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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세컨드 라이프 ➏ 김남국 대관령산업 부사장

평창올림픽 시설을 시니어 타운으로…

2017. 09. 14 by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김남국(63) 대관령산업 부사장은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청소차를 몬다. 20년간 세계적인 다국적기업과 손잡고 마케팅 컨설팅 회사를 경영한 그는 인생 1막과의 낙차가 컸다고 말했다. 음치에 몸치인 그는 석달째 댄스를 배운다. 고향인 대관령에서 아내와 댄스 강사를 하는 꿈을 꾼다. “섈 위 댄스?”

“평창동계올림픽 시설을 올림픽 폐막 후 여름딸기농장 등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일하는 생산시설과 숙소로 재활용해야 합니다. 베이비부머들이 여기서 일도 하고 숙소 문제도 해결하는 한편 저녁이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는 시니어 타운을 만드는 거예요.”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청소차를 운전하는 김남국 대관령산업 부사장은 “시니어 타운이야말로 공동화될 우려가 있는 평창의 올림픽 시설과 집에 들어앉을 신세인 은퇴 베이비부머 문제를 푸는 묘안”이라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과거 마케팅 컨설팅 회사를 창업해 20년 경영했었다. 프랑스 다국적회사와의 합작으로 한때 직원 수가 3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합작 파트너의 철수로 회사는 파산을 했다. 직원들 퇴직금에 위로금까지 지급한 후 그는 빈털터리가 됐다. 그 시절 직원 몇몇과는 지금도 교류한다.

대관령이 고향인 그는 고교 졸업 후 상경해 고려대 농대를 졸업했다. ‘재계의 신데렐라’ 소리를 듣던 율산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농대 출신이라고 입사원서조차 주지 않았다. 길 건너 대한항공에 입사해 영업 일을 하다 창업을 했다. 석달만에 말아먹고 이번엔 아멕스카드에 들어갔다. 외국계 회사에서 많이 벌어 다시 창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김 부사장은 서울의 베이비부머들에게 "경쟁의 무대를 지방으로 옮기라"고 조언했다.[사진=대관령산업 제공]

이 회사에 입사하려 면접 예상문제 50개를 뽑아 모범답안을 만든 후 영역해 달달 외웠다고 한다. 7년 후 38세의 마케팅 매니저로 대기업 전무급 봉급에 이사 승진이 유력했지만 그는 아멕스카드를 박차고 나왔다.

“그만둬서는 안 될 세계 최고의 직장’을 때려치고 나와 회사를 차렸는데 20년 만에 무일푼이 됐습니다. 초고속열차를 타고 달리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레일이 사라진 기분이었어요. 인생 1막이 너무 화려했기에 상실감이 컸습니다. 마치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뼈만 남은 물고기를 매달고 항구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이었어요.”

잘나갈 때 그의 회사는 미분양이 확실시되던 포천의 아파트 마케팅을 맡아 완판했다.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 아파트를 전원 아파트로 ‘포장’했고 텃밭도 임대해 준다고 광고했다. 주말이면 모델하우스가 미어터졌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강남의 작은 호텔을 조용히 사업상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세컨드 하우스로 포장했더니 회원권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도 했다. 호시절엔 자본금 10배 이상의 수익을 냈다고 한다. “경쟁우위를 겨냥한 통합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습니다. 그런데 파산 후 7년여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저 자신이 서울에서는 경쟁우위를 잃었죠.”

파산 후 그는 우울증을 앓았다. 한강에 나가 하염없이 걸었다. 집을 팔아 사업을 했기에 장기전세에 당첨돼 마련한 집이 마침 한강 변이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걸으면서 벼락에 맞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내와 두 딸에게 무능하고 무력한 가장으로 비치는 게 싫었지만 인생 반전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하고 심지어 두려웠다. 신자였지만 신앙보다 그 시절엔 술이 약이었다.

그는 낙향 후엔 천국에 산다고 말했다. 공기와 풍광이 좋은 곳에서 육체노동을 하고 꾸준히 걷다 보니 오십견과 팔꿈치 엘보도 씻은 듯이 나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처음 내려왔을 땐 대학원 졸업 학력과 빵빵한 경력을 감추고 올림픽조직위 건물 건설 현장 경비로 ‘위장취업’을 했다. 면접관이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설득을 해야 했다. “들여보낼 사람 들여보내고 아닌 사람은 통제하는 일 아닙니까? 제가 눈치가 100단입니다.”

건설 현장 경비는 아침저녁으로 비질만 하면 힘들 게 없었다. 눈만 전방을 주시하면 돼 근무시간에 음악은 물론 교회 설교도 들었다. 무엇보다 갑질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에 사장 자리가 났다고 해 그만두고 올라갔지만 다시 유턴했다. “이 나이에 사장을 맡길 땐 영업이나 자금 조달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 쪽 역량은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사람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그가 서울의 베이비부머들에게 지방으로의 이주를 고려하라고 조언하는 배경이다. 아직은 경쟁우위에 있을지 몰라도 결국 그 우위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은 한해 70만명씩 직장을 떠나는 베이비부머 편이 아니라는 경고다.

“서울은 학교보안관, 아파트 경비원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건물 경비는 백이 있어야 할 수 있죠. 경쟁의 무대를 지방으로 옮기는 게 대안입니다. 중소도시로 이주하면 일자리와 일거리가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유리온실에 한 달간 근무할 때도 위장취업을 했다. 토마토 가지치기와 수확을 했다. 가벼운 농사일이 은퇴한 화이트칼라에게 맞는다는 걸 이때 알았다. 그는 청소차 운전 외에 대관령 트레킹 가이드를 한다. 투잡을 뛰는 것이다. 장차 가이드 일의 양을 늘려가려고 한다. “대관령은 해발 약 800m 분지입니다. 여름이면 너무 더운 제주 올레길과 달리 여기는 열대야도 모기도 없죠. 경관이 빼어난 트레킹 코스는 이른바 깔딱고개가 없어 노인이나 여성에게 좋습니다.”

서울을 오가며 액티브시니어협회 창립에도 관여했다. 그는 베이비부머야말로 국가 발전에 기여했고 세금도 성실히 냈다고 말했다. “경쟁 우위를 잃은 시니어도 해외에 나가면 기회가 있습니다. 평생 한 일이 제3세계에선 적정 기술 대접을 받을 수 있죠. 서울 등 대도시에서 재능기부를 할 수도 있고요.”

그는 석달째 댄스를 배우고 있다. 서울에 떨어져 있는 아내와 함께 고향의 노인복지관에서 댄스 강사로 봉사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타고난 음치에 박치라 진도가 더디지만 그래서 더 도전정신이 생긴다고 했다. “한 5년 이상 꾸준히 배우면 춤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겠죠. 댄스는 걸을 수 있는 사람의 마지막 운동이라고 합니다. 걸을 수 있다면 누구나 댄스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거죠.”

절대음치인 자신과 달리 아내는 댄스를 좋아할뿐더러 잘 춘다고 귀띔했다. 그는 과거 허리가 아팠을 때 치료를 위해 왈츠를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같이 배운 할머니 스무 명이 연하인 자신의 손을 잡으면서 행복해 하더라고 말했다. “저는 외로운 할머니들 상대가 돼 주고 아내는 외로운 할아버지의 파트너가 돼 주는 거죠. 빛나는 노후 아닙니까?”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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