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주요메뉴

본문영역

이필재의 ‘CEO, 나를 바꿔놓은 한 문장’ | 이랑주 라마레따 총괄아트디렉터

모든 건 마음이 지어내는 것

2017. 04. 13 by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이랑주(45) 라마레따 총괄아트디렉터는 “모든 건 오로지 나의 마음이 지어내는 것(一切唯心造)”이라고 말했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늙어가는 거야 피할 수 없지만 낡아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10년 단위로 한 분야에 깊이 천착했다. 백화점과 시장통에서 각각 10년씩 한 우물을 팠다. 그런 그가 둘째 우물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새 우물을 찾아나섰다.

 
“한 조각 케이크를 먹은 게 아니라 부드러운 생크림 같은 존중을 낯선 땅 파리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귀국한 지 넉달 만에 가방 케이크 카페를 차렸어요. 제가 겪은 존중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랑주 라마레따 총괄아트디렉터는 “세상 모든 것이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그는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지인들과 시장조사차 떠난 해외여행은 하루 2만보를 걷는 강행군이었다. 파리의 겨울 날씨는 주사기 바늘처럼 뼛속을 파고들었다. 다리는 퉁퉁 부었고 발가락엔 물집이 생겼다. 초점 잃은 눈에 빨간 케이크가 들어왔다. 쁘렝땅백화점 안 카페였다. 너무 지쳐 멋진 상품을 보고도 감탄사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 케이크를 먹고 나면 힘이 솟을 것 같았다. 일행과 함께 마법에 걸린 듯 매장으로 빨려 들어가 케이크를 주문했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흰 장갑을 낀 푸른 눈의 점원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태도는 고급 호텔 근무자보다 정중했고 눈빛은 따뜻했다. 명품관에서 본 고가의 백보다 가방 케이크가 가치 있게 느껴졌다.

귀국 후 지인들에게 빨간 가방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 카페가 한국에서 불가능한 이유를 100가지쯤 말해 줬다. 우선 한국은 프랑스와 문화가 달라 하루 한두개 팔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빨간 가방이 보기는 좋지만 과연 사람들이 먹으려 들겠느냐고 반문했다. 케이크의 장인은 진한 빨간색을 내려면 천연 색소 말고 몸에 좋지 않은 인공 색소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 4월 말부터 판매될 라마레따의 가방 모양 케이크.[사진=라마레따 제공]
가방 금형을 뜨려면 막대한 금형비가 들었다. 한달이라는 아까운 시간이 흘렀다. 각각 다른 사업을 하는 6명의 대표와 일본으로 시장조사를 떠났다. 다른 때처럼 소상공인들과 공유하려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는 매장이 눈에 띄면 동영상으로 찍었다. 매장 공간에 들어설 때 받은 느낌, 해당 매장의 장단점을 음성으로 영상에 남겼다. 동행한 이정교 로사퍼시픽 대표가 그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이 대표님 아이디어와 노하우가 담긴 그 휴대전화, 저에게 1억원에 파시죠. 제 눈엔 1000억의 가치가 있는 보물입니다만.”

그는 그 휴대전화를 들고와 자기와 일해 보자고 제안했다. 라마레따를 꼭 성공시켜 보겠다고 덧붙였다. 국내 첫 뷰티 카페 라마레따가 본격적으로 태동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라마레따는 스페인어로 ‘그녀의 가방’이라는 뜻이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단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는 옛말이 있지만 저의 가치를 알아봐 준 게 고마웠습니다.” 귀국 비행기에서 두 사람은 신문을 펼쳐 그 위에 나란히 이름을 쓰고 사인을 했다. ‘기상機上 결의’였다. 로사퍼시픽은 설립된 지 5년 된 작은 기업이다. 온라인에서 화장품, 샴푸, 치아미백 제품, 향수, 디퓨저 등 뷰티 관련 제품을 판다.

그런데 이랑주 디렉터는 백화점 비주얼 머천다이저(visual merchandiser‥VMD) 출신으로 지난 23년간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일했다. 소상공인을 도울 때도 오프라인 매장에 대한 조언을 주로 했다. 지난해까지 대표로 있던 스타일공유는 소상공인의 성공을 돕는 전통시장 지킴이였다. 세계 40개국 150여개 전통시장을 섭렵한 그를 시장 상인들은 ‘길 위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그런 그가 전원 20대인 10명의 로사퍼시픽 직원들과 의기투합해 주스 가게를 매장으로 개조했다. “아름다움을 파는 카페로 만들어 갈 겁니다.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되 오프라인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경험하게 하려고요. 43㎡(약 13평)짜리 작은 매장이지만 여기다 좋은 것, 가치 있는 것들을 담을 겁니다.”

그는 사람의 아름다움은 내면, 외면, 영혼의 3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밖으로 표출된다고 주장했다. “내면과 외면은 각각 먹은 것과 가꾼 것의 표현, 영혼은 독서와 철학적 사색으로 얻은 지혜의 결정체”라고 덧붙였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세 요소가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파는 새로운 카페를 만드는 꿈을 꿉니다. 늙어가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사람이 낡아지면 안 되잖아요?”

그는 10년 단위로 한 분야에 깊이 천착했다. 백화점과 시장통에서 각각 10년씩 한우물을 팠다. 2005년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비주얼 머천다이징 강의를 해달라는 중소기업청의 요청을 받고 독립해 이랑주VMD연구소를 차린 것도 그래서다. 그렇게 우물이 만들어지면 후배들에게 넘기고 새로운 우물을 찾아나섰다.

“새 우물 파는 게 제 팔자인가 봅니다. 깊이 판 우물도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더하지 않으면 물이 썩거나 변질됩니다. 10년 만에 온라인이라는 새 우물을 파려니 체력도, 아이디어도 달리지만 신나고 재미있어요.” 그는 “스무살 아래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열심히 배워 600만 소상공인에게 온오프를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그의 집은 형편이 어려웠다. 여상을 나왔지만 주판에 약해 은행 취업을 포기했다. 여상에서 인문계 수업을 청강해 4년제 대학 시험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전문대 디자인과에 진학한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수석으로 졸업한다.

 
세번 취업 사기를 당한 끝에 계약직으로 들어간 이랜드에서 그는 마침내 능력을 인정받는다. 내 힘으로 백화점으로 옮겼는데 이번엔 전문대 출신이라고 동료들이 무시했다. “말 없는 질시의 눈빛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 결핍을 채우려 늦깎이로 공부해 서른일곱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러고 나니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결핍이 보였습니다.”

그는 소상공인을 위한 VMD 전략을 다듬어 지난해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을 출간했다. 부제는 ‘보는 순간 사고 싶게 만드는 9가지 법칙’. 라마레따 직원 중 막내인 이혜림씨는 올해 스물셋이다. 그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이다. 막내는 매일 100번씩 손글씨로 ‘라마레따 하루 매출 1000만원 달성’이라고 쓴다. 100번 쓰기 100일 되는 날인 4월 24일 라마레따가 서울 논현동에서 문을 연다.

당초 인테리어 업자는 매장 개조에 40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10분의 1로 비용을 줄여 보자고 충동질했다. 주방을 줄이고 매장을 넓히느라 온라인 회사 직원들이 매달려 전선을 새로 설치하는 오프라인 작업을 했다. 매장 개조에 실제로 들어간 비용은 견적가의 20분의 1이 채 안 되는 195만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우리나라에서 가방 케이크를 파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그 나이에 하던 일이나 잘하라고 하겠죠. 실은 가방 케이크를 만나기 전이 더 편했고 여전히 누리고 살고픈 유혹을 받아요.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거래요. 그렇게 믿기에 10년 만에 다시 제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