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주요메뉴

본문영역

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20

탐욕의 유정, 소서행장 뒤를 봐주다

2016. 07. 01 by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과 육군대장 유정은 힘을 합쳐 소서행장 군을 치기로 했다. 진린은 약속을 지켰지만 웬일인지 유정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진린은 유정을 나무랐지만 유정은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유정은 퇴각하는 소서행장을 돕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소서행장의 군사는 종의지, 모리민부 등의 군사와 힘을 합쳐 이순신에게 대항하려 했다. 하지만 큰 손해만 입고 군사가 많이 죽었다. 썰물을 만난 이순신의 함대는 성의 북쪽까지 못 들어왔지만 유정의 육군은 달랐다. 오두거五頭炬라는 횃불을 가지고 쫓아와서 성을 치고 물러가기를 밤새도록 하면서 소서행장의 군사를 괴롭혔다.

이튿날 새벽 조수 때 이순신의 병선이 성의 북쪽 개울로 들어가 소서행장의 군사와 싸우다가 조수가 빠지면 물러갔다. 소서행장은 이순신의 병선이 또 밤을 타서 들어올까 염려하여 성북 개울 위로 토성을 쌓는 등 수군의 공략을 방비했다.

다른 한편에선 유정의 군사들이 대나무 사다리를 성 가까이 세워 놓고 성 안을 탐망했다. 그 이튿날 유정이 대장기를 세우고 성으로 들어가려 하자, 소서행장의 군사들은 포루 위에서 대포와 돌팔매로 방어했다. 또한 불시에 성문을 열고 나와 사다리에 불을 붙인 뒤 유정의 군사 800여명을 칼과 창으로 찔러 죽였다. 생각보다 거센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유정은 물러났다.

다음날 유정은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과 약속한 뒤 함께 성을 공격하기로 했다. 진린의 군사는 약속한 대로 성으로 들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곤경에 빠졌다. 조수가 빠져 병선이 모두 갯바닥 위에 얹혔던 거다. 

적군들은 이 모양을 보고 갯바닥으로 들어가 명나라 수군을 죽였다. 병선에도 불을 질러 36척이 일시에 타버렸다. 이런 광경을 앉아서 볼 수 없던 이순신은 병선 3척을 보내어 구원을 시도했다. 그때 진린의 큰배 3척이 갯벌에 박혀 조수가 들어도 뜨지 못해 소서행장의 군사에게 화공을 당하고 있었다.

진린의 제장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이순신의 부하 해남현감 유형이 이런 계책을 쓰자고 주장했다. “배 3척을 연이어 묶게 하고 다른 배에 올라서서 일시에 줄을 끕시다.”

먼산 불구경하는 유정

▲ 벼랑에 몰린 소서행장은 마지막 방법으로 ‘뇌물’을 썼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 계책은 성공했다. 배가 물 위에 떠서 나왔다. 순신과 진린은 그 유형의 재략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런데 끝내 유정의 군사는 진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구하러 오지 않았다. 어찌 됐든 전날 싸움에서 대패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진린은 다시 병선을 이끌고 개울로 들어가 소서행장의 군사와 싸웠다. 하지만 유정의 육군은 또다시 나서지 않았다.

진린은 상륙하여 유정의 진으로 들어가 유정의 ‘수자기帥字旗’를 떼어 내려 찢으며 이렇게 말했다. “육군이 이 모양이니 어찌 패하지 않겠나? 수군은 들어와 싸우는데 보고만 있단 말인가? 참으로 고약한 사람이로군!” 유정은 얼굴이 흙빛같이 변하며 답했다. “나는 수하에 장수다운 사람이 없으니 낸들 혼자 어떻게 하오?” 은연히 수하 제장 중에 이순신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의미로 사죄의 말을 하였다.

진린은 다시 소서행장의 진영을 공격하려 했다. 진린이 상륙하는 것을 본 순신은 행여나 또 실패할까 하여 자기의 아병牙兵 700인과 승군 300인 합 1000인으로 수군육전대水軍陸戰隊를 조직했다.

승군은 승장 자운과 혜희, 아병牙兵은 송희립, 임계형林季亨, 김대인金大仁, 손문욱孫文稶 등 무용이 절륜한 맹장에게 인솔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성의 북쪽 개울로 들어가 진린의 후원으로 상륙, 천마산天馬山에 웅거하였다.

소서행장의 군사 1만여인이 쳐들어온다. 순신은 곧 군사를 나누어 산 뒤를 넘어 좌수영 쪽에서 쫓아오게 했다. 그렇게 산 위에 와서 합세하는 모습을 보이고 또 군사의 복색을 여러 번 바꾸어 입게 하였다. 적이 멀리서 바라본즉 순신의 군사는 청군, 흑군도, 홍군도 많아  감히 쳐들어오지를 못하였다.

순신은 상륙하기 전에 미리 익신益新 포구에 거함 수십척을 세워놓고 인형을 만들어 배 위에 세워놨다. 또한 청죽림靑竹林이란 대밭에서 대나무 수천 자루를 베어 와서 배 안에 감추어 두었다. 그러다 어둠을 타서 북을 울리며 각 함선의 공덕로公德爐에다가 불을 놓아 대나무를 태웠다. 세찬 불꽃에 대나무가 터지면서 어지럽게 일어나 맹렬한 화공이 시작됐다.

적군은 준비하여 놓았던 해안선 토성의 포화를 열어 밤새도록 응전하였다. 그래서 적의 탄환은 거의 다하여 버렸다. 기다리던 순신은 수륙으로 엄습을 계속하여 토성을 넘어 들이쳤다.

밤 사이에 이순신 함대에 숨겨 놓은 대나무에 시석과 포환을 허비한 적군은 순신 군사의 소낙비 퍼붓 듯한 화살과 탄환을 당해 낼 수 없었고, 크게 놀라 토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순신은 적의 원군이 미처 오기 전에 수백급의 적을 죽이고 토성을 모두 무너뜨린 뒤에 배에 올라 돌아 나왔다.

새벽 틈타 토성 치다

그로부터 2~3일이 지난 뒤 유정은 슬그머니 군사를 몰고 순천의 부유富有현으로 퇴각했다. 수천석의 군량과 병기를 버리고 물러갔다. 그 덕에 군량이 떨어져 고생을 하던 소서행장의 군사는 양식을 얻었다. 이는 유정이 고의로 벌인 일이었다. 다시 말해 위급한 소서행장을 도와준 셈이다. 이순신이 소서행장의 군량을 탈취한 까닭에 소서행장은 비밀리에 금은보화를 유정에게 보내 뇌물을 쓰고 유정은 일부러 군량을 버리고 부유로 퇴각한 것이었다.

한편 진린은 이순신의 조언을 듣고 함대를 장도로 옮겨 왜교에서 나오는 해구를 봉쇄하고 조수가 살기를 기다렸다. 장도는 왜교를 출입하는 해구에 가로 놓여 있는 섬이었다. 이 섬을 지나지 아니하고는 왜교를 나올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소서행장은 이 섬에 성을 쌓고 인근 각 읍의 돈과 곡식을 수납하여 창고에 쌓아두고 수비대를 두었던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