠져 달아났다. 명병은 패하고 조선군은 이기자 명 수군 제독 진린은 분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큰 공을 진린에게 양보했다.

진린의 병선 50척은 보무당당하게 녹도를 향하여 달리고 이순신의 병선은 멀찌감치 떨어져 그 뒤를 따랐다. 이순신은 우수사 안위에게 병선 20척을, 녹도만호 송여종에게 병선 8척을 주면서 각기 밀계密計를 내렸다. 명군과 일본군이 접전을 해 포연이 자욱하거든 그 연기를 틈타 싸움터로 돌진해 명병을 구원하라는 거였다.

이윽고 전투가 벌어졌다. 명나라 함선이 먼저 방포하고 도전하였다. 적의 함대는 잠시 관망하는 모양을 하더니 곧바로 응전하였다. 가장 두려워하는 이순신의 함대가 아니고 명나라 함대인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격전이 벌어진 약 1시간, 두 함대는 점점 서로 전진 접근하여 단병전이 일어났다.

멀찌감치 있던 이순신의 눈에 적의 검객이 명나라 병선 4, 5척에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명나라 전선 3척이 완전히 일본군에게 점령을 당하자 나머지 명나라 병선들은 어지럽게 되어 퇴각하였다. 그 뒤를 따라 적선은 질풍같이 추격하여 온다.

이순신은 진린의 뒤를 따라 돌아와 술과 안주를 베풀어 민망함을 풀어주면서 “승부는 병가의 상사라 너무 상심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안위는 벽파진에서 순신의 쓰던 병법을 그대로 적용해 몸소 선봉이 되어 대포와 화전을 퍼부으면서 맹렬히 쳐들어갔다. 적은 사력을 다하여 격전하였지만 전법이 명군과는 달리 강해서 감당해 내지를 못했다.

이때 숨어서 전황을 엿보고 있던 송여종의 복병선 8척이 불의에 돌연히 내달아 길을 가로막아 안위의 함대와 앞뒤로 협공하였다. 낭패를 당한 적선은 어지럽게 혈로를 뚫고 빠져 달아났다. 송여종은 적선 6척을 바다에서 전포하여 머리 69급을 베었다.

▲ 이순신의 성품에 반한 진린은 장졸들에게 “나를 대하듯 이순신을 대하라”고 명령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안위는 이순신에게 되찾은 명나라 함선 3척과 그 속에 있는 중국 물건, 적의 머리 40급을 바쳤다. 송여종은 일본 병선 6척과 머리 69급을 바쳤다. 승전하고 돌아온 조선 군사는 의기당당하였으나 명나라 군사는 위축되었다. 명병은 패하고 조선군은 이겨서 기세가 왕성한 것을 본 진린은 분이 나서 명나라 병선의 주장이던 유격, 내조흡, 천총, 강린약을 잡아들여 목을 베려 하였다.

순신은 이 광경을 보다가 진린에게 안위, 송여종 두 장수가 베어온 적의 수급 109급, 명나라 함선 3척, 일본 함선 6척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린은 천조天朝의 도독으로 조선 군사까지 지휘할 권한이 있은즉 모두 노야의 공이 아닐 리가 없소.”

진린은 순신이 자신의 공을 자기에게 양보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래서 내조흡, 강린약 등을 살려주고 분함과 부끄러움이 풀려서 순신의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장군의 대명을 많이 들었더니 과연 명불허전이오!”

진린은 이날 본영에 돌아와 명나라 장병에게 “지금 이후로 이순신 통제를 소국 사람으로 보지 마라. 또 그 절제를 나의 절제같이 받으라”고 영令을 내렸다. 그날 저녁에 내유격, 왕유격, 강천총, 정천총을 위시하여 명나라 제장들은 패군한 죄를 면한 것을 순신의 은덕이라 하여 순신 앞에 머리를 숙여 감사하였다.

이때 안위, 송여종의 무리가 실망하여 순신을 보고 읍소하였다. “소인 등이 사력을 다하여 전승한 공을 명의 장수에게 빼앗겼으니, 어찌 억울하지 아니하오리까.” 순신은 웃으며 “이처럼 더운 날씨에 적의 수급은 장차 부패될 물건이니 저들에게 주는 것이 무엇이 애석하리오. 자네들 공훈은 내가 우리 성상에게 장계를 올려 포창할 것이니 염려할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장계 초본을 내어 보였다.

안위, 송여종은 황연히 꿈을 깨듯 깨닫고 감복하였다. 후일에 선조는 순신의 장계를 보고 무릎을 쳐 이순신의 사람을 다루는 수단을 찬양했다. 또한 그 오만한 진린을 감복하게 만들었다 하여 교유서를 내려 칭찬하고 안위, 송여종에게도 벼슬을 올려 포상하였다.

적장 모리민부, 종의지의 무리가 연전연패한 뒤에 소서행장은 이순신의 세력에 위압돼 변사 요시라를 한성으로 보냈다. 일전에 써먹었던 반간계를 다시 한번 사용해 보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경략사 양호에게는 화의를 청하였다.

그러자 양호는 요시라를 결박하여 꿇리면서 이렇게 호령했다. “이놈, 네 죄를 아느냐? 권율을 속이고 김응서를 매수 우롱하고 수군의 장성長城인 이순신을 반간계로 무함하고 원균을 대해로 꾀어내 삼도 수군을 전멸하고 한산도를 점령한 뒤에 남원을 함락하고 전주성을 공략하였거든 또 무슨 흉계를 품고 나를 찾느냐?” 그러면서 형장 80대를 때려 북경으로 압송하여 처참 효시하였다.

오만함 버리고 고개 숙이다

이후 양호는 총독 형개와 협의하고 군을 삼로로 나눴다. 동로를 맡은 제독 마귀에겐 군사 2만4000명을 거느리고 울산의 가등청정을 치게 했다. 서로는 제독 유정에게 맡겼는데, 이방춘, 우백영, 남방위藍芳威, 이녕, 조희빈曹希彬, 오광吳廣 등 제장의 군사 1만3000인을 거느리고 순천의 소서행장을 치게 했다. 중로를 맡은 제독 동일원에겐 도관塗寬, 학삼빙郝三聘, 엽방영葉邦榮, 노득공盧得功, 모국기, 안본립安本立, 제갈수諸葛 등 군사 1만3000명을 거느리고 사천의 도진의홍을 치게 하였다.

아울러 수군제독 진린에겐 강화도 이북에 수비하고 있는 수군 허국위許國威, 장량상張良相, 심무沈懋, 오유림吳惟林의 군사와 남하한 등자룡, 계금, 양천윤, 왕원주, 복일승, 이천상, 내조흡, 왕계여王啓予 등 제장의 군사 도합 1만3200인을 배속시켰다.

하지만 고금도에 정착한 진린의 군사들은 조선 백성을 학대하고 재물을 약탈하면서 난리를 쳤다. 그래서 백성들은 ‘견딜 수 없다’며 순신에게 제소를 했다. 명나라 장수들의 버르장머리란 어쩔 수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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