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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명문장수기업 코맥스 변봉덕 회장

‘홈 통신’ 외길인생, 명가 타이틀 얻다

2017. 04. 26 by 성태원 대기자

변봉덕(78) 회장이 49년간 이끌어온 코맥스가 대한민국 1호 명문장수기업 타이틀을 달았다. 1970년대 국내 인터폰 개발로 유명한 코맥스는 ‘홈 통신’ 외길을 걸어온 변 회장의 반세기 집념이 뭉쳐진 중소기업이다. 정부는 코맥스가 많은 중소기업의 롤 모델이 되고, 대代를 이어 성장할 것이란 기대 아래 1호 타이틀을 달아줬다. 여든이 가까워진 그의 향후 경영 행로가 주목된다.

▲ 변봉덕 회장은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신뢰와 기술을 중시하는 경영을 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명문장수기업에 가장 먼저 선정돼 영광스럽다.” 변봉덕 회장은 11일 경기도 성남 코맥스에서 열린 ‘명문장수기업 현판식 및 확인서 수여식’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사물인터넷(IoT), 음성ㆍ생체인식 등 새로운 기술을 수용해 코맥스만의 기술 경쟁력과 사업 정체성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리에는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 전자공업협동조합 등의 관계자와 코맥스 임직원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중소기업에 성장의 바람직한 롤 모델을 제시하고, 사회 전반에 존경받는 기업문화를 확산시키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명문장수기업 제도의 1호 업체로 코맥스가 선정된 것이다. 이 제도는 정부(중소기업청)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도입했다. 선정 주요 기준은 45년 이상 건실하게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회에 많이 기여하고 혁신역량도 우수해 대代를 이어 지속 성장이 기대되는 업체다.

중기청은 1차로 50개 기업의 신청을 받아 서면평가와 현장평가, 평판 검증, 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코맥스를 비롯한 6개 업체를 선정했다. 이 중 코맥스가 제일 먼저 선정 확인서를 받고 현판식을 가졌다.

중기청은 선정된 업체에 수출과 인력, 정책자금 등의 면에서 우대 지원할 계획이다. 선정이 되면 국내외에 걸쳐 브랜드 이미지가 향상되는 게 큰 혜택이다. 수출을 많이 하는 코맥스에도 당연히 호재가 된다.

1968년 변 회장이 서른살 때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서울 세운상가에서 세운 조그만 회사(중앙전자공업사)가 49년 만에 정부에 의해 명문장수기업으로 공인받았으니 그의 감회가 얼마나 깊었을까.

그는 청년 시절부터 “앞으로는 통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란 믿음 하나로 ‘홈 통신’ 외길을 걸어왔다. 피난민의 후손으로 갖은 고생 끝에 학업을 마쳤던 그는 창업 후에도 불굴의 투지로 반세기만에 종업원 206명(2016년말)이 매출 1317억원(2016년/수출비중 약 30%)을 올리는 탄탄한 중소기업을 일궈냈다.

변 회장은 창업 후 31년 동안 중앙전자공업이란 상호를 썼다. 창업 당시 유선전화기가 금값이었던 시절, 홈 통신인 인터폰으로 세상에 존재를 알렸다. 국내 최초였다. 이어서 비디오도어폰, 홈오토메이션, 홈 네트워크, 홈 IoT 등으로 진화하며 시장을 선도해 왔다. 1970년대 인터폰, 80년대 비디오폰에 이어 2000년대엔 인터넷 기술이 접목된 홈 네트워크 제품을 제조ㆍ판매했다. 최근에는 IoT 기술을 적용해 가정용 기기들을 원격 제어하고 총괄하는 스마트 홈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는 코맥스를 두고 ‘홈 통신업체’ ‘홈 네트워크업체’ ‘홈 시큐리티기업’ ‘스마트홈 전문기업’ ‘홈 IoT 업체’ 등의 다양한 표현을 쓰고 있다. ‘홈 통신’ 외길이라지만 시대 흐름과 시장의 변화, 산업의 변천 등에 부응해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 온 결과다. 생산 방식도 소비자와 나라마다 다른 수요 변화에 초점을 맞춰 소품종 다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왔다. 그 결과, 현재 1000여종의 제품을 126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 자리에 올라 있다.

변 회장은 ‘명문장수기업’이란 칭호를 받기까지 반세기 동안 어떤 생각으로 사업을 해왔을까. 그는 명문장수기업 칭호에 앞서 유망중소기업(1983년), 특허기술개발 벤처기업(1998년), 수출유망중소기업(1999년), 글로벌강소기업(2012년) 등 사업 잘하는 중소기업이 받을 수 있는 칭호를 웬만큼 다 받으며 지냈다. 그의 사업관이나 경영방식에 남다른 데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의 사업 이력을 쭉 살펴보면 몇가지 두드러진 사업관이 읽힌다. ‘신뢰와 기술, 변화와 도전’ 이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최고의 제품으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관했다. 초점을 소비자와 시장에 두고 신뢰와 기술 중시라는 경영관을 적용했다. 그가 ‘신뢰’를 중시한다는 점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일화가 있다. 1970년대 북미지역에 수출한 제품에 불량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전량 리콜’이란 방식으로 대응했다. 지금은 리콜이 다반사지만 당시만 해도 멀리 떨어진 한국의 일개 중소기업이 내리기는 힘든 결정이었다. 회사에 큰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었지만 신뢰를 잃기 싫어 전량 리콜에 나섰던 것. 이게 입소문을 타고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세운상가 작은 기업의 눈부신 성장

그의 이런 생각은 ‘코맥스’라는 상호 아래 생산체계를 유지한 데서도 드러난다. 한때 주문자부착생산방식(OEM)이 유행한 적이 있다. 글로벌 유명업체의 하청 생산업체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변 회장은 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한국의 코맥스’란 상호를 붙잡고 생산ㆍ판매를 계속했다. 10여년 전에는 글로벌 업체에 회사를 넘기자는 얘기까지 있었다. 당시 해외에서 성악가로 잘나가던 아들 변우석(46) 부사장이 진로를 바꾸어 가업에 참여하면서 극복했다. 가업 승계 여건이 확실해졌고, 그것이 장수명문기업 선정의 주요 덕목이 됐다. 

변 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도 남다르다.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의 틈새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발전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그는 10년 주기로 변하는 홈 정보통신시장의 패러다임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엔 홈 네트워크에 이동성과 휴대성을 접목한 홈 모바일 시스템과 IoT 신제품 개발ㆍ판매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인재와 연구ㆍ개발은 중소기업의 주요 경쟁력”이라며 인재 경영도 강조한다.

그의 변화와 도전 의지는 시장과 소비자에 초점을 둔 기술개발과 일맥상통한다. 변화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그 순간 주저 않고 만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지금은 국내 통신 대기업은 물론 글로벌 대기업과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가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IoT 등 신기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다. 그래야 의사결정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와 기술로 국내외 시장 공략

1970년대에 한국 중소기업이 해외 영업망을 뚫기란 정말 어려웠다. 그는 1975년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미국ㆍ유럽ㆍ중동 등의 50여 도시를 한달여에 걸쳐 마구 돌았다. 상품을 바이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호텔에서 전화번호부를 뒤져 약속을 잡거나 무작정 회사 앞에 가서 면담을 요청하기 일쑤였다. “경영자는 모든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평생 도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하기가 무척 힘든 곳이다. 중소기업인은 거의 모든 분야를 본인이 커버하며 그야말로 ‘전지전능 스트롱맨’이 되다시피 해야 한다. 변 회장도 ‘글로벌 강소기업’이 되기 위해 반세기 가까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대한민국 1호 명문장수기업 타이틀도 따게 됐다. 차제에 홈 통신 명문장수기업 코맥스의 백년대계를 위해 더욱 단단한 초석을 깔아 주길 기대해본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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