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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오롯 영화를읽는사람들 소리 못듣는 농인에게 자막 선물하는 사람들

[단비의 질주❶ 오롯] 모자람 없이 온전히 영화를 읽다

2020. 12. 29 by 심지영 기자

소리 없는 영화는 사진의 나열에 불과하다. 주인공이 왜 흠칫 뒤돌아봤는지,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슬픈 건지 무서운 건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청각장애인에게 영화에 대사뿐만 아니라 배경음악·음향 효과·화자 등의 다양한 정보를 담은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자막이 필요한 이유다. 오롯 영화를읽는사람들(이하 오롯)은 배리어프리 자막을 만들고 영화제를 통해 배리어프리 자막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오롯은 청각장애인의 문화 소외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배리어프리 자막을 만들고 있다. 사진은 최인혜 오롯 대표. [사진=천막사진관]
오롯은 청각장애인의 문화 소외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배리어프리 자막을 만들고 있다. 사진은 최인혜 오롯 대표. [사진=천막사진관]

극장에서 상영 중인 한국 영화를 보는 것. 누군가에겐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자 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그린 라일라 작가는 영화 ‘왕의 남자’의 관람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❶극장을 찾아 왕의 남자 ‘화면’을 감상한다. ❷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알아낼 수 있는 모든 대사를 검색해 대본집을 만든다. ❸대본집을 통째로 외운다. ❹다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장면과 대사를 맞춘다.’  

최인혜(22) 오롯 대표는 이 웹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대본집을 만들고 통째로 외우고 있었어요.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자막 제작·제공 사업을 결심한 계기가 됐죠.” 배리어프리 자막이란 화자·대사·음악 등 모든 소리 정보를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일반 자막과 달리 배경 음악과 음향 효과까지 전부 표기해 소리가 없어도 영화를 ‘읽을’ 수 있다. 청각장애인에겐 반드시 필요한 플랫폼이지만 국내 영화 중 배리어프리 자막을 입힌 작품 비율은 0.01%에 불과하다. 최 대표는 “배리어프리 영화는 음성 해설이 함께 제공돼 약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에겐 되레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음성 없는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에 뛰어든 이유”라고 말했다.  

오롯의 수익모델은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과 판매다. 공들여 제작한 자막은 VOD· OTT 업체에 제공한다. 기업과 함께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LG전자 등 여러 기업이 CSR 차원에서 오롯의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에 참여했다. 영화제 출품작을 통해 선보인 자막도 많다. 지난해 11월엔 자체 상영회를 열고 배리어프리 자막을 입힌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나는 보리’ 두 영화를 선보였다. 올 11월에는 대한민국패럴스마트폰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60편의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공했다. 

이런 노력은 알찬 열매로 이어졌다. 오롯은 지난해 제1회 상생연대 동아리 활동지원사업에서 최우수상을, 올 9월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한 소셜벤처 경연대회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렇다고 이 회사가 탄탄대로만 걸어온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저작권은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영화 한편당 판권을 가진 업체가 적어도 3~4곳에 달해서다. 배리어프리 자막을 만들려면 이들 모두를 설득해야 하는데, 업체들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비용에 부담을 느껴 제작을 꺼린다. 

최 대표는 국내서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이 의무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이 제도화돼 있어요. 국내에선 관련 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한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죠.”

오롯의 목표가 ‘배리어프리 자막 의무화’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자막 제작이 의무화되면 저작권을 두고 씨름할 필요가 사라진다. 자막 검수자로 청각장애인을 고용해 장애인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더 많은 청각장애인 분들에게 모자람 없이 온전히, ‘오롯’이 닿았으면 좋겠어요.”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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