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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딜러 없는 매장 만든 이유

“車 안 팝니다 … 경험 사세요”

2017. 01. 03 by 김다린 기자

매장은 매장인데 ‘세일즈’를 하지 않는다. 매장은 매장인데 ‘딜러’도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구루’라는 사람이 나와 “그냥 보고, 듣고, 느끼라”고 말한다. 2014년 현대차가 ‘수입차의 메카’ 도산대로에 만든 ‘현대 모터스튜디오’의 진풍경이다. 용어도 이상한 ‘자동차 스튜디오’, 이곳은 뭐하는 곳일까.

▲ 현대 모터스튜디오에는 현대차 브랜드 방향성인 '모던 프리미엄'이 녹아있다.[사진=천막사진관]

강남구 도산대로는 수입차의 메카다. 1987년 수입차 개방과 함께 벤츠가 최초로 전시장을 열었다. 이후 글로벌 유명 브랜드 매장이 속속 둥지를 틀었다. 명차 브랜드 전시장들이 오밀조밀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수입차를 사려면 도산대로로 가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로부터 27년이 훌쩍 흐른 2014년 5월, 이 거리 한복판인 도산사거리 중심에 낯선 건물이 들어섰다. 꼭대기층에 디스플레이된 자동차 밑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특이한 모양이다. 다른 수입차 전시장들과 달리 간판도 없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더 낯설어진다. 자동차 딜러가 아닌 차량 엔지니어 복장을 한 직원이 고객을 맞아서다. 이들의 가슴엔 ‘구루(Guru)’라는 명찰이 달려 있다.

이 독특하면서도 낯선 건물은 현대차 최초의 브랜드 체험관 ‘현대 모터스튜디오’다. 현대차가 정의한 브랜드 체험관은 이렇다. “단순히 차량을 판매하는 전시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현대차 브랜드 방향성이 반영된 예술작품, 현대차만의 콘텐트, 자동차 전문 도서관 등 고객이 직접 현대차와 자동차를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고객 소통 공간.”

▲ 현대 모터스튜디오에는 딜러가 아닌 자동차 문화 해설사인 구루가 고객을 맞는다.[사진=천막사진관]

실제로 이 공간에서는 차를 사지 않아도 된다. 커피를 마시면서 다양한 자동차 콘텐트를 즐기면 끝이다. 사실 이 대목에선 고개를 갸우뚱 할만하다.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은 매장은 말 그대로 ‘손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입차의 메카에서 말이다. 현대차는 왜 ‘손실’을 자청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차의 성장 역사를 봐야 한다. 현대차는 2005년 대내외적으로 ‘브랜드 경영’을 선포했다. 이전까지는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취하며 양적 판매에 집중했다. 현대차가 글로벌 5대 양산차 브랜드로 우뚝 올라섰음에도 ‘가격 대비 품질이 나쁘지 않은 차’라는 야박한 평가를 받았던 이유다.

모던 프리미엄 전략에 숨은 뜻

2011년 현대차는 브랜드 방향성으로 ‘모던 프리미엄’을 정립했다. 고객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 일환으로 추진된 게 ‘디자인 경영’이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디자인 인재 영입에 열을 올렸다. 2006년 폭스바겐의 피터 슈라이어 영입은 그 신호탄이었다.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의 디자인 총괄 겸 부사장을 거쳤다. 국내 자동차 업체 최초로 ‘패밀리 룩’을 선보인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는 그룹 전체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사장직에 올랐다. 2016년 1월에는 벤틀리의 디자인을 총괄하던 루크 동커볼케에게 현대차 디자인센터장을 맡겼다. 5월에는 그와 함께 벤틀리에서 외관 디자인을 담당하던 이상엽 디자이너도 같은 센터의 스타일링 담당 상무로 영입했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과) 교수는 디자인 역량과 브랜드 경험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에는 완성도와 성능, 스타일링, 드라이빙 만족감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제품 자체와 기술로 구현되는 기능 못지않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어느 정도 평준화를 이룬 자동차 시장에선 더 이상 품질, 가격, 새로운 기술이 경쟁력이 될 수 없어서다. 자동차 디자인은 그 기업의 역량을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이 디자인에 녹아있다면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명품’ 브랜드라 불리는 차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딜러가 아닌 구루가 고객 맞아

2011년 추진된 현대차의 ‘모덤 프리미엄’ 전략은 이렇게 알찬 열매를 맺었다. 브랜드 방향성은 물론 디자인의 품질도 한차원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제 현대차에 남은 건 단 하나. ‘브랜드 경험’을 고객에게 어떻게 전파하느냐였다.

현대차 브레인들은 일선 판매장을 떠올렸지만 실행에 옮기는 게 녹록지 않았다. 판매장은 말 그대로 ‘차를 파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대 모터스튜디오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했다. 부담 없이 차를 볼 수 있는 곳, 이를테면 ‘차 스튜디오’가 필요했던 거다. 이곳에 딜러가 아닌 구루를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셀러’가 아니라 ‘전파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치 미술관 큐레이터처럼 말이다.

실제로 구루에 물어보면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스튜디오 실내 디자인의 기본 개념은 ‘제로 투 제로(0 To 0)’입니다. 제철소의 쇠물이 강판이 되고 다시 첨단 하이테크놀로지인 자동차로 탄생한 후 최종적으로 재활용되는 과정처럼, 지속적인 변화와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날 것 그대로인 ‘재료’로 표현했습니다. 쇠파이프는 현대제철 고로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현대하이스코에서 아연도금 처리했습니다. 보통 전기 배선을 감출 때 쓰는데, 이곳에서는 실내 마감재로 활용했죠. 벽면은 강판과 철판을 녹여 아연도금한 뒤 표면에 다시 인산염을 씌운 강판으로 장식했습니다.”

분기 별로 테마도 바뀐다. 최근에는 신차 ‘그랜저 IG’가 이 공간을 채웠다. 그랜저 IG의 초기 단계부터 개발, 양산 과정을 그대로 담았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그랜저 IG 개발에 참여한 디자이너들과 일반인이 만나는 시간을 열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피터슈라이어 사장을 시작으로 루크 동커볼케, 구본준 현대차 외장디자인 실장, 하학수 현대차 내장디자인 실장, 이상엽 현대차 스타일링 담당 상무 등 산업 디자인계의 ‘롤모델’이 총출동했다.

물론 이 공간을 두고 ‘아쉬운 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를 이끌고 산업 전체를 지탱하는 기업의 브랜드 콘텐트가 담긴 공간치고는 부실하지 않느냐는 거다. 특히 현대차는 국내 시장에서 가격, 서비스 등에 대한 불만이 여전한 상황이다. 독특한 자동차 스튜디오로 고객들의 불만을 다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 ❶아이들이 현대 모터스튜디오 키즈존에서 자동차 형상의 페이퍼토이를 만들고 있다. ❷유명 아티스트들이 현대차 브랜드 방향성에서 영감을 받아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사진=천막사진관]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담당하는 한종윤 스페이스마케팅팀 과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현대 모터스튜디오는 현대차 브랜드 방향성을 설명하기 위한 전초기지다. 물론 이를 온전히 설명하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이런 피드백을 충분히 반영하면 더 멋진 브랜드 전시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전초기지 “지켜봐 달라”

실제로 현대차는 고양시에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체험시설인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의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런 경험은 2021년 완공 계획인 105층(553m) 높이의 현대차그룹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에도 녹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고객과 기업이 상호작용하는 모든 접점이 브랜드 경험”이라며 “모터스튜디오를 찾는 모든 고객이 ‘현대차만의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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