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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용 SW 개발업체 코어라인소프트의 경영전략 독립성 부여한 마케팅부서 신설해 성장 발판 마련 팀장에게 전권 부여, 경력보단 독특한 신입 뽑아 배치

[月刊 스타트업] 코어라인소프트, 별난 아싸 춤추자 실적도 춤췄다

2019. 06. 18 by 고준영 기자

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코어라인소프트는 폐질환 관련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회사다. 최근 경기 둔화로 기업들이 몸집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기업은 되레 마케팅부서를 신설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주목할 건 마케팅부서의 독특한 면면이다. 마케팅 노하우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내 아웃사이더(아싸)를 팀장에 앉혔고, 팀원들도 아싸 성향을 가진 신입들로 채웠다. 사내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CEO가 제안한 전략이었는데, 이는 보란 듯이 성공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코어라인소프트의 ‘별난 아싸들이 만들어낸 별난 실적’을 취재했다. 

코어라인소프트 마케팅부는 자유롭게 일하고 맘껏 토론한다. 성향이 잘 맞기 때문이다.[사진=코어라인소프트 제공]
코어라인소프트 마케팅부는 자유롭게 일하고 맘껏 토론한다. 성향이 잘 맞기 때문이다.[사진=코어라인소프트 제공]

지난해 10만2042개 기업이 새로 문을 열었다. 신설법인 수가 연간 10만개를 넘어선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부푼 꿈을 키웠든 별 방법이 없었든 창업시장에 뛰어드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늘어나는 건 신설기업만이 아니다. 지난해 폐업한 기업은 7만362개. 새로 생긴 기업뿐만 아니라 사라진 기업도 역대 가장 많았다. 

지난해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2016년 기준 국내 신생기업이 1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65.3%, 3년 후에도 남아있을 확률은 41.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신생기업 3년 이상 생존율 평균이 약 57%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조한 성적표다. 

아등바등 3년을 살아남으면 또다른 고비와 맞닥뜨린다. 창업 3~7년차에 찾아온다는 혹독한 데스밸리(신생기업이 자금조달ㆍ시장진입 등에 어려움을 겪어 자금난에 빠지는 현상)를 이겨내야 한다. 용케 데스밸리까지 무사히 넘었다 하더라도 신생기업 앞에 펼쳐진 길이 살얼음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규모도 작고 자본도 부족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여곡절 많았던 창업기 

2012년 설립한 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코어라인소프트는 이런 살얼음판에서 8년을 버텼다. 지난 4월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진단 기술을 세계 최초로 발표해 주목을 받았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사실 코어라인소프트가 지나온 곡절을 살피려면 시계추를 좀 더 앞으로 돌려야 한다. 2001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의 한 연구동아리에서 3명의 엔지니어가 의기투합해 회사를 설립했는데, 그게 코어라인소프트의 전신인 ‘메비시스’다. 메비시스를 설립한 3명의 엔지니어는 현 코어라인소프트 공동대표인 최정필ㆍ김진국 대표와 이재연 연구소장이다. 

기술력은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당시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다. 의료기기업체 바텍을 비롯해 이름 있는 기업들이 이 회사의 제품을 찾았다.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선 연구 외에도 신경써야 할 게 많았다. 로열티를 받는 조건 없이 판권을 넘기는 바람에 기술적 성과가 실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회사를 전문적으로 경영한 경험이 없다보니 겪은 시행착오였다. 

 

2007년은 변곡점이었다. 이 회사를 눈여겨보던 의료영상분석 솔루션 업체 인피니트헬스케어가 합병을 제안했다. 당시 인피니트헬스케어 최고경영자(CEO)였던 이선주 대표가 거듭 설득했고, 메비시스는 인피니트헬스케어에 인수됐다. 

두 회사의 시너지가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최정필 대표가 먼저 회사를 그만둔 데 이어, 2012년엔 김진국 대표와 이재연 연구소장도 잇따라 사표를 던졌다. 메비시스의 인수를 주도했던 이선주 대표가 그만둔 이후 인피니트헬스케어 측과 의견이 엇갈렸던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회사를 나온 김진국 대표와 이재연 소장은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다. 이번에야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설립된 게 지금의 코어라인소프트다.[※참고 : 최정필 대표는 2015년에 합류했다.] 

하지만 재도전은 더 힘들었다. 당차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2012년 3명이었던 직원 수가 2014년 13명으로 늘었지만 매출은 변변치 않았다. 국책과제를 수행하면서 받은 정부보조금으로는 인건비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건 2015년부터다. 오스템임플란트, 큐렉소 등 의료기기업체로부터 개발 외주를 받으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지시 안 할게 맘대로 해봐”

하지만 외주로 벌어들이는 수익에는 한계가 있었다. 외주 수요와 규모가 해마다 달라 수익이 불규칙적이었다. 실제로 코어라인소프트는 2016년에 개발 외주를 받아 2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지만, 2017년과 2018년엔 매출이 반토막으로 줄었다. 영업이익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김 대표는 모험을 걸었다. 마케팅부 사업운영팀(이하 마케팅부)을 신설해 새로운 매출처를 찾아보자는 제안이었다. 여기엔 회사를 유지할 순 있어도 성장하긴 어렵다는 냉정한 판단이 깔려있었다. 통상 경영사정이 여의치 않은 기업들은 가장 먼저 몸집부터 줄인다. 하지만 코어라인소프트는 고용과 투자를 늘리는 ‘역발상’으로 맞섰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이후의 전략이었다. 김 대표는 마케팅부와 관련한 업무를 경영기획부에 있던 정정운 팀장에게 일임했다. 이는 마케팅부와 관련한 일은 대표나 다른 부서에서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직원 한명 한명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회사의 성장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띤 팀을 꾸리고 운영하는 일이다. 이를 감안하면 김 대표의 결정은 모험에 가까웠다. 

정 팀장은 메비시스에서부터 인피니트헬스케어 때까지 함께 일하다가 2015년에 코어라인소프트에 다시 합류했다. 함께 일한 시간이 긴 만큼 정 팀장을 향한 신뢰가 높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김 대표가 정 팀장에게 일을 전적으로 맡긴 건 신뢰보단 그의 성향 때문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정 팀장에게 마케팅부를 맡기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너 같은 사람 뽑아서 너 같은 사람들로만 팀을 이루면 재밌지 않겠냐.” 

정 팀장은 회사 내 아웃사이더다. 남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회사에 필요한 일을 알아서 하기 때문에 따로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너 같은 사람’이라는 건 이를 뜻한다. 정 팀장이 마케팅부를 맡으면서 김 대표에게 “별도의 지시나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현재 코어라인소프트의 마케팅부는 스스로 목표와 역할을 정해서 일을 한다.

정정운 팀장이 팀원을 뽑을 때 중요하게 여긴 건 경력보다 성향이었다.[사진=천막사진관]
정정운 팀장이 팀원을 뽑을 때 중요하게 여긴 건 경력보다 성향이었다.[사진=천막사진관]

이런 경영전략은 흡사 일본 세라믹 제조업체 교세라를 통해 알려진 ‘아메바 경영’과 일맥상통한다. 아메바 경영은 회사를 작은 단위의 독립된 조직으로 나누는 경영 전략을 일컫는다. 최고경영자(CEO)가 모든 조직을 지시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각 조직의 리더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의사결정을 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아메바 경영에선 각 조직이 전문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코어라인소프트의 마케팅부는 기존의 아메바 경영과는 맥이 조금 다르다. 지난 2월 신설된 코어라인소프트 마케팅부엔 소위 마케팅 전문가가 없다. 팀장을 제외하곤 코어라인소프트의 제품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경력’이 풍부한 팀원보다는 ‘성향’이 잘 맞는 팀원을 원했기 때문이다. 정 팀장은 “경력이 많은 사람은 고착화된 관습 때문에 쉽게 어울리거나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성향이 맞으면 팀원들 간에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새로운 장점을 찾아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다양하고 독특한 이력이 많은 사람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경험이 풍부할수록 순발력이 좋고 시야가 트여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만 보면 코어라인소프트와 정 팀장의 판단은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케팅부의 별난 행보가 쏠쏠한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부가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따낸 계약은 약 6억원 규모다. 당초 마케팅부가 세운 올해 목표 매출은 4억원이었다. 이미 2억원가량을 초과달성한 셈이다. 

 

정 팀장은 지금 기세로 보면 올해 안에 1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어라인소프트가 세운 올해 목표 매출이 12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마케팅부가 올린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정 팀장은 “마케팅 경험이 적어서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은 게 되레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어라인소프트의 마케팅부 팀원들은 기존의 기업 문화가 아닌 스스로의 몸에 맞는 룰을 만들어가고 있다. 상하관계 구조를 지양하는 건 단적인 예다. 

다른 기업들처럼 형식적인 구조만 바꾼 게 아니다. 마케팅부는 서로를 스스럼 없이 대한다. 출장을 갈 때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것도 마케팅부만의 문화다. 폐쇄적인 호텔 대신 거실이 있는 에어비앤비는 마케팅부의 시너지를 높이는 화합의 장이 된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거부감보다는 시너지가 날 가능성이 높다. 

코어라인소프트 마케팅부는 자신들을 일컬어 ‘외인구단’이라고 부른다. 아웃사이더들이 모여서 큰 반향을 일으킬 거라는 의미가 담겼다. 정 팀장은 외인구단이 고착화된 기업 문화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회사가 성장하고 규모가 커져도 이런 시스템과 문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 문화는 또다시 고착화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코어라인소프트의 마케팅부가 가진 DNA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정 팀장도 이런 우려를 인정했다. “조직 규모가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제약이 생긴다. 지금도 팀원을 더 영입하려는 계획이 있는데, 고민이 많다. 지금의 분위기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 방침을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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