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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127

“내가 죽은 것을 발표하지 마라”

2016. 08. 26 by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명나라 제독 진린이 위기에 처하자 순신이 돕기를 자청했다. 하지만 진린이 무모하게 들어간 곳은 ‘관음포’. 적의 탄환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순신은 기어코 진린을 구하겠다며 그곳으로 들어갔고, 진린을 구해냈다. 하지만 순신의 운명은 저물고 있었다.

소서행장을 일부러 놓아준 사실을 딱 걸린 진린 명나라 제독은 순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관음포 안으로 들어가 남은 적을 토벌하겠소. 이 장군은 피곤할 터이니.” 순신은 경고했다. “아니오. 병법에 궁구물박(궁지에 몰린 적은 다그치지 마라)이라 하였소. 급격하게 한다면 도리어 후회함이 있을 것이니 가만 두었다가 저희들이 돌아 나올 때에 잡아도 늦지 않소.”

하지만 진린의 생각은 달랐다. 순신의 위세에 눌린 적이 병 속 같은 관음포 속으로 들어갔으니, 대명 수군으로 능히 이길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순신의 충언을 듣지 아니하고 “그깟 놈들을 두려워할 것이 무엇 있소?”라면서 자기의 함대를 몰고 포구 안으로 들어갔다.

그 무렵, 적의 함대는 도진의홍, 소서행장의 부하 정예들만 남아 있었다. 참 일당백의 장사들이며 사납기 짝이 없는 살마薩摩(사쓰마) 및 관서關西(간사이)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는 진린의 함대를 보고 결사적 용기를 발휘하여 그 병선들을 포위하였다. 일본 함대는 아직도 180여척이나 남았다. 일본 용장들은 진린의 기함으로 막 뛰어오른다. 진린의 군사는 호준포(앞을 괴어서 호랑이가 두 발을 딛고 앉은 것처럼 만든 대포)를 놓아 많은 적을 사살하여 방어하였다. 진린은 제장을 독려하여 단병전으로 악전고투하였다.

적의 용장 하나가 진린의 몸을 칼로 칠 즈음에 진린의 아들 진구경陳九經이 칼을 들어 구하고 몸으로 막다가 그 칼에 찔렸다.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진린의 아래 장수들이 구해내고 적장 2인을 당파(삼지창)로 찍어 물에 던져 죽였다. 일본 군사들은 조총을 쏘며 맹렬히 싸우는데 진린이 별안간에 목탁을 쳐서 군사를 거두었다. 진린의 진은 갑자기 고요하여진다. 적은 의심이 나서 싸움을 멈추었다.

▲ 벼랑에 몰린 일본 함대는 호랑이처럼 매서워졌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진린의 군사는 일제히 분통(대나무통 속에 화약을 넣고 특수한 약품으로 떡처럼 빚어 구멍을 봉한 다음 약선에 불을 붙여 발포하는 무기)으로 불을 풍겨 일본 병선을 태우기 시작하니 바람이 일어나며 불길이 갈아서 바다물결까지 끓는다. 적선은 10여척이나 불이 붙어서 타버렸다.

궁지에 몰린 진린을 구하다

이 화공작전은 진린의 부장인 부총병 등자룡의 작전을 보고 따라한 것이었다. 등자룡은 진린의 형세가 위급한 것을 보고 배를 몰고 와서 구하였다. 등자룡의 함선들은 화구(화약을 공 모양으로 채워 불을 일으키는 무기)를 연달아 던져 적선을 8~9척이나 태워 버렸다. 진린도 이것을 바라보고 “옳다, 화공을 해야 하겠군!”이라면서 분통과 화기를 사용했던 거다.

그런데 명나라 수군 한명이 화기를 잘못 던져 등자룡의 배에 불이 일어났다. 군사들이 불을 잡으려고 날뛰는 판에 일본 무사들이 불붙는 등자룡의 배로 뛰어올라 등자룡을 찔러 죽이고 그 부하 70여명을 사살하였다. 진린도 병선을 몰고 등자룡을 구하려다가 다시 적선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위급하게 됐다. 등자룡을 베고 그 배를 태워버린 적은 기세를 얻어 진린을 곤란하게 하였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순신은 좌시할 수는 없었다. 순신은 제장에게 추격하기를 명하고 자기가 몸소 선봉이 되어 병목 같은 포구 안으로 전진하였다. 순신의 장자 회와 조카 완이 순신에게 간하였다.

“포구가 좁아서 적의 탄환이 한 목으로 몰려나오니 부친이 제일선에 나선다면 적탄의 표적이 될 터인즉 몸을 보중하시고 거북선을 명하여 선두에 내세워 부딪치며 돌격하게 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또한 듣자하니 이 지방의 이름이 이락파李落坡라 하오니 아마도 우리에게 불리한 지명인가 합니다.”

순신은 길게 탄식하면서 아들과 조카의 간언을 물리쳤다. “나는 나랏일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안다. 내 명은 저 하늘에 있으니 너희들의 걱정할 것이 아니다.”

 
순신이 탄 대장선이 선두에 나서 탄환의 비를 무릅쓰고 육박하여 쳐들어오자, 적선들은 진린을 버리고 그 사격을 순신에게로 집중하였다. 순신은 철방패를 좌우에 세우고 뱃머리에 칼을 짚고 우뚝 서서 병선을 지휘하였다. 워낙 바다가 좁아 배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가 없기에 적은 순신에게로 총구를 겨누었다.

그래도 좀처럼 맞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순신은 태연자약하게 선두에 우뚝 서서 수기를 들어 독전하였다. 적선 중에서 큰 층각선 하나가 나온다. 그 층각에는 금빛 갑옷을 입은 장수 3인이 의자 위에 걸터앉아 독전하고 있었다. 순신은 이들을 겨누어 철궁에 아전牙箭을 먹여 쏘아 세 장수 중 한 장수를 맞혔다. 이를 본 순신의 제장들은 더욱 기세를 얻어 가일층 분전하여 적의 층각선을 때려 부수었다.

진린 구하다 위기에 처해

도망치려 해도 도망할 길을 잃은 적은 죽기를 각오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적이 순신의 대장선을 향하여 사력을 다하는 동안에 진린과 진린 이하 명나라 제장들은 위기를 벗어나 슬슬 뒤로 빠져 물러갔다.

명나라 수군은 이 관음포 싸움에서 적선 30여척을 불사르고 수급 300여급을 베었다. 하지만 명나라 측에도 부총병 등자룡 이하 전사한 사람이 수백명이요 배가 파손된 것도 10여척에 달했다. 적과 거의 같은 손해를 입은 것이다.

이순신은 진린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하지만 소서행장의 부하 철포대가 쏜 탄환을 맞고 말았다. 순신은 조카 완에게 손에 들었던 수기를 주며 “싸움이 지금 격렬하니 내가 죽은 것을 발표하지 말고 내 대신 네가 싸움을 독려하라” 명했다.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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