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 오른 초이노믹스

부동산 시장엔 찬바람이 불고,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가계부채 원리금 탓에 쓸 돈도 없다. 당연히 시선은 ‘초이노믹스’에 쏠린다. “부메랑이 날아올 수 있다”는 우려를 무시하고 부동산 규제를 줄줄이 풀어제낀 초이노믹스 때문에 한국경제가 휘청이는 게 아니냐는 거다. 초이노믹스, 심판대에 올랐다.

▲ 초이노믹스가 비판을 받고 있다. 부동산 경기를 띄워서 거품경제를 만들고 가계부채라는 뇌관을 키웠기 때문이다.[사진=아이클릭아트]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70% 수준인 현 상태에서 30%만 더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 신용보강이 이뤄지면 전세를 살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매매로 전환할 수 있다.” 2014년 7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꺼낸 말이다. 집값이 전셋값의 70% 수준이니, 기왕이면 30%를 더 빌려 주택을 사라는 내용이다. “빚내서 집 사라.” 최 전 총리가 펼친 경제 정책의 핵심 키워드다. 국민들이 돈을 더 빌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금리를 내렸다. 이런 정책을 두고 시장과 미디어는 최경환 전 부총리의 이름을 따 ‘초이노믹스’란 이름을 붙였다.

초이노믹스가 구체화하자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활기가 넘쳤던 이유다. 지난해 새 아파트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최근 10년 새 가장 치열했다. 전국의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14.2대 1로 2007년 이후 가장 높았다. 전체 청약자 수도 419만명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5년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4.9% 올랐고, 지난해도 0.7 %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2012년 73만5414가구로 바닥을 찍었던 주택매매거래량은 계속 상승하다 지난해 119만3691가구까지 치솟았다. 흥행은 주택시장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유동자금은 오피스텔ㆍ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으로 몰렸다.

부동산 업계에 분 훈풍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2분기 건설 투자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 비율은 51.5%.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3.3% 중 절반이 넘는 1.7%포인트를 건설 산업 혼자 이끌었다는 얘기다. 1993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최근 4개 분기(2015년 4분기~2016년 3분기) GDP 성장률 3% 중 건설투자가 책임진 비중은 1.2%다.

 
글로벌 경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우리나라 경제가 빈사瀕死 상태에 빠지지 않은 건 급증한 건설투자 덕분이라는 얘기다.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이를 초이노믹스의 공이라고 말한다. 가라앉아 있던 부동산 시장을 끌어올렸고 우리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을 막았으니, 할 건 다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가계부채라는 모래성 위에…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견해일 뿐이다. 초이노믹스의 정책 키워드는 ‘빚내서 집을 사라’였다. 또다른 경제전문가들은 이 키워드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한국경제의 폐부肺腑를 찌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중 하나가 가계부채의 습격이다. 하지만 ‘최경환 경제팀’은 이 경고를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고집스럽게 부동산 규제를 풀었고, 시장에 ‘버블’을 불어넣었다. 결과는 지금 나타난 그대로다. 1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소비를 억누르고 있다. 원리금 상환에 짓눌린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이는 곧 경제성장률 저하로 이어졌다. 정부가 부랴부랴 주택 공급 축소를 뼈대로 하는 ‘8ㆍ25 가계부채 대책(2016년)’ 카드를 꺼냈지만 시장은 정부 계산과 반대로 움직였다. 이 정책은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시그널로 읽혔고, 강남권 재건축 단지 분양과 맞물려 막바지 청약 열풍이 심해졌다. 결국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르고 나서야 정부는 분양권 전매제한 및 1순위ㆍ재당첨 청약 조건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11ㆍ3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라던 정책기조가 2년여 만에 바뀐 것이다. 하지만 투기꾼들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야 꺼낸 ‘뒷북 행정’이었다.

지금까지의 리스크는 올해 터질지 모르는 악재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무엇보다 미국발發 금리인상이 문제다. 미국은 올해 중 3차례의 추가 인상을 계획 중이다. 현재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는 각각 0.25~0.50%와 1.25%인데,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양국의 금리차가 좁아진다.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고금리에 따른 고수익을 노리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이 국내에 머물 이유가 없다. 외국인 자본 이탈과 원ㆍ달러 환율 급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외국인 자본 이탈은 가뜩이나 박스권에 갇혀 있는 국내 증시에도 악재다. 이를 방어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이는 곧 국내 대출자의 이자 부담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가뜩이나 고꾸라지는 소비심리가 더 나빠진다는 얘기다. ‘경기 악화’를 우려한 한국은행이 7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지만, 금융권 움직임은 빨랐다.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COFIXㆍ자금조달비용지수)가 지난해 9월부터 연속 상승세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설사들은 분양 물량 밀어내기를 멈추지 않을 태세다. 시장이 더 무너지기 전까지 분양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서다. 올해 1월 한달간만 해도 전국 27곳에서 1만94가구가 분양된다. 전년 동월(6861가구) 대비로는 47.1% 증가했다. 아직까지도 청약경쟁률이 높은 만큼 시장 상황이 좋을 때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되는 날…

초이노믹스로 만든 호황기에 쏟아졌던 주택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입주를 시작했다. 당장 2〜4월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 7만9068세대다. 전년 대비 36% 증가한 수치다.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36만9000가구로 1997년 43만2000가구 이후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내년에는 42만 가구가 입주 대기 중이다. 정부가 언급한 우리나라의 연간 적정 주택공급량이 39만 가구인 걸 감안하면 ‘공급 과잉’이란 진단을 음모론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조명래 단국대(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호황은 시장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초이노믹스로 수요를 억지로 짜낸 결과”라면서 “시장을 왜곡한 수요는 결국 꺼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올해를 기점으로 미입주, 미계약, 저가매각, 가격 하락이 시장에 속출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초이노믹스, 우리나라 경제의 비극이 될 공산이 크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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