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지역주택조합 법 밖의 문제 1편
주택법 위반 여부 조사 중인 정부
조합 위임장은 정부 조사 범위 밖
사인 간 거래로 조사 대상 아냐
다른 조합원 재산 피해 입을까봐
어쩔 수 없이 사인하는 사람들

정부가 주택법으로 지역주택조합을 감독하고 있지만 위임장은 사인 간 거래라는 이유로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정부가 주택법으로 지역주택조합을 감독하고 있지만 위임장은 사인 간 거래라는 이유로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 “전국적으로 모든 동네 지역주택조합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시를 해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어떤 대책을 마련하면 좋을지 검토 중이다.” 6월 25일 광주전남 타운홀 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지역주택조합은 숱한 문제를 껴안고 있다. 조합 임원의 횡령, 초기 광고와 달라진 계약 내용, 2배까지 늘어나는 분담금 등이 대표적 고질병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전국 단위의 실태조사를 진행했지만  얼마나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조사하지 못한 문제들이 워낙 많아서다. 

# 이재명 정부는 과연 지역주택조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더스쿠프가 정부가 보지 못한 지역주택조합의 구멍과 함정을 들여다봤다. 

국토교통부는 6월부터 8월까지 전국 지역주택조합 전수 실태조사를 진행했다.[사진 | 뉴시스]
국토교통부는 6월부터 8월까지 전국 지역주택조합 전수 실태조사를 진행했다.[사진 | 뉴시스]

시장엔 “지역주택조합은 원수에게도 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지역주택조합은 그만큼 성공하기도 어렵고, 분쟁도 많다. 사업 방향이 틀어지면 평생 모은 재산을 돌려받지도 못한 채 준공만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이번에도 정부가 놓친 부분이 있다. 위임장이다.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지역주택조합’을 정부가 열어보기로 했다. 6월 말 국토교통부, 국민권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특별합동점검을 하겠다고 예고했고 7월부터는 실제 조사에 나섰다. 수십년간 지역주택조합사업은 숱한 비리 문제에 얽히면서 피해자와 재산피해를 낳았다. 

대통령도 지역주택조합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25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광주전남 타운홀 미팅’에서 송정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이라고 밝힌 시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광주에만 벌어지는 상황도 아니고 전국적으로 모든 동네 지역주택조합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시를 해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어떤 대책을 마련하면 좋을지 검토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길 바란다.”

대통령이 지역주택조합 문제를 유심히 보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주택을 만들기 위한 ‘조합’이다 보니 대규모 사업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평생 모은 돈을 조합에 넣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조합원들은 평범한 시민이지 주택전문가가 아니란 점이다. 부동산 사업이 이뤄지는 방식을 잘 모르기 때문에 조합의 임원진들이 돈을 빼돌리는 건 일도 아니다. 실제로도 국토부가 이번 실태조사 대상으로 삼은 618개 조합 중 187개 조합(30.2%)에서 293건의 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쟁의 이유는 천차만별이었다. A조합은 총회에서 원하는 내용을 통과시키기 위해 조합 임원이 불법적으로 조합원 가입을 새로 받아 회원 수를 맘대로 늘렸다. B조합은 자격 부적격 통보를 받은 사실을 조합원에게 알리지 않은 채 분담금을 계속 받아왔다. 조합원들은 조합에 분담금 반환을 요청했지만 이를 끝까지 거부했다. 

■ 잡음 발생 이유 = 그렇다면 지역주택조합에선 왜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는 걸까. 일단 지역주택조합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지역주택조합이란 특정 지역에 사는 무주택자들이 ‘내집 마련’을 위해 만든 조합이다. 토지매입비, 공사비, 인허가 서류 제출 등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조합원의 분담금으로 처리한다.

물론 분담금 외에 조합이 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방법으론 일반 분양이 있다.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아파트를 파는 건데 조합원 분양가보다 일반 분양가가 더 높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좋은 집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분담금을 내고서라도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공교롭게도 지역주택조합의 문제는 대부분 분담금에서 발생한다. 사업에 진척이 생기지 않으면 토지를 사들이기 위해 빌린 돈 등 각종 금융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조합원을 모집하기 위해선 주택홍보관 운영비, 조합 운영비 등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원래 예고했던 분담금의 2배까지 뛰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그렇게 늘어난 분담금이 조합 임원의 지인이나 친척 관계로 엮인 업무 대행사로 넘어가는 사례도 빈번하다. 

그렇다고 조합원 입장에서 조합을 탈퇴하기도 쉽지 않다. 주택법은 ‘탈퇴 후 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규약이 조합마다 달라서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환급금은 여태 냈던 분담금의 일부에 불과하다. 사업이 끝까지 간다면 내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지만 중간에 발을 빼버리면 분담금만 날리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지역주택조합 사업 방식에 빈틈이 많다는 건 오래전부터 지적을 받아왔다. 법망을 여러 차례 보완하기도 했다. 2020년엔 주택법 일부를 개정해 조합 설립을 위한 조건을 강화했다.

개정법에 따라, 조합이 조합원을 모집하려면 토지의 80% 이상의 사용권원을 획득하고 15% 이상의 소유권을 확보해야 한다. 자금 보관 업무도 신탁업자에게 의무적으로 맡겨야 한다. 조합 임원들이 자기 계좌에 분담금 등을 보관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 아울러 조합원을 모집할 땐 공급 방식이나 조합원 자격 기준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도 의무화했다. 거짓 정보로 조합원을 모집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 메우지 못한 빈틈 = 그렇다면 지역주택조합의 위험도 사라졌을까. 그렇진 않다. ‘주택법’으로 채우지 못한 함정은 여전히 있다. 대표적인 건 위임장이다. 위임장은 ‘권리 행사 기회’를 잠시 빌려준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여서 통상 일회성이다. 어떤 권리를 위임하는지도 위임장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조합은 사업에 관한 거의 모든 권한을 조합장에게 넘기는 위임장을 작성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경기도 평택시 비전동에 들어설 예정인 한 지역주택조합에서는 12개의 권리를 위임하는 내용을 담은 위임장을 조합원들에게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업무 대행 업체 선정, 자금 집행 업무, 단지 내외 추가 공사 계약 등 사업 관련 업무만 위임하라는 게 아니었다. 조합이 건넨 위임장에는 ‘조합 창립총회 및 각종 총회에 출석해 의결권을 행사할 권한까지 위임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위임 사항과 관련해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어떤 민형사상의 책임도 묻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는 조건도 걸려 있었다. 조합 스스로 ‘분담금은 조합원이 내고 모든 결정은 조합장이 주도적으로 내리면서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구조’를 위임장을 통해 만든 셈이었다. 

언뜻 봐도 문제가 있는 이 위임장에 조합원들이 서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원한 조합원 A씨는 “위임장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위임장을 작성하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느려지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재산상의 피해를 본다고 말했어요. 서명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하니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완강하게 버티기 어려웠죠.” 

또다른 조합원 B씨는 심리적인 부분을 이야기했다. “지역주택조합엔 특성상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수밖에 없어요. 내집이란 공통목표를 가진 이들이죠. 그래서 조합원들이 다른 조합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이런 정서적인 부분을 악용한 게 바로 ‘위임장’입니다. 위임장을 쓰라고 강요하면서 ‘다른 조합원’을 운운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다면 정부는 이 예민한 부분까지 신경 썼을까. 아쉽게도 그렇진 않았다. 8월 말 지역주택조합 전수조사는 끝났지만 ‘위임장’은 실태조사의 대상이 아니었다. 평택시 지역주택조합 업무 관계자는 “6월부터 진행한 실태조사의 핵심은 ‘주택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며 “위임장은 사인 간 거래이기 때문에 실태조사 검토 대상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3분기 중에 지역주택조합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실태조사에선 ‘주택법’ 밖에 숨은 문제를 솎아내진 못했다. 조합이 ‘사인 간 거래’란 명목으로 악용하는 위임장은 지금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역주택조합의 병폐를 뿌리째 뽑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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