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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Class

“왜 재벌 회장과 우리가 내는 국민연금이 비슷하죠?”

2019. 07. 31 by 김다린 기자

취업문이 바늘구멍처럼 좁다. 통과해도 첩첩산중이다. 치솟는 물가ㆍ집값과 비교하면 내 월급은 초라하기만 하다. ‘내 가게’를 차려 사장님이 돼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골목상권은 지역 불문 레드오션이다. 현실도 팍팍한데 미래는 더 캄캄하다. 이렇게 한숨짓는 청년들이 7월 18일 오후 더스쿠프(The SCOOP) 회의실에 모였다. 700조원의 돈을 품고도 노후 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는 국민연금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더스쿠프(The SCOOP) 회의실에 청년들이 모였다. 국민연금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사진=천막사진관]
더스쿠프(The SCOOP) 회의실에 청년들이 모였다. 국민연금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사진=천막사진관]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고로 국민연금 정책의 대상자다. 국민연금은 젊을 때 모아둔 돈을 노후에 돌려주는 제도다. 현재 479만명이 매달 국민연금을 받고 있고, 가입자는 220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종종 우려의 대상이 된다. 5년마다 국민연금의 미래전망을 예측하는 재정추계 결과가 발표될 때 그렇다. 지난해 8월, 2057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5년 전보다 고갈 시점이 3년 앞당겨졌다. 우려의 진원지는 여기다. “기금이 고갈을 앞두고 있는데, 과연 나는 내가 낸 만큼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고갈이 예상되는 2057년은 올해 27세인 청년의 국민연금 지급개시연령이 시작되는 해다. 마침 고갈될 쯤 연금을 받게 될 청년들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편의점주 이호준(39)씨, 대학원생 김종국(32)씨, 직장인 장일훈(32)씨, 취업준비생 이현승(28)씨 등이 더스쿠프(The SCOOP) 회의실에 모였다. 각계각층 청년들과 함께 국민연금의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서다. 국민연금 문제에 심각성을 느껴 「우리가 경제다」란 책까지 낸 국민연금 전문가 김의철 네이처인터네셔널 상무가 해설을 도왔다. 

#1교시 국민연금이 뭔가요? 

“여러분들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의철 상무의 첫 질문에 취업준비생 이현승씨가 단박에 ‘세금’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청년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 상무는 반대로 저었다. 

김의철 상무 : “국민연금은 말 그대로 보험입니다. 일부에선 준準조세라고 하지만 어찌됐든 세금은 아닙니다.” 
편의점주 호준씨 : “그런데 꼭 내야하잖아요. 세금처럼 말이죠.” 
김의철 상무 : “맞습니다. 공단은 조세징수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고지서를 발부하고, 독촉장을 보내기도 합니다. 연체할 경우 압류 통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세금이 아니라니, 뭔가 이상하죠?” 

청년들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자 김 상무가 말을 이었다. “이건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여러 모순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국민연금의 크고 무서운 모순을 하나씩 풀어볼까요.” 

#2교시 당신들의 국민연금 

김의철 상무 : “국민연금 고지서를 들고 와달라고 부탁드렸는데…. 대학원생인 종국씨와 취준생인 현승씨는 받아본 적 없죠? 나머지 분들은요.” 

편의점주 이호준씨가 손사래를 쳤다. “매년 봄쯤 받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없어 어딘가에 쌓아두고 못 찾았다”는 거였다. 

편의점주 호준씨 : “부모님이 현재 연금을 수령 중인데, 매달 40만~50만원은 받습니다. 저 역시 매달 200만원 수준을 받는다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김의철 상무 : “적지 않은 돈인데요. 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죠?” 
편의점주 호준씨 : “너무 먼 미래잖아요.” 
직장인 일훈씨 : “저 역시 이번에 처음 들여다봤습니다.” 
김의철 상무 : “다들 무관심하군요. 노후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것 치곤 말이죠.”
 
청년들이 민망한 표정을 짓자, 김의철 상무가 말을 이었다. “당연한 겁니다. 국민연금은 당장 취업과 생존이라는 눈앞의 문제로 바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기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됩니다. 국민연금은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관심 갖게 만드는 것도 정부의 몫입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의 국민연금 얘기를 나눠볼까요?”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확대된 배경에는 국민연금도 있다.[사진=뉴시스]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확대된 배경에는 국민연금도 있다.[사진=뉴시스]

직장인 일훈씨 : “저는 2052년에 받을 수 있다고 적혀있네요. 현재가치 기준으로는 매달 90만원씩. 적지 않은 돈인데, 정말 주나요?” 
편의점주 호준씨 : “정부 발표대로라면 고갈 시점이 2057년, 기금이 바닥을 보이겠죠.” 
취준생 현승씨 : “벌써요? 저는 아직 납부도 못해봤는데….” 
김의철 상무 :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금고갈과 연금은 상관없으니까요. 공단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기금이 소진될 경우 국가에서 책임지고 지급한다.’ 한마디로 국가가 존속하는 한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정부가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통해 고갈 시기를 예상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편의점주 호준씨 : “그럼 대체 뭐가 문제죠?” 
김의철 상무 : “연금을 받는 건 ‘결과의 문제’입니다. 국가가 약속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주겠죠. 중요한 건 방식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금 얘기를 먼저 풀어야 해요.” 

#3교시 3대 연기금의 비밀  

뉴스를 챙겨 읽다 보면 국민연금을 수식하는 ‘세계 3대 연기금’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연기금은 ‘연금(pension)’과 ‘기금(funds)’을 합친 단어. 한마디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만든 기금이란 얘기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자산규모 기준으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다. 올해 4월말 기준으로 690조원이 쌓였다. 지금은 700조원을 넘어섰다. 

대학원생 종국씨 : “한국은 국민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내수시장이 큰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에서 손꼽힐 규모의 돈이 모였죠?” 
김의철 상무 :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아두고 덜 썼기 때문이에요. 이런 방식의 운용을 적립식이라고 합니다. 대조되는 방식은 부과식이죠. 적립금을 쌓지 않고, 젊은이들이 그해에 필요한 보험료를 내서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겁니다.” 
대학원생 종국씨 : “다른 국가는요? 적립식이 아닌가요?” 
김의철 상무 : “네, 기금규모 1위인 일본과 3위인 우리만 적립식으로 운영 중입니다. 2위 노르웨이는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금이라 성격이 다릅니다. 논외로 치고, 이번엔 질문을 던질게요. 우리는 왜 적립식으로 운용하고 있을까요?” 
대학원생 종국씨 : “규모의 경제 아닐까요? 부자들이 더 쉽게 돈을 벌듯이, 적립금을 쌓아두고 불리면 국민에게 더 많은 돈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규모의 경제’의 위력은 대단했다. 국민연금 기금의 누적 수익금은 37조3000억원이고, 수익률은 5.4%에 달한다. 이는 자산 99.9%를 금융투자에 쏟은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주식투자의 성과가 높다.

올해만 해도 해외주식 투자로 20.3%의 수익률을 얻었고, 국내주식 시장에서도 9.9%라는 고수익을 올렸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국민연금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에 투자한 자금은 120조원,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1400조원)의 8%를 국민연금이 담당하고 있다. 

김의철 상무 : “너무 딱딱한 얘기만 했죠. 분위기를 전환해볼까요. 취준생 현승씨, 요새 취업시장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취준생 현승씨 : “막 뛰어든 참이지만, 쉽지 않네요. 주변 친구들은 대기업 아니면 공무원을 노리고 있는데 문이 좁다고 난리예요.” 
김의철 상무 : “제가 만약 ‘청년세대 취업난의 배경에 국민연금이 있다’고 주장하면, 현승씨는 뭐라고 답하겠어요?” 
취준생 현승씨 : “‘국민연금을 내지도 않았는데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죠’라고 되묻겠죠.” 

# 4교시 경제생태계 망치는 국민연금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가팔랐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수습한 이후에도 그랬다. 특히 수출기업들의 과감한 설비투자는 이런 성장의 디딤돌이자 발판이었다. 문제는 이를 계기로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소득분배가 악화하는 등 양극화 현상이 본격화됐다는 점이다. 

김의철 상무 : “흥미롭게도 국민연금이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시행된 시점이 이때입니다. 1997년만 해도 국민연금 기금은 28조원에 불과했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200 0%가 넘는 상승률이에요. 불어난 돈, 어디에 투자됐을까요? 바로 수출 대기업입니다. 이들의 과감한 설비투자에 국민연금이 톡톡히 기여했죠. 국민연금의 대형주 투자비중은 지금도 85%에 육박합니다.” 
편의점주 호준씨 : “그렇다고 수익성이 불투명한 중소기업에 투자할 순 없지 않나요? 국민 노후를 위한 돈을 가지고 위험한 도박을 할 순 없으니까요.” 
김의철 상무 : “대형주는 안전할까요? 아니죠. 무역전쟁에 주가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도박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는 생태계’라는 김 상무의 설명은 이어졌다. “수출 대기업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만큼의 기회를 얻었어요. 반면 중소기업은 어떻습니까. 성장의 벽을 넘지 못했죠. 시간이 갈수록 대기업ㆍ중소기업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골목상권 등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국민연금 기금은 강제저축으로 민간소비를 감소시키고 있죠. 지금 국민연금을 국민 수대로 나누면 1인당 1400여만원을 나눠 가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한 돈이 자본시장에 묶여있다는 얘기입니다. 

직장인 일훈씨 : “어찌됐든 수출 대기업 때문에 한국경제 전체가 성장했잖아요. 수출이 늘고 투자가 늘면 일자리와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장점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김의철 상무 : “무시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영향이 적죠. 예를 들어볼까요. 호준씨, 10억원을 투자받고 편의점을 한다면, 몇명이나 고용할 수 있나요?” 
편의점주 호준씨 : “10억원이라…. 가게 몇개는 더 낼 수 있으니, 못해도 열댓명은 되지 않을까요.” 
김의철 상무 : “반도체는 고작 3.6명을 고용합니다. 고부가가치ㆍ장치 산업이기 때문에 투자가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죠. 수출 호황에도 취준생인 현승씨와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이유입니다.” 


#5교시 끝 없는 문제들  

김의철 상무의 주장을 정리하면, 국민연금 기금은 우리 경제의 해악을 끼치고 있다. 공룡처럼 커진 기금이 경제생태계 전반에 고루 배분되는 게 아니라 정부, 대기업 등 특정 집단에 집중되고 있어서다. 국민연금 기금의 성장이 곧 국민들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정(+)의 관계’를 띠고 있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의철 상무 : “호준씨,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어때요?” 
편의점주 호준씨 : “‘4대보험 가입 안 하면 안돼요?’라고 묻는 친구들이 많죠. 가뜩이나 최저임금 수준으로 주는데, 거기서 더 떼니 뭔가 덜 주는 기분도 들고….” 
김의철 상무 : “사업주가 절반을 대신 납부해야 하니, 호준씨한테도 부담이 되구요.” 
편의점주 현승씨 :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고 있었지만, 부담이 적지 않죠. 고용비용이 늘어나는 거니까요.” 
김의철 상무 : “일훈씨는 대기업에 다녔었죠? 아마 일훈씨가 내는 연금과 대기업 오너가 내는 연금은 비슷할 겁니다. 많아봐야 42만3000원 수준이니까요.” 
직장인 일훈씨 : “저랑 그 유명한 분이 비슷하게 낸다고요?” 
김의철 상무 : “재벌 회장의 월소득도 468만원으로 간주하는 소득상한제를 두고 있습니다. 공단은 ‘소득재분배’ 역할을 한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어떤가요? 호준씨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느끼는 부담과 대기업 오너가 느끼는 국민연금 부담은 많이 다르겠죠? 아무리 몇십년 뒤에 돌려주는 돈이라지만 지금의 팍팍한 삶은 어떻게 합니까. 난센스죠.” 

# 6교시 숱한 난제와 고민들  

김의철 상무 : “아마 국민연금 기금은 고갈되지 않을 겁니다. 한국 자본시장이 무너지는 순간이 될 테니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기금을 유지할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더 걷는 방법이 제일 쉽죠. 수익성이 좋은 위험한 투자에 기금을 붓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 경제에 병폐가 쌓일 거고, 국민 개인의 부담도 쌓이겠죠.” 

대학원생 종국씨 : “답답한 얘기네요. 그렇다고 국민연금을 안 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해결책이 있나요?” 
김의철 상무 :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다른 국가처럼 당장 부과식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지만 보험료율이 올라 국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거고요. 결국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죠. 하지만 여러분처럼 국민연금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르는데 어떻게 논의가 시작되겠습니까.” 

직장인 일훈씨 : “정부 차원에서도 개혁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던데….” 
김의철 상무 : “더 걷고, 덜 주자는 게 핵심입니다. 눈앞의 위기만 바꾸려는 기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성세대로서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청년세대에게 넘겨야 하는 점이 참 미안합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게끔 여러분 세대의 감시와 견제가 절실합니다.” 

진영을 막론하고 역대 정부는 청년 지원 관련 정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청년의 삶은 ‘N포세대’ ‘헬조선’  같은 단어가 식상할 정도로 악화일로만 걸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이런 비극에 ‘공모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부터라도 진정한 개혁에 나설 때다. 국민연금은 청년에게 먼 미래가 아니다. 모두에게 지금의 문제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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