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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ㆍ바이오와 거품

제약·바이오, 화려한 날은 애당초 없었다

2019. 08. 20 by 고준영 기자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던 제약ㆍ바이오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연초부터 대형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다. 일부에선 기대를 저버린 제약ㆍ바이오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또다른 일부는 위기론을 말한다. 하지만 화려한 날도 없었으니 최악의 상황도 아니다. 이는 긍정적인 말이 아니다. 걸음마 수준인 국내 제약ㆍ바이오에 그렇게도 많은 거품이 껴 있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제약ㆍ바이오의 민낯을 냉정하게 살펴봤다.

신라젠의 펙사벡은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신약후보물질 중 하나였지만 최근 임상이 중단됐다.[사진=연합뉴스]
신라젠의 펙사벡은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신약후보물질 중 하나였지만 최근 임상이 중단됐다.[사진=연합뉴스]

잇따른 악재가 제약ㆍ바이오산업을 덮쳤다. 연초부터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 3월, 국내 최초의 유전자치료제로 주목을 받았던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가 사상 초유의 성분변경 논란을 빚었다. 판매 승인을 받기 위해 제약사가 보고한 정보와 실제 판매된 약의 성분이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승인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서둘러 회수ㆍ폐기명령을 내렸다.

7월, 인보사 사태가 채 진정되기도 전에 또 악재가 터졌다. 2015년 신화를 썼던 한미약품의 기술수출계약이 또 문제가 됐다. 올해 1월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수출했던 기술의 권리를 돌려받은 데 이어, 또다른 글로벌 제약사 얀센과의 계약이 파기됐다. 이로써 한미약품은 올해에만 2건, 총 4건의 기술수출계약이 해지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신라젠은 지난 4일 신약후보물질 ‘펙사벡(간암치료제)’의 임상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로부터 신약으로서의 가치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받고 나서다. 앞선 6월 에이치엘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신약후보물질 ‘리보세라닙(위암치료제)’의 임상지연 소식을 알린 터라 충격은 더욱 컸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에 크고 작은 악재가 많았지만 올해 이슈들은 유독 굵직했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을 향한 기대와 신뢰는 가파르게 추락했고, 일부에선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도 쏟아냈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해 4918.37포인트(1월 15일)까지 올랐던 KRX헬스케어 지수(코스피ㆍ코스닥 주요 제약ㆍ바이오 종목 73개)가 지난 13일 2377.09포인트까지 떨어졌다.

 

그 때문일까. 투자자들은 묻는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이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걸까요?” 우문愚問이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은 사실 ‘호시절’이 없었다. 임상시험 하나에 주가가 치솟는 등 버블 속에서 쓸데없는 희망만 키워왔다. 신약을 둘러싸고 ‘왜곡된 신화’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업계에 따르면 5년여 전만 해도 대다수 국내 제약사는 복제약을 만들거나 내수용 의약품을 개발하는 게 전부였다. 신약 개발에 힘을 쏟는 곳은 많지 않았다.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도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능력이 아니라 영업력이었다. 

이런 제약ㆍ바이오산업에 변화의 바람이 분 건 2015년께부터다. 그해 한미약품이 6건의 대형 기술수출계약을 체결했고, 업계 안팎의 이목을 끌었다. 여기에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는 제약ㆍ바이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산업 규모가 부쩍 커졌다.

가능성을 엿본 투자자들이 불나방처럼 제약ㆍ바이오산업에 뛰어들었고, 2016년 역대 가장 많은 443개의 바이오벤처가 설립됐다. 전통의 제약사들 사이에서도 신약 개발에 열을 올리는 곳이 크게 늘었다. 

기업만이 아니다. 정부도 목소리를 냈다. 매번 말의 성찬에 그쳤던 ‘바이오원년’ 슬로건을 다시 꺼내들었다. 우리나라를 바이오강국으로 키우겠다며 지원방안도 살폈다. 그럴수록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제약ㆍ바이오산업에 집중됐고, 여론도 움직였다. 


이런 변화의 결과는 주식시장에서 가장 크게 드러났다. 주식시장엔 제2의 한미약품을 찾는 이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 증권사가 보조를 맞추면서 판을 키웠다. 더 많은 제약ㆍ바이오기업들을 찾아내고, 매수 보고서를 쏟아냈던 거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바깥 세상의 빛을 본 기업들은 숱하게 많다. 특히 임상 이슈나 기술수출실적이라도 있으면 해당 기업엔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그럴싸하게 포장됐다. 
 

문제는 부쩍 성장한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의 토대를 뒷받침하는 실체가 얼마나 튼튼하냐는 점이다. 눈부신 조명에 가려진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의 현주소를 정확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의 가치를 가늠하려면 해외시장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미국시장의 관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기준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꼽힌다. FDA의 기준을 넘으면 다른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북미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1352조원이다. 이는 세계 시장의 43.6%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에 비하면 국내 시장 규모는 22조원(세계 시장의 1.6%)에 불과하다. 아무리 뛰어난 신약을 개발해도 미국 시장의 관문을 뚫지 못하면 얻을 수 있는 가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국내 제약ㆍ바이오기업들의 FDA 임상 실적은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이 FDA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은 건 총 14건이다. 그중 6개가 신약, 나머지 8개는 바이오시밀러다. 하지만 그마저도 만족할 만한 성적이라고 보긴 힘들다.

익명을 원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국내 신약을 보면 대다수가 항생제거나 시장가치가 크기 않은 약이 많다”면서 “시장성이 크고 개발 난이도가 높은 항암제 등은 아직 글로벌 시장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의 수준을 평가하기엔 아직 보여준 성과가 미미하다는 얘기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을 둘러싼 과도한 기대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는 또 있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기업들에 매긴 가치를 더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신약 개발 성공률 때문이다. 통상 신약후보물질의 가치는 신약이 창출할 미래가치에 FDA의 임상 단계별 성공률을 적용해 산출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엔 이 계산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진홍국 애널리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FDA가 공개한 내용을 살펴보면, 신약이 임상1상부터 품목허가를 받기까지의 확률은 9.6%다. 하지만 이 확률은 유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숱한 임상을 통해 만든 수치다. FDA로부터 승인을 받은 사례가 극히 적은 국내 기업들에 이 확률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되레 그보다 확률을 낮추는 게 냉정한 평가다.”

국내 제약ㆍ바이오기업을 덮친 악재 얘기를 다시 해보자. 한미약품은 2건의 기술수출이 파기됐고, 신라젠과 에이치엘비는 만족스러운 임상결과를 얻지 못했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의 토대가 아직 튼튼하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 밖의 결과가 아니다. 국내 제약ㆍ바이오기업이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는 말도 틀리다.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고, 이게 냉정한 현주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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